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감사의견' 칼자루 쥔 회계법인, 잘못 휘둘러도 막을 길 없어

머니투데이 이태성 기자, 반준환 기자, 김명룡 기자 2018.10.22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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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폐지 논란]코스닥 상장폐지 제도개선 목소리 높아…美·日, 거래소 재량권 부여 참고해야

추석 연휴 기간이 지난달 26일, 수 백 여 명의 소액주주가 여의도 한국거래소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상장폐지를 앞둔 12개 코스닥 기업 주주들이다. 이들 기업의 시가총액만 1조2500억원, 주주는 8만여 명이다. 결국 11개 기업에 상장폐지 결정이 내려졌는데, 이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은 물론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뜨거운 이슈다.



이처럼 시장에 충격을 안긴 코스닥 무더기 상장폐지와 관련, 한국거래소 상장규정에 손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현행 제도가 지나치게 엄격하고, 기업 지속성보다는 감사의견 같은 특정 기준에 쏠려있는 부작용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MT리포트]'감사의견' 칼자루 쥔 회계법인, 잘못 휘둘러도 막을 길 없어


◇1단계로 축소된 상장폐지 절차…기업 퇴출,10분 만에 결정=거래소는 지난 2월 코스닥상장 규정 시행세칙을 개정하면서 상장폐지 절차를 2단계에서 1단계로 단순화했다. 종전까지는 기업심사위원회 심의→시장심의위원회 심의·의결로 이어지던 2단계 절차를 기업심사위원회의 심의·의결로 단순화했다. 대신 기업에 소명기회를 충분히 주겠다고 했으나 현실은 달랐다.



지난달 19일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기업심사위원회에 참석한 A사의 CFO(최고재무책임자)는 "허망한 마음만 들었다"고 털어놨다. 회계법인과 견해차이가 커 '의견거절'을 받았지만 위원회에서 위원들에게 충분히 소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헛된 기대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교수 등으로 구성된 기업심사위원회 위원들은 "회계법인이 감사보고서를 언제까지 준다고 했느냐", "대표 이사가 주식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 등 일반적인 내용만 질문했다.

그는 "감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이유와 회사를 어떻게 정비할 것인지 대한 답변을 준비했지만 이에 대해선 질문조차 없었다"며 "불과 10분가량 형식적인 질의응답만 하다가 떠밀리듯이 나왔다"고 말했다. 이어 "심사위원들이 회계법인 의견만 신뢰하고 정작 기업의 말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며 "결국 회계법인 결정에 따라 상폐 여부를 결정하는 요식행위에 불과했다"고 털어놨다.


기업심사위원회 결정에 반발한 기업들은 법원을 찾았고 결국 모다, 에프티이앤이, 감마누, 파티게임즈 4곳의 상장폐지 보류 결정이 내려졌다. 상장폐지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이 인용된 것은 2011년 이후 7년 만의 일이다.

한국거래소 규정이 감사의견 같은 일부 조항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었다는 방증이다. 앞선 기업들처럼 회계법인의 오류가 있을 때 이를 바로 잡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MT리포트]'감사의견' 칼자루 쥔 회계법인, 잘못 휘둘러도 막을 길 없어
◇韓, 회계법인이 생사 판가름…美·日, 거래소 재량권 부여 =해외에서는 형식요건 못지 않게 어떻게 하는 것이 투자자와 기업을 보호하는데 중요한지를 먼저 본다. 일례로 미국 나스닥 시장에서도 회계법인의 감사의견 거절은 상장폐지 요건에 해당한다. 하지만 기업이 살아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면 나스닥이 상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판단할 재량의 여지가 있다. 일본 도쿄증권거래소(TSE)도 이와 유사한 제도를 운영한다.

반면 한국거래소는 기업심사위원회를 통해 이의신청을 받지만 판단 재량권이 제한적이다. 그나마 기업에 개선기간을 부여하는 정도인데 이마저도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최대 6개월에 불과하다. 6개월 시간을 주고도 '적정' 의견을 받지 못하면 상장폐지가 불가피하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나스닥, 도쿄증권거래소의 경우 거래소 재량에 따라 상장페지를 지연할 수 있다"며 "한국은 감사의견 거절 기업에 개선기간을 최대 6개월 줄수 있을 뿐, 그밖에 거래소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

칼자루를 쥔 회계법인도 불만을 털어놨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기업간 분쟁이 있어 채권, 채무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사례가 있다"면서 "만약 한국거래소가 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상장폐지 결정을 유예한다면 재무제표 수정이나 감사의견 변경이 가능한데 6개월이란 시간이 묶여 있으니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상장폐지는 보류하되 주식거래를 정지하면 문제가 해소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다만 이 경우 회계부실로 초래될 문제를 한국거래소가 안고 가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이와 관련, 이태규 바른미래당 의원은 이번 국정감사에서 "상장폐지심사 기능을 거래소에서 별도 기관으로 넘기고, 회계법인만 배불리는 현재의 비정상적인 재감사제도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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