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알 정답표, 오타낸 답도 그대로…결정적 증거들

머니투데이 방윤영 기자 2018.11.12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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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경찰 "시험지 받자마자 암기한 정답표 적은듯"…출제 교사 "쌍둥이, 문제 풀었다면 쓸 수 없는 답 적어"

서울 숙명여고 쌍둥이 자매가 학교 정기고사 정답을 적은 놓은 암기장 뭉치. /사진=수서경찰서 제공서울 숙명여고 쌍둥이 자매가 학교 정기고사 정답을 적은 놓은 암기장 뭉치. /사진=수서경찰서 제공


경찰은 서울 숙명여고 전 교무부장 A씨(53·구속)가 쌍둥이 자녀에게 지난해 6월부터 1년여간 총 5차례 정기고사 시험지와 정답을 유출했다고 결론 냈다. 결정적인 증거는 A씨 자택 압수수색에서 발견한 정답만 적은 암기장 뭉치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업무방해 혐의로 숙명여고 전 교무부장 A씨(53·구속)와 A씨의 쌍둥이 자매를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12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6월부터 올해 7월까지 총 5회 정기고사 시험지와 정답을 유출한 뒤 같은 학교에 재학 중인 쌍둥이 자매에게 알려주면서 학교의 학업 성적 관리 업무를 방해한 혐의다. 자매 역시 공범으로 송치됐다.

이들은 모두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시험 유출은 없었고 공부해서 성적이 올랐을 뿐이라는 해명이다. 복사나 사진촬영 등 유출의 직접적 경로도 드러나지 않아 경찰의 억측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채점 위해 시험지에 답 적었다? 왜 하필 깨알 같이 적었나"

그러나 경찰은 올해 9월5일 A씨 자택 압수수색 과정에서 확보한 정답표가 적힌 암기장 뭉치를 결정적 증거로 보고 있다. 성인 손바닥 크기만 한 암기장에는 객관식 정답이 5개씩 숫자로 나열돼 있었다. 주관식·서술형 답도 쓰여 있었다.

특히 쌍둥이 자매가 각각 문·이과 전교 1등을 거둔 2학년 1학기에는 기말고사 전 과목 정답이 적혀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A씨가 유출한 구체적인 정황 증거가 드러난 시험은 △1학년 1학기 기말고사에서 1과목 △1학년 2학기 중간 1과목·기말 1과목 △2학년 1학기 중간 3과목·기말 12과목 등이다.

경찰 관계자는 "암기장에 (답을) 적어놓은 것으로 봤을 때 정황 증거가 발견 안 된 다른 과목들도 모두 유출해서 시험에 응시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경찰은 실제 시험지에도 암기장에 적어 놓은 것과 똑같은 정답표를 깨알같이 적어 놓은 것을 확인했다.

경찰 관계자는 "(시험지 등을 유출해) 정답을 암기장에 적어 놓고 이를 외운 뒤 시험 당일 시험지를 받자마자 암기한 것을 적은 것으로 보인다"며 "시험지 구석에 작은 글씨로 깨알 같이 적은 것은 감독관의 눈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자매는 시험이 끝난 뒤 채점을 위해 반장이 불러준 답안을 받아적었을 뿐이라고 해명하지만 경찰은 굳이 작은 글씨로 적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경찰 관계자는 "구체적인 것은 밝히지 못하지만 암기장이 시험 전에 작성됐다는 정황도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시험지에 정답표를 깨알같이 적은 흔적은 유출 의심을 받는 5회 정기고사 중 3회 시험에서 발견됐다.

쌍둥이가 암기장에 적어 놓은 정답표와 동일하게 실제 시험지에도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흔적. (동그라미 표시 안) /사진=수서경찰서 제공쌍둥이가 암기장에 적어 놓은 정답표와 동일하게 실제 시험지에도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흔적. (동그라미 표시 안) /사진=수서경찰서 제공
◇출제자가 정답지에 오타 낸 답안도 그대로…쌍둥이, 말 맞춘 정황

물리 시험의 경우 시험을 치른 뒤 오타로 답이 바뀐 문제가 있었는데 쌍둥이가 오타 낸 답안을 그대로 적은 것도 유출 정황에 포함됐다.

해당 시험 출제 교사는 "(시험 전 작성한) 정답지에 오타로 잘못 기재해 시험 이후 답을 정정했다"며 "쌍둥이 자매가 실제로 문제를 풀었다면 나올 수 없는 답을 적어 유출이 의심된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쌍둥이 자매가 서로 말을 맞춘 정황도 있다고 경찰은 밝혔다. 영어 시험 서술형 답안이 휴대폰 메모장에서 발견된 것과 관련 쌍둥이 자매 모두 "B 참고서를 참고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경찰 확인 결과 해당 메모는 C 참고서에서 발견됐다.

진점옥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 12일 오전 서울 강남구 수서경찰서에서 숙명여고 시험문제지 유출 사건 수사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진점옥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 12일 오전 서울 강남구 수서경찰서에서 숙명여고 시험문제지 유출 사건 수사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교무부장 아빠, 시험 시작 5일 전 초과근무…금고 비번도 알아

전 교무부장 A씨는 올해 1학기 중간·기말고사가 시작되기 5일 전 초과근무를 하고도 근무대장에 기록하지 않았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올해 4월20일과 6월22일 초과근무를 했다. 중간 시험일은 4월25일, 기말은 6월28일이었다.

CCTV(폐쇄회로 화면)에서도 A씨가 이날 각각 초과 근무하고 퇴근하는 모습이 확인됐다. 이외에 초과근무한 장면은 확인되지 않았다. A씨는 경찰에 "평소 초과 근무일보다 일찍 퇴근해서 대장에 기재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시험지를 보관하는 금고 비밀번호를 A씨가 알고 있던 점도 의심되는 정황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전 교직원 중 금고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사람은 고사총괄 교사와 A씨 2명뿐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금고 비밀번호는 원래 고사 총괄 교사만 알고 있는 게 원칙"이라며 "하지만 A씨는 교무부장으로 발령받은 뒤 인수인계 과정에서 알게 됐다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다만 경찰은 시험지와 답안이 직접 유출된 경로를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못했다. 교무실 내에 CCTV가 없었을 뿐 아니라 복사기에서 시험지 등을 복사한 이력, 시험지를 사진 촬영한 흔적 등이 발견되지 않았다.

이주민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이날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국민적 관심이 큰 사안이었던 만큼 시간이 걸리더라도 여러 가지 유의사항을 고려해서 수사했다"며 "20여 가지 정황증거가 있고 이런 부분에서 수사진이 잘 수사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부분(수사진이 확보한 증거 등)이 반영돼서 법원에서 A씨에 대한 구속영장도 발부 하지 않았겠냐"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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