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단위 사업비 쥐락펴락, 조합장의 품격
[조합장이 뭐길래]①고령 조합장이 상당수, '월급 수백만원+ α'… 곳곳서 유혹, 비극 빚기도아현3구역 조합원들이 유씨를 끌어내리기까지 5년여간의 스토리는 뉴타운 재개발 역사에서도 손꼽힌다. 10여 년 전 얘기지만 여전히 '진행형'이다. 9500여가구를 신축하는 국내 재건축 최대어 가락시영(헬리오시티)조합장 김모씨는 2016년 뇌물수수로 징역 5년과 벌금 1억2000만원, 추징금 1억1600만원이 확정됐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라 정비사업 조합장은 공무원에 준하는 형사책임을 진다. 완전범죄가 쉽지 않지만 흑역사는 이어지고 있다. 조합원의 무관심, 정비업체나 시공사의 수주전쟁에 '눈 한번 질끈 감으면 평생 먹고살 것 번다'는 얘기가 우스갯소리로 회자된다.
현재 재개발·재건축 등 서울 시내에만 963개의 정비사업 조합장이 있다. 추진 단계의 조합과 지역·직장주택조합까지 합치면 전국에 수천여명의 조합장과 추진위원장이 활동 중이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공신력 있는 통계자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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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조합별 정관에 따라 자격이 다른데다 조합 내부의 개인정보에 대해선 관할구청이나 시·도도 별도의 자료를 집계하지 않기 때문이다. 평균연령, 교육 및 소득수준에 대해서도 알려진 바 없다. 하지만 이들 조합장들은 정비사업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월 급여로 최소 수백만원을 받고 있다.
사업이 지연되면서 조합장이 수십 년간 장기집권하는 경우도 있다. 정비구역 성패는 사업성도 중요하지만 조합장의 리더십과 투명성이 결정적이다. 수백, 수천여 조합원의 재산권을 대신하는 막중한 책임을 등에 지고있는 만큼 유혹의 손길이 도처에 널려있다.
조합 설립 초기 필요자금을 정비업체에 의존하다보면 조합의 의사결정이 정비업체에게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시공사 선정이나 용역업체 선정을 놓고 잡음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정부는 정비사업 비리가 이어지자 '건설적폐'로 보고 투명성 강화를 위한 제도개선과 현장 조사에 집중하고 있다. 올해 초 강남권 5개 재건축조합을 합동 점검한데 이어, 홍보대행사가 금품향응 제공 시 건설사도 공동책임을 지도록 처벌 규정을 강화했다.
최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전문성이 없는 조합장이 구조적으로 청탁을 받다 보면 초심과 달리 권력을 쥔 것으로 착각하기 쉬운 상황에 놓인다"면서 "개인의 도덕성에 맡기기보다 '조합장 자격제'를 실시하거나 신탁방식의 정비 사업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희정 기자
노후의 꿀보직? 교도소 담장위 유혹도
[조합장이 뭐길래]②'총회 소집권' 막강 권한 불구 소송전·축출 시도엔 진땀 서울 송파구 헬리오시티(가락시영아파트 재건축) 전경. /사진=김지훈 기자
서울 강남권의 한 재건축 추진단지 조합장 A는 "순수한 마음으로 일하려는 조합장들도 고발과 조사를 계속 당하면 유혹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각종 송사에 휘말리는 경우가 많다 보니 변호사 선임비용 등에 골치를 앓기 때문이다.
정비사업조합 대표인 조합장은 거대 이권이 걸린 정비사업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쏠쏠한 고정 수익도 생긴다. 하지만 '이웃사촌'들이 구성한 '비대위'(비상대책위원회)로부터 생사가 걸린 위협을 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조합장이 갖는 가장 큰 권한은 정비사업 최고 의결 기구인 총회 소집권이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상 총회는 조합원 5분의 1 이상의 동의 또는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요구하는 경우나 조합장 직권으로 소집된다.
생업에 쫓기는 조합원들이 특정 안건을 발의하고 총회를 열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결국 조합장 직권으로 개최된다. 조합장이 조합 이사회(안건 상정 심의 기구)와 협의한 후 안건을 결정하면 부결되는 경우는 드물다.
김은유 법무법인 강산 대표 변호사(서울시 동작구 법률고문)는 "시공사들이 정비사업 초기부터 조합에 자금을 대여하다보니 안건 의결만으론 조합원부담이 생기지 않는다"며 "바로 이 점 때문에 조합원들이 대체로 안건 내용에 무관심하고, 조합장 의지대로 사업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조합장은 사업 진행에 대한 책임이 무겁지만 조합의 급여 지급 대상이어서 은퇴 이후 직업으로는 수입도 쏠쏠하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강남 재건축조합에선 대체로 300만~500만원 규모의 조합장 월 급여가 책정돼있다"며 "업무 추진비까지 합쳐 최대 1000만원 가량 지급하는 조합도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형사 사건에서 유죄가 확정되면 처벌 수위가 높고 조합이 발송하는 모든 문서의 서명 당사자여서 귀책사유 발생시 책임도 가장 크다. 정비구역에선 조합외 단체인 비대위가 만들어져 조합장을 타깃으로 한 소송도 난무한다.
조합 운영에 대한 불합리함이나 사업 방향에 대한 의견 차이로 인한 소송도 있지만 이권을 노린 '불순한' 의도로 조합장 축출을 노리는 경우도 없지 않다. 조합원들이 총회에서 안건을 부결시키며 조합장을 압박하는 이례적 사례도 발생했다.
가락시영아파트(헬리오시티) 주택재건축 정비사업조합은 지난달 조합장이 소집한 임시총회에서 사업시행계획 변경 및 공사비 증액, 조합운영비 예산변경 등의 각종 안건이 잇달아 부결되기도 했다.
김지훈 기자
억대연봉 'CEO 조합장' 없는 이유
[조합장이 뭐길래]③ 허울뿐인 전문조합관리인제… 등기소가 거부, 도입 사례 전무조합의 업무와 권리를 대표하는 사람인 만큼 조합장은 대부분 조합원 중에서 선출된다. 하지만 법적으로 반드시 조합원만 조합장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정비사업에 전문성이 있는 외부전문가도 조합장이 될 수 있다. 일명 'CEO 조합장'이다.
22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정법)은 조합장의 결격사유에 관해서만 명시할 뿐 자격이나 선출 방법에 대해서는 규정하지 않고 있다.
조합장(임원)의 결격사유는 △미성년자나 피성년후견인 △파산선고를 받고 복권되지 않은 자 △금고이상의 실형을 받고 그 집행이 종료된 뒤 2년이 지나지 않은 자 △집행유예 중인 자 △도정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원 이상 선고받고 5년이 지나지 않은 자 등이다.
조합임원의 구체적인 자격이나 선출방법 등은 각 조합이 정관으로 정한다. 자율 사항이지만 대부분 재건축·재개발조합은 조합장 자격을 조합원으로 한정하고 있다. 국토부가 2003년 작성해 배포한 '표준정관' 때문이다.
표준정관에 따르면 재건축 조합장은 조합원 중 △사업시행구역 안에 3년 이내 1년 이상 거주한 자 △상가 등의 건축물에서 영업을 하고있는 경우 3년 이내 1년 이상 영업한 자 △사업시행구역 안에서 5년 이상 건축물 및 그 부속토지를 소유한 자 중 하나에 해당해야 한다. 재개발 조합장은 사업시행구역 내 1년 이상 거주한 조합원 중 선임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반드시 표준정관을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조합이 이를 이용하고 있어 조합장은 거의 조합원 중에 선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합장이 조합원으로 한정되면서 전문성 부족이나 각종 비리 문제 등이 불거지자 국토부는 2016년1월 도정법 개정으로 조합원이 아닌 사람도 조합장이 될 수 있는 '전문조합관리인' 제도를 도입했다. 기업의 전문경영인처럼 조합을 운영할 수 있는 사람을 외부에서 영입해 전문성을 높이고 각종 비리를 막겠다는 취지였다.
전문조합관리인제도가 도입될 당시에는 수억원대 연봉을 받는 '스타 조합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사업 추진이 지지부진한 조합에서 정비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끈 경험이 있는 조합장을 스카우트하는 것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부인에 대한 조합원들의 부정적 인식과 제도적 결함으로 제도 시행 2년 동안 전문조합장이 정식으로 선정된 곳은 한 곳도 없다.
'아현4구역'이 유일하게 지난해 전문조합장을 선정했지만 법원 등기소가 조합장 변경을 위한 특수법인변경등기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아 정식 조합장으로 등록되지 못했다. 이는 도정법 시행령에 전문조합관리인이 등기 사항으로 규정돼 있지 않은 제도적 허점 때문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도정법으로는 전문조합관리인 임명이 가능하지만 같은법 시행령에는 해당 규정이 없어 제도를 적용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라며 "국토교통부에 제도 개선을 건의했다"고 말했다.
김사무엘 기자
지방선거 뺨치는 조합장 선거, 스펙도 'Up'
[조합장이 뭐길래]④前 구청장에 건설사 임원, 교수 출신도…조합원들 눈높이 높아져
구역별 정비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서울 강남구 압구정아파트지구 전경. /사진=머니투데이DB
지방선거가 아닌 서울 시내 정비사업 조합장 및 추진위원장 선거에 나선 후보들의 이력이다. 재건축 사업요건이 강화되고 정비사업 비리로 사업이 지체되는 사례가 많아지자 주민들도 전문성을 갖춘 조합장에게 한 표를 던지고 있다.
지난해 4월 서울 강남구 압구정특별계획구역5구역에 속한 '한양 1·2차'는 강남구청장 출신의 권문용씨를 예비 추진위원장으로 선임했다. 동의서 징구도 빨리 이뤄져 지난해 8월 추진위 승인이 완료됐다.
권 위원장은 1995년부터 2006년까지 강남구청장을 지낸 3선 지방자치단체장 출신이다.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대표회장과 공정거래위원회 상임위원 등을 역임했다.
오랜 공직 생활로 다져온 신뢰감과 재건축 정책을 입안·실시했던 전문성이 높게 평가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권 위원장은 투명경영을 강조하는 한편 '초과이익환수제', '한강변 최고층 규제' 등에 대해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달 추진위원회 설립을 마친 압구정특별계획구역3구역을 이끄는 윤광언 추진위원장은 현대건설 임원 출신이다. 윤 위원장은 시공사와의 정보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아 지난 2월 교수 출신 후보를 포함한 3파전에서 승리했다.
전문성을 갖춘 조합장이나 추진위원장에 대한 선호는 실제 성공사례에 기반을 둔다. 서울 서초구 신반포1차 아파트는 1994년 재건축사업이 시작됐지만 17년간 진행이 지지부진하다 대형건설사와 정비사업 컨설팅기업 임원 등의 경험을 갖춘 한형기 조합장이 취임하면서 4년 8개월 만에 '아크로리버파크'로 재탄생했다.
지난 6월 착공에 들어간 서울 성북구 장위7구역 재개발사업의 중심에도 구의원 출신인 정효연 조합장이 있다. 2006~2010년 성북구의회 도시건설위원회에 몸담았던 그는 정비구역지정을 추진하는 한편, 초대 추진위원장으로도 활동했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조합장이나 추진위원장이 정비사업 절차를 몰라 정비업체나 시공사에 휘둘리게 될 것을 염려하는 조합원들이 많다"며 "인허가 절차를 잘 아는 건설회사 임원이나 신뢰도가 높은 공직자 출신의 조합장을 선호하는 경향이 짙어졌다"고 말했다.
박치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