홀로 남은 통계청 예산…'가계동향조사'가 뭐길래

머니투데이 이재원 기자 2018.11.13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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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14일 기재위 전체회의 예산안 의결서 통계청은 제외…가계동향조사 둔 與野 입장은

 김성식 위원장이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예산결산기금심사소위원회에서 의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뉴스1 김성식 위원장이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예산결산기금심사소위원회에서 의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뉴스1


통계청이 가계의 소득 상황을 파악해 발표하는 '가계동향조사'가 통계청 예산심의의 발목을 잡았다. 폐지를 예고했다가 부활한 뒤, 표본 등이 롤러코스터를 탔다. 결과에 대한 해석이 달라지며 '정치 통계'라는 오명도 썼다. 전 통계청장의 경질 의혹까지 겹치며 통계청의 '폭풍의 눈'이 됐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14일 오전 전체회의를 열어 기획재정부 등 기재위 소관 2019 예산안을 의결할 예정이지만, 통계청 예산은 빠졌다. 130억원 가량의 가계동향조사 전면 개편에 드는 예산 때문이다. 야권이 삭감을 요구하며 결국 예산결산·기금심사 소위원회에서 추후 논의키로 했다. 13일에도 소위를 열었지만, 여야는 평행선을 달렸다.



◇폐지, 부활, 확대, 변경…'가계동향조사'가 뭐길래=가계동향조사는 전국 가구 중 표본을 추출해 가구 단위의 소득, 지출부문에 대해 조사하여 가계수지, 소득분배 현황 등을 공표하는 조사로, 1963년 조사 시행 이후 지속적으로 표본개편·비목확대 등이 이뤄졌다.

최근 3년간 가계동향조사엔 사연이 많다. 기존에 통계청은 약 8700가구를 표본으로 추출해 각 가구의 소득을 조사했다. 가구마다 5만원 상품권을 주고 36개월간 작성한 가계부를 매월 받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고소득자들은 고작 5만원 상품권에 소득이 낱낱이 공개되는 걸 꺼렸다.



이 때문에 조사 결과를 믿을 수 있느냐는 물음표가 붙었다. 가계부식 조사와 응답 부담이 과중된다는 지적도 있었다. 2013년 통계청이 작성한 '국가통계발전 기본계획'에어도 "표본체계 및 조사방법상 조사·응답부담 과중 및 그에 따른 통계품질 저하가 가능하다"고 진단했다.

결국 통계청은 2018년 가계동향조사를 폐지키로 결정했다. 대신 연간 주기로 발표하는 가계금융복지조사로 대체하기로 했다. 이 방침에 따라 지난해 가계동향조사는 정부부처와 연구자 참고용으로 한시 운영됐다. 표본 수는 5500가구로 줄었고, 가계부 조사방식 대신 면접조사 방식을 썼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 상황이 변했다.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의 정책 효과를 분기별로 확인하고 싶어했다. 통계청 관계자는 이날도 예결소위에서 "예상치 못한 조사에 대한 수요가 발생했다"며 "소득에 대한 자세한 통계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생겼다"고 말했다.


상황이 달라지면서 지난해 예산 심사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은 통계청이 요청하지도 않은 '가계동향조사 예산 28억5300만원'을 올해 예산에 끼워 넣었다. 덕분에 가계동향조사는 지속됐고, 지난 2월 발표된 '2017년 4분기 가계동향조사'에서 소득 하위 20%(1분위) 가구의 명목소득이 월평균 10.2% 증가했다는 수치가 나왔다.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의 성과라고 홍보했다. 여당은 증액한 효과를 톡톡히 봤다.

◇5500→8000…'독이 든 성배' 돼버린 조사=6개월이 지나서는 가계동향조사가 정부에 독이 됐다. 올해 가계동향조사를 시작하면서 통계청은 조사 방식을 바꿨다. 가구 비중의 변화를 반영하기 위해 모집단을 2010년 인구총조사에서 2015년 인구총조사로 변경했다. 표본도 8000가구로 늘렸다.

표본이 늘면서 소득이 낮은 고령자 가구가 대거 포함됐다. 고령화 추세의 자연스런 결과다. 이 때문에 올해 1∼2분기 소득분배 지표의 악화를 불러왔다. 한 때 소득주도성장 성공의 근거였던 가계동향조사가 되레 실패의 근거로 돌변한 셈. 이같은 분석에 정치권까지 가세하며 '통계 조작' 논란이 일었다. 여기에 청와대가 황수경 전 청장을 교체하며 경질 논란까지 확대됐다.

◇138억 들인 대대적 개편…野 "이대로는 안 된다"=결국 통계청은 대대적인 가계동향조사 개편을 추진 중이다. 이를 위해 내년에 책정된 예산만 130억원 가량이다. 현재 분리돼 있는 소득 부문과 지출 부문 조사를 통합하고, 조사 방식을 다시 가계부식으로 바꾼다는 계획이다. 표본규모도 7200가구로 변경한다.

하지만 야권이 반발했다. 정확성 저하 등을 이유로 폐지 수순을 밟았던 가계동향조사를 정권 입맛에 맞춰 부활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새 가계동향조사를 위한 예산을 삭감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성식 예결소위 위원장(바른미래당 의원)은 "지난해 예산에서도 정부(통계청)는 예산안 편성조차 하지 않았는데, 여당 의원들이 갑자기 예산안을 증액해 예산을 투입한 바 있다"며 "올해도 표본을 줄이기로 했던 것을 갑자기 늘리고, 다시 가계부 방식으로 돌아가겠다는 안을 내놨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는 면접조사를 하고, 내년에는 다시 가계부 조사로 돌아간다"며 "이런 식으로 또 방식을 변경하면 시계열상 혼란이 쌓이고, 또 통계 논란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를 표했다. 내년도 예산에서 증액을 유예하고, 면접조사라는 방식의 일관성이라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새로운 가계동향조사 결과는 2020년부터 공표된다. 개편된 가계동향조사의 시계열 통계가 어느 정도 쌓일 때까지 논쟁이 반복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민주당은 원안 통과를 고수하고 있다. 소위 소속의 민주당 한 의원은 "통계청이 가계동향조사를 폐지하기로 했던 것은 한 번의 잘못된 의사결정일 뿐"이라며 "정확한 국가 경제 정책을 위해서라도 이같은 통계 작성은 필요하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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