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날]수능날 '담배냄새' 맡아야 되나요?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2018.11.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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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꿔주세요, 수능-①]비흡연자 수험생들, 담배연기 싫다며 고통 호소…"흡연자와 교실 분리해달라" 청원까지

편집자주 월 화 수 목 금…. 바쁜 일상이 지나고 한가로운 오늘, 쉬는 날입니다. 편안하면서 유쾌하고, 여유롭지만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오늘은 쉬는 날, 쉬는 날엔 '빨간날'

/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


[빨간날]수능날 '담배냄새' 맡아야 되나요?
#재수생 박병우씨(20·가명)는 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 때 곤욕을 치렀다. 다름 아닌 '담배 냄새' 때문. 이를 무척 싫어해, 화장실 등에서 맡은 담배 연기에 신경이 곤두섰다. 또 하필 그가 시험 보는 자리 앞 흡연자가 앉아, '잔내'가 코를 찔렀다. 마음을 다스려봤지만 이미 예민해진 터, 마음이 잘 안 잡혔다. 김씨는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야 하는 날이라, 담배 냄새가 너무 싫었다"며 "올해도 걱정이 앞선다"고 토로했다.

수능 당일 담배 냄새를 안 맡게 해달라며 비흡연 수험생들이 고충을 호소하고 있다. 학교는 원래 '금연구역'이지만, 수험생들 중 졸업생들이 섞여 있고, 운동장·화장실 등에서 피우는 경우가 잦은 탓이다. 비흡연 수험생들은 담배 냄새 때문에 괴롭다며 피해를 주장하는 반면, 흡연 수험생들은 담배를 못 피우면 시험에 영향이 있다며 맞서는 분위기다. 하지만 수능 감독관인 교사들도 마땅한 대책이 없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교내 흡연 '위법'이지만…운동장, 화장실서 '뻐끔뻐끔'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23일 오전 서울 중구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 고사장에서 한 수험생이 시험준비를 하고 있다./사진=뉴스1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23일 오전 서울 중구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 고사장에서 한 수험생이 시험준비를 하고 있다./사진=뉴스1


관련법만 따지면 사실 교내 흡연은 엄연히 '위법 행위'다. 국민건강진흥법 제9조9항에 따르면 '고등교육법에 따른 교사' 전체는 금연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어길시 10만원 이하 벌금을 문다. 다만 흡연자를 위한 흡연실을 설치할 수 있게끔 돼 있다.

하지만 현실상 단속이 어려운 부분이 많다. 일단 수험생 중 미성년자인 고등학교 3학년 뿐 아니라, 이미 성인이 된 재수생 등도 섞여 있다. 한국교육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수능 응시자 총 54만1327명 중 졸업생 응시자가 전체 23.2%인 12만3258명에 달했다. 이들은 연령상으론 합법적으로 담배를 피울 수 있는 나이다. 흡연권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주로 각 영역이 끝난 뒤 쉬는 시간, 점심 시간 등을 이용해 담배를 피우는 것으로 나타났다. 쉬는 시간이 30분, 점심 시간이 1시간이라 흡연하기 충분한 시간이다. 재수생 김모씨(20)는 "지난해 수능 당일 쉬는 시간과 점심 시간에 담배를 세 가치 정도는 피운 것 같다"고 말했다.


흡연 장소는 주로 운동장, 심하면 화장실에서도 피우는 경우도 있다. 삼수생 이모씨(21)는 "화장실 안에 들어가 있는데, 옆 칸에서 담배 연기가 올라오는 것도 봤다"고 했다. 재수생 서진아씨(20)도 "운동장에서 정말 많이 피우는데, 멀리서 연기가 보일 정도였다"며 "삼삼오오 모여서 담배를 피우며 시험 본 이야기를 하는 걸 봤다"고 했다.

비흡연 수험생들 "컨디션 제일 중요한데, 담배 연기 괴롭다"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열흘 앞둔 5일 서울 용산구 용산고등학교에서 고3 수험생들이 자율학습을 하고 있다./사진=뉴스1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열흘 앞둔 5일 서울 용산구 용산고등학교에서 고3 수험생들이 자율학습을 하고 있다./사진=뉴스1
비흡연자 수험생들 대다수는 간접 흡연에 따른 고통을 호소했다. 수능 시험에만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하고, 컨디션 관리가 중요한데 담배 연기까지 맡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재수생 박모씨(20)는 "화장실에 누가 피웠는지 모를 담배 연기가 꽉 차 있어, 정말 짜증이 났다"고 했다. 재수생 오정민씨(20)도 "운동장에 바람 쐬러 나갔더니, 담배 연기가 흩날렸다"며 "맡기가 싫어 그냥 들어왔던 기억이 난다"고 회상했다.

자리 앞뒤 흡연자가 앉아 있을 경우에 대한 우려도 있다. 고3 수험생 전모씨(19)는 "반에서도 담배 피우는 애들이 앞뒤에 앉으면 냄새 때문에 신경이 엄청 예민해지는데, 수능날에도 그럴까봐 걱정"이라며 "졸업생들도 많으니 그럴 확률이 높지 않느냐"고 걱정했다.

이처럼 피해를 입고 있는 현실이지만, 수험생들은 수능이 더 중요해 대다수 참고 넘긴다는 응답이 많았다. 자칫 화내거나 따졌다가, 시험을 그르칠까 두려운 마음이 더 크다는 것. 고3 수험생 이지은씨(19)는 "졸업생들도 있는데 직접 따지는 건 어렵고, 감독관들이 알아서 잘 단속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감독관들도 "단속 어렵다", 흡연 수험생은 "공간 마련해달라"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열흘 앞둔 5일 서울 용산구 용산고등학교에서 고3 수험생들이 자율학습을 하고 있다./사진=뉴스1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열흘 앞둔 5일 서울 용산구 용산고등학교에서 고3 수험생들이 자율학습을 하고 있다./사진=뉴스1
하지만 현장을 통솔해야 하는 교사들도 단속이 실질적으로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고3 담임 교사 신모씨(51)는 "졸업생들이 섞여 있기도 하고, 수능날 수험생들이 제일 중요하지 않느냐"며 "혹시나 영향이 있을까봐 알고도 눈감아주는 분위기인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상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한 상태. 고3 수험생이라 밝힌 한 청원자는 지난달 13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수능 고사장 흡연자와 비흡연자 구분해달라'는 청원 게시글을 올렸다. 청원자는 "수능 고사장을 흡연자 전용, 비흡연자 전용 교실로 나눠달라"며 "아무리 냄새를 털어내도 굉장히 불쾌하고, 혹시 자리 주변에 흡연자가 응시할까 걱정이 된다"고 취지를 밝혔다.

이와 관련해 흡연 수험생들도 담배를 피울 수 있는 별도 공간을 마련해줄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재수생 박정태씨(20)는 "흡연자들 입장에선 중간에 담배 한 대 피울 수 있는 게 컨디션 관리에 중요한 부분"이라며 "피해주고 싶지 않으니, 교내에 간이 흡연실이라도 마련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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