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와 피해자 함께 묻혀…한국인 야스쿠니에서 빼라"

머니투데이 백인성 (변호사) 기자 2018.11.1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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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 [피플] 'NO! 합사 소송 대리인단' 인터뷰

노합사 소송 변호인단, 오른쪽부터 오구치 아키히꼬·후미오 아사노·요고 키무라 변호사. //사진=백인성 기자노합사 소송 변호인단, 오른쪽부터 오구치 아키히꼬·후미오 아사노·요고 키무라 변호사. //사진=백인성 기자


"야스쿠니는 침략전쟁을 정당화하는 천황 중심의 국가신도를 상징하는 신사임에도 강제징용된 식민지 국민들 역시 야스쿠니 신사에 함께 묻혀 있습니다. 그들 말대로라면 식민 가해자와 피해자가 '하나의 방석' 위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 입장에서는 대단히 굴욕적이고 모독적인 일입니다." (노합사 소송 대리인단)

태평양전쟁 당시 한국에서 일제의 총동원체제와 징병제가 실시되면서 상당수 한국인들이 일본군 군인·군속으로 강제 편입돼 있다 사망했다. 야스쿠니 신사는 패전 후 민간 종교법인으로 전환된 후 일본 정부로부터 군 사망자 명단을 전달받아 한국인 전몰자들을 함께 합사했다. 태평양전쟁 당시 군인이나 군속으로 일본군에 복무하다 숨진 만큼 한국인들도 '천황을 위해 싸우다 신이 된 영혼'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합사란 '전몰자의 영혼을 야스쿠니신사로 불러들여 이 영혼이 지상을 떠나지 않도록 신사에 앉히고 기존에 제사지내던 영혼들과 함께 모시는 것'을 말한다. 강제 징용자들을 죽어서도 일본의 신으로 만든 셈이다.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 신사는 합사 과정에서 유족들에게 양해를 구하기는 커녕 사망했다는 연락조차 하지 않았다. 야스쿠니에 합사된 사망자 수는 1956년 이후 246만6000여명으로, 이 가운데 한국인은 2만1181명(2017년 기준)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태평양전쟁 A급 전범 14명 역시 한국인들과 함께 합사돼 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한국인 유족 27명은 2013년 10월 야스쿠니 신사와 일본 정부를 상대로 도쿄지법에 소송을 냈다. 신사에서 가족들의 이름을 빼달라는 요구였다. 유족들은 야스쿠니 신사에 대해선 '신사 영새부, 제신명표 등에 기재된 한국인 피합사자에 대한 기록을 삭제하라'는 청구를, 일본 정부에 대해선 '야스쿠니신사에 한국인 피합사자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 것을 철회하고, 이들의 유골을 원고에게 반환하라'는 청구를 했다. 이른바 '노합사(NO!합사) 소송'이다.

한국인 유족들의 노합사 소송을 맡고 있는 대리인단의 오구치 아키히꼬·후미오 아사노·요고 키무라 변호사는 한 목소리로 "일본 법원이 사실관계를 대부분 인정하면서도 합사를 취소해야 한다는 결론은 내리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원고들의 부친과 형제, 자매 등은 중국과 필리핀, 뉴기니아, 훗카이도 등에서 여러 이유로 숨졌습니다. 이들에게 자신들의 가족과 전범들이 함께 묻혀 있다는 건 견딜 수 없는 고통입니다. 합사로 인한 유족들의 고통을 보호받아야 하는 이익이 아닌 단지 '종교적 주관으'로 보는 건 유족들의 권리를 무시하는 것이고, 하나의 종교에 특권적 지위를 부여하는 폭력일 뿐입니다."


대리인단은 "야스쿠니는 이같은 사실관계를 두고 '그런 역사관도 있지만, 이는 한국인의 역사관'이라고 주관화·상대화하고 있다. 야스쿠니의 '제사와 신앙의 자유'를 사실과 대치시켜 '주관과 주관의 대립'이라고 왜곡한다"면서 "법원은 유족들이 합사 사실에 불쾌감을 가질 수 있겠으나 이를 참아야 한다고 보고 있는데, 그런 관점을 돌파하는 게 소송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이들 변호인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소송에 참여했다. 오구치 변호사는 일본 정보를 상대로 전후 책임을 물은 첫 한국인 김경석씨의 소송을 맡은 이래 23년째 과거사 소송을 담당하고 있다. 그는 전쟁 책임을 추궁받은 적이 없는 일본이 이를 정리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후미오 변호사는 한국인 징용자가 신일본제철의 미지급 급여를 달라고 청구한 소송에 참여하면서 연을 맺었다. 요고 변호사는 기독교 신자들도 역시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점에서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은 점에서 소송에 참여했다.

노합사 소송은 내년 3월 1심 선고가 날 전망이다. 그러나 일본 법원이 청구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높지 않다. 2007년 유사 소송이 있었지만 2013년 고등법원에서 패소가 확정됐다. 최근 일본 법원은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것을 두고 제기된 소송에서도 원고의 권리침해가 없다며 기각 판결을 내렸다. 어느 학자는 일련의 한-일 과거사 소송들을 두고 '필패의 소송'이라고까지 했다.

대리인단은 그러나 노합사 소송이 디딤돌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실인정 부분에서 진보한 판결을 얻어내고자 한다"며 "식민 지배와 강제동원이 존재했고, 그 과정에서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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