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 '시총 1.2조' 상장폐지…'꾼'은 웃었다

머니투데이 반준환 기자, 김명룡 기자, 이태성 기자, 신아름 기자 2018.10.2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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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폐지 논란](종합)

편집자주 올해 코스닥에서 상장폐지되는 기업은 최대 20곳 미만으로 과거보다 많지 않다. 2010년에는 코스피, 코스닥을 합해 91개 기업이 상장폐지됐고 2016년과 2017년도 각각 19곳, 23곳이 시장을 떠났다. 그럼에도 올해처럼 상장폐지 논쟁이 뜨거웠던 적은 없다. 현행 제도에 심각한 흠결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기업과 투자자들의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조치가 시급하다.  

상장폐지가 예고된 상장사 주주들이 26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 서울사무소 앞에서 상장 폐지를 결정하는 과정이 부당하다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상장폐지가 예고된 상장사 주주들이 26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 서울사무소 앞에서 상장 폐지를 결정하는 과정이 부당하다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상장폐지…누구에겐 '눈물' 누구에겐 '돈벌이'
[상장폐지 논란]①회계법인 엉터리 재감사 하고도 수십억 청구…결국 법원이 '제동' 걸어



'27억원, 17억원, 15억원…'

올해 회계감사 의견거절로 인한 상장폐지를 막으려고 코스닥 기업 3곳이 지출한 재감사 비용이다. 이들을 포함한 상장폐지 대상 11개 기업이 쓴 자금(정기감사 포함)은 100억원을 훌쩍 넘는다. 이 때문에 시장에선 '상장폐지로 투자자 손실은 눈덩이 같은데, 정작 회계법인이 과도한 감사비용을 청구하는 등 재미를 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논점은 크게 2가지다. 회계비용이 과도했는지, 재감사가 적절하게 이뤄졌는지다. 회계법인도 할 말은 있지만 일단 적정성 측면에선 "의견거절에 문제가 있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MT리포트] '시총 1.2조' 상장폐지…'꾼'은 웃었다
◇법원 "재감사 결과 엉망…회계법인 믿겠나" = 21일 본지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법원은 파티게임즈 (250원 ▼46 -15.5%), 모다 (155원 ▼105 -40.4%), 감마누 (470원 ▼10 -2.08%), 에프티이앤이 (253원 ▲2 +0.8%) 등 4곳 기업이 신청한 '상장폐지결정 등 효력정지 가처분'을 받아들이며 "감사의견 거절에 중대한 오류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적시했다.


이들은 한국거래소의 상장폐지 결정에 이어 정리매매 단계까지 갔지만 법원 결정으로 상장폐지 및 정리매매가 보류된 상태다.

A사의 경우 재감사를 맡은 회계법인이 재무제표조차 제대로 검토하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왔다. 법원은 "감사를 두 번이나 진행했는데도 자산·자본·부채 등 재무제표 기본항목과 재감사보고서 주석에 기재된 여러 수치가 일치하지 않았다"며, 이런 중요한 수치를 틀린 회계법인이 한 감사결과를 믿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회계법인이 주장한 '우발부채 가능성'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소명이 이뤄져 감사의견을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A사는 공고와 거래처 문의서 발송을 통해 우발채무가 없다는 점을 일차로 확인한데 이어,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경영진이 300억원을 담보로 제공했다. 그럼에도 의결거절을 낸 것은 회계법인의 재량을 넘어선 것이라는 지적이다.

B사는 회계법인의 책임을 피하려는 면피성 의견거절이 문제가 됐다. B사는 부실 계열사 처리문제가 있었는데, 이들 기업에 대한 손실액이 확정되기도 전에 의견거절이 나왔다는 것이다. 문제의 계열사들은 지난 8월 회생절차를 통해 회생법원 관리로 들어간 상태다. 법원은 채권자 권리신고와 자산실사가 끝나면 정확한 자회사 가치가 평가되고, 감사의견 거절사유를 해소할 가능성이 있는데도 회계법인이 성급하게 결정을 내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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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감사는 0.5억, 재감사는 10.6억… = 회계법인이 재감사 비용을 과도하게 청구한 것도 논란 대상이다. 회계법인 감사의견은 △적정 △한정 △부적정 △의견거절 등 4가지인데 적정을 받아야만 상장이 유지된다.

3월 정기감사를 통과하지 못한 기업은 재감사(통상 6개월) 기회가 주어진다. 문제는 재감사 때에는 회계법인이 요구하는 감사비용이 최소 2배에서 20배까지 불어난다는 점이다. 현행법(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상 정기감사와 재감사는 동일한 곳에서 받아야 하니 다른 업체를 찾을 수도 없다.

올해 재감사를 받은 상장기업 16곳은 정기감사 비용이 평균 1억8000만원인데 재감사 때는 4억5200만원으로 151% 늘었다. 3억5500만원에서 16억원으로 늘어난 세화이이엠씨도 있다. 파티게임즈는 3억7800만원이 27억원이 됐다. 회계법인에 지급한 9억원에, 디지털포렌식(과학적 증거분석)과 PA(퍼스널어카운트) 검증 요구로 18억원이 추가됐다.

또 다른 회계법인은 재감사 기업의 투자자산 1건당 평가비를 1억원씩 받기도 했다. 금융당국도 이런 문제를 인지해 외부감사 제도 개선방안을 준비하고 있으나 사후 약방문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회계법인은 재감사에 많은 비용이 투입된다고 반박했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재감사의 경우 (상장폐지가 결정되는)사안의 중요성을 고려해 투입하는 인력이 대폭 늘어나고 검증에 드는 부대비용도 만만치 않다"며 "기업에 잠재된 리스크가 인지됐는데, 단순히 감사비용을 많이 받았다고 문제를 덮어둘 수도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는 "특히 상장사의 경우 직간접 투자자가 워낙 많아 부실감사 오명을 쓰면 회계사들도 집단소송 대상이 된다"며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태로 퇴출된 동료들을 보면 보수적으로 갈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반준환 김명룡 이태성 기자

'감사의견' 칼자루 쥔 회계법인, 잘못 휘둘러도 막을 길 없어
[상장폐지 논란]②코스닥 상장폐지 제도개선 목소리 높아…美·日, 거래소 재량권 부여 참고해야

추석 연휴 기간이 지난달 26일, 수 백 여 명의 소액주주가 여의도 한국거래소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상장폐지를 앞둔 12개 코스닥 기업 주주들이다. 이들 기업의 시가총액만 1조2500억원, 주주는 8만여 명이다. 결국 11개 기업이 상장폐지됐는데, 이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은 물론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뜨거운 이슈다.

이처럼 시장에 충격을 안긴 코스닥 무더기 상장폐지와 관련, 한국거래소 상장규정에 손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현행 제도가 지나치게 엄격하고, 기업 지속성보다는 감사의견 같은 특정 기준에 쏠려있는 부작용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MT리포트] '시총 1.2조' 상장폐지…'꾼'은 웃었다
◇1단계로 축소된 상장폐지 절차…기업 퇴출,10분 만에 결정
=거래소는 지난 2월 코스닥상장 규정 시행세칙을 개정하면서 상장폐지 절차를 2단계에서 1단계로 단순화했다. 종전까지는 기업심사위원회 심의→시장심의위원회 심의·의결로 이어지던 2단계 절차를 기업심사위원회의 심의·의결로 단순화했다. 대신 기업에 소명기회를 충분히 주겠다고 했으나 현실은 달랐다.

지난달 19일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기업심사위원회에 참석한 A사의 CFO(최고재무책임자)는 "허망한 마음만 들었다"고 털어놨다. 회계법인과 견해차이가 커 '의견거절'을 받았지만 위원회에서 위원들에게 충분히 소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헛된 기대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교수 등으로 구성된 기업심사위원회 위원들은 "회계법인이 감사보고서를 언제까지 준다고 했느냐", "대표 이사가 주식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 등 일반적인 내용만 질문했다.

그는 "감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이유와 회사를 어떻게 정비할 것인지 대한 답변을 준비했지만 이에 대해선 질문조차 없었다"며 "불과 10분가량 형식적인 질의응답만 하다가 떠밀리듯이 나왔다"고 말했다. 이어 "심사위원들이 회계법인 의견만 신뢰하고 정작 기업의 말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며 "결국 회계법인 결정에 따라 상폐 여부를 결정하는 요식행위에 불과했다"고 털어놨다.

기업심사위원회 결정에 반발한 기업들은 법원을 찾았고 결국 모다, 에프티이앤이, 감마누, 파티게임즈 4곳의 상장폐지 보류 결정이 내려졌다. 상장폐지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이 인용된 것은 2011년 이후 7년 만의 일이다.

한국거래소 규정이 감사의견 같은 일부 조항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었다는 방증이다. 앞선 기업들처럼 회계법인의 오류가 있을 때 이를 바로 잡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MT리포트] '시총 1.2조' 상장폐지…'꾼'은 웃었다
◇韓, 회계법인이 생사 판가름…美·日, 거래소 재량권 부여 =해외에서는 형식요건 못지 않게 어떻게 하는 것이 투자자와 기업을 보호하는데 중요한지를 먼저 본다. 일례로 미국 나스닥 시장에서도 회계법인의 감사의견 거절은 상장폐지 요건에 해당한다. 하지만 기업이 살아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면 나스닥이 상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판단할 재량의 여지가 있다. 일본 도쿄증권거래소(TSE)도 이와 유사한 제도를 운영한다.

반면 한국거래소는 기업심사위원회를 통해 이의신청을 받지만 판단 재량권이 제한적이다. 그나마 기업에 개선기간을 부여하는 정도인데 이마저도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최대 6개월에 불과하다. 6개월 시간을 주고도 '적정' 의견을 받지 못하면 상장폐지가 불가피하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나스닥, 도쿄증권거래소의 경우 거래소 재량에 따라 상장페지를 지연할 수 있다"며 "한국은 감사의견 거절 기업에 개선기간을 최대 6개월 줄수 있을 뿐, 그밖에 거래소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

칼자룰 쥔 회계법인도 불만을 털어놨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기업간 분쟁이 있어 채권, 채무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사례가 있다"면서 "만약 한국거래소가 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상장폐지 결정을 유예한다면 재무제표 수정이나 감사의견 변경이 가능한데 6개월이란 시간이 묶여 있으니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상장폐지는 보류하되 주식거래를 정지하면 문제가 해소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다만 이 경우 회계부실로 초래될 문제를 한국거래소가 안고 가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이와 관련, 이태규 바른미래당 의원은 이번 국정감사에서 "상장폐지심사 기능을 거래소에서 별도 기관으로 넘기고, 회계법인만 배불리는 현재의 비정상적인 재감사제도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태성 반준환 김명룡 기자

"재감사 비용만 27억원인데...회계법인 무성의해"
[상장폐지 논란]③박길우 파티게임즈 대표, 재감사 맡았던 회계법인 상대로 소송 준비 중

"회계사들이 제대로만 했다면 수십억원의 감사비용을 냈어도 억울할 것은 없어요. 더구나 회사의 명운이 걸린 재감사 아닙니까. 피감회사 사무실에 와서 인터넷 쇼핑과 게임까지 하는 회계사들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박길우 파티게임즈 대표박길우 파티게임즈 대표
박길우 파티게임즈 대표는 재감사를 맡았던 모 회계법인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파티게임즈는 지난 3월 회계법인으로부터 감사의견 '거절'을 받으면서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해 주식거래가 정지됐다. 이후 이뤄진 재감사에서도 감사의견은 바뀌지 않았다. 상장폐지 직전까지 몰린 파티게임즈는 법원에 신청한 가처분이 받아들여져 거래정지 상태에서 시간을 벌게 됐다.

박 대표는 "회계법인이 의결거절을 내는 과정에서 회사의 내용을 꼼꼼하게 살펴보지 못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부실한 감사를 하면서도 이 회계법인이 자신들을 통해서만 재감사를 받아야 하는 파티게임즈의 궁박한 상황을 악용해 부당한 이익을 취했다"고 주장했다.

파티게임즈가 재감사에 지불한 금액은 27억원이다. 박 대표는 "현대자동차나 포스코의 감사비용보다 높은 수준"이라며 "(회계법인이)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도 무성의한 결과를 내놓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복수의 회계법인 중에서 재감사인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이달 초 열린 국정감사에서 "(기존 감사인에게) 독점권을 줘서 그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다"고 대답, 실태 조사와 개선 의사를 밝힌 바 있다.

기업들은 회계법인의 힘이 지나치게 세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때 상장폐지 위기에 몰렸던 엠벤처투자도 회계법인과 갈등을 겪었다. 엠벤처투자가 투자한 회사들의 지분가치를 인정할 수 없다며 회계법인이 감사의견 '거절'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결국 엠벤처투자는 투자자산 가치를 장부가의 절반으로 깎고 나서야 감사의견을 받을 수 있었다. 엠벤처투자 관계자는 "일부 투자금은 벤처기업에 투자한 지 10개월 만에 가치가 절반으로 줄어든 셈"이라며 "가치평가가 어려운 기업에 대한 투자가 사실상 어려워져 벤처투자의 본질이 흐려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명룡 기자

상폐주식 하이에나…피해자 두번 울리는 '정매꾼'
[상장폐지 논란]④가격제한 폭 없는 정리매매, 절박한 투자자 심정 악용 사례도

전업투자자 A씨는 정리매매가 진행 중인 상장폐지 기업의 주식을 집중적으로 사들이는 이른바 '정리매매꾼'(정매꾼)이다.

그는 다른 투자자들과 함께 팀을 이뤄 상폐기업의 정리매매 첫날을 공략한다. 통상 정리매매 첫날 주가가 많이 오른다는 점, 30분에 한 번씩 거래가 체결되는 단일가매매방식이 적용된다는 점을 이용한다.

호가를 올려 주가가 계속 오를 것이란 신호를 준 뒤 추격매매를 유도하고 주가가 급등하면 바로 팔아 시세차익을 얻는다.

A씨는 "정리매매 주식은 수급이 관건인 만큼 여러 명과 호흡을 맞춰 민첩하게 움직이는 게 포인트"라며 "리스크가 크지만 성공했을 땐 그만큼 고수익을 얻을 수 있어 '베팅'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정리매매 주식은 통상 주가의 10분의 1수준에서 거래되고, '동전주'인 경우도 많다. 때문에 가격이 조금만 올라도 상승률이 높아지는 왜곡 현상이 발생한다.

한 시장 관계자는 "정리매매 기간에는 가격 제한폭이 없어 주가가 롤러코스터를 탄다"며 "이상 급등 현상이 발생하면 군중심리가 발동돼 오히려 추격 매수에 나서는 일도 있는데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리매매 기간 중 주주들의 절박한 심정을 악용한 사기 사건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는 점도 경계 대상이다. '창조벤처 1호기업'으로 증시에서 화제를 모았던 아이카이스트 사례가 대표적이다.

아이카이스트는 횡령과 그에 따른 감사의견 거절을 받아 상장폐지가 결정됐고 정리매매에 돌입했다. 아이카이스트는 아이팩토리 지분을 보유하기도 했는데, 이 회사도 정리매매와 상장폐지가 이뤄졌다.

아이카이스트는 정리매매 당시 소액주주들의 피해를 최대한 보전해주기 위해 아이팩토리 주식을 주당 5000원에 매입해주겠다고 했다. 이를 믿은 주주들은 주식을 팔지 않았고, 5000원 이하에선 오히려 주식을 더 사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카이스트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양사는 상장폐지 후 정리매매까지 주식은 휴지조각이 됐다.

법적 구속력이 없는 약속이었기 때문에 주주들은 하소연할 데도 없었다. 피해는 고스란히 주주들 몫이었다.

시장 관계자는 "상폐 이후 절박한 주주들은 재상장을 추진한다는 해당 기업 경영진의 말에 현혹돼 정리매매를 보류하기도 하지만 이는 확률상 매우 어려운 일"이라며 "희박한 재상장에 무리한 기대감을 갖기보다는 정리매매 기간 중 주식 처분이 더 유리하다"고 말했다.

신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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