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종이냐는 차가운 시선도…", 한복 입는 23살 대학생 (영상)

머니투데이 이상봉 기자 2018.10.21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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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뷰] 전통문화 프로젝트 '한복여행가' 부단장 이영현씨, "아름다운 문화를 입는 것…특이한 게 아니야"

편집자주 #한복의날 #전통한복 해시태그(#) 키워드로 풀어내는 신개념 영상 인터뷰입니다.



한복 입기 좋은 날씨인 10월. 지난 15일부터 전국 10개 도시에서 '2018 한복문화주간' 행사가 열리고 있다. 기존 서울을 중심으로 하루 또는 이틀 정도로 끝났던 '한복의 날'(21일) 행사가 올해는 7일로 기간이 늘어났다. 평소에는 접하기 힘든 한복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경험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다.

실제로 한복은 입고 생활하기 불편하다는 등의 이유로 명절이나 결혼식과 같은 큰 행사가 있을 때나 꺼내 입는 옷이 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복 제조업체 수는 해마다 줄고 있다. 2005년 4506개에서 2014년 3054개로 약 32% 감소했고, 종사자 수 역시 6262명에서 4478명으로 약 28% 줄었다.



여기에 더 자주 한복을 입자는 운동을 펼치고 있는 20, 30대 젊은이들이 있다. '한복으로 세계 정복'이라는 캐치프레이즈(Catchphrase) 아래 약 1400여명의 회원이 활동하는 전통문화 프로젝트 그룹 '한복여행가'가 한 예다. 이 단체의 부단장을 맡고 있는 연세대학교 3학년생 이영현씨(23)는 학교에 갈 때나 여행을 다닐 때 한복을 꺼내 입는다고 한다. 이씨는 왜 한복을 입기 시작한 것일까, 일상생활을 할 때 불편한 점은 없을까 지난 10일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연세대 신촌 캠퍼스에서 그를 만나 이에 대해 들어봤다.

이영현씨(23)가 평소 한복을 입고 다니며 느꼈던 시선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이상봉 기자이영현씨(23)가 평소 한복을 입고 다니며 느꼈던 시선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이상봉 기자


그를 만나기 전 '한복을 착용했으니 쉽게 찾을 수 있겠다'는 예상은 빗나갔다. 이날 이씨는 푸른색 계통의 모던하고 깔끔한 생활한복을 입고 나왔다. 무릎을 살짝 가리는 허리치마에는 노랑과 빨간색의 꽃 패턴이 수놓아져 있었다. 상의는 전통적인 평명재단의 장저고리, 외투는 평상복으로 입는 코트를 매치했다. 한복과 코트를 함께 입어도 전혀 어색함이 없었고, 캠퍼스 속 다른 학생들과 비교해도 크게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단색 저고리에 발까지 내려오는 긴 치마, 당연히 전통한복을 입는 줄 알았다"는 기자의 말에 이씨는 "날마다 전통한복과 생활한복 중에 선택하고, 마음에 드는 저고리나 치마의 색깔을 고른다"며 "평소 일반인들이 옷을 선택할 때 청바지에 어떤 색깔의 티셔츠를 입을지 고민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고 대답했다.

유년시절부터 유난히 한복을 좋아했다는 이영현씨. 그림을 그리더라도 알록달록한 색깔의 한복 입은 사람들만 그렸을 정도라고. 주변 사람들이 그를 '한복 유전자'라고 부른 이유다.

"어렸을 적 제 눈에는 한복이 일종의 '드레스'와 같지 않았나 생각해요. 한복을 입으면 만화영화의 주인공들처럼 아주 예쁘게 변신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웃음). 자연스럽게 성인이 된 지금까지 한복을 좋아하고 입게 된 것 같아요. 지금까지 입었던 한복만 100벌이 넘고, 현재 소유하고 있는 한복은 전통한복과 생활한복을 더해 약 70벌 정도 됩니다."


생활한복(저고리, 치마)과 사복(코트)을 믹스매치하여 입은 이영현씨(왼쪽)/사진=이상봉 기자생활한복(저고리, 치마)과 사복(코트)을 믹스매치하여 입은 이영현씨(왼쪽)/사진=이상봉 기자
전통한복은 우리 고유 의복으로 치마·저고리·바지·두루마기에 조끼·마고자가 포함된다. 반면 생활한복은 전통의 아름다움을 유지하면서 현대인들이 추구하는 실용성과 활동성에 맞게 간소화한 한복이다. 깃, 동정, 고름, 섶 등 전통적인 요소를 생략하고 단추나 지퍼 등이 쓰인다. 퓨전한복은 서양의 드레스와 비슷하게 만들어진다. 볼레로 형식의 저고리와 끈을 허리 뒤로 둘러 리본을 묶기도 한다. 주로 화려하고 반짝이는 소재를 사용하는 편이다.

서울 경복궁, 인사동, 전주한옥마을 등 관광지를 중심으로 한복 대여 사업이 커지면서 한복을 입은 사람을 볼 기회가 더 많아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일상에서 한복을 입고 다니면 신기한 시선으로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씨는 따가운 시선을 받을 때도 있다고 설명했다.

"'왜 한복을 입고 돌아다니냐', '무당이냐', '관종(타인에게 관심을 받고 싶은 욕구가 병적인 수준에 이른 상태)이냐' 등 안 좋게 바라보는 시선도 적지 않았죠. 부모님 역시 사람들의 눈에 띄는 것에 대해 걱정하셨어요. 반면 예쁘고 아름답게 바라봐주는 분들도 있었어요. 한복에 익숙하신 60대 이상 어르신들은 관심을 갖고 칭찬해주시더라고요. 지하철에서 모르는 할머니와 1시간가량 한복에 대해서 이야기 한 적도 있었어요."

명절에만 한복을 꺼내 입는다는 직장인 김수진씨(26)는 "평상시에 입는 사람이 거의 없다보니 낯설어서 눈이 가는 건 사실이다"며 "일상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옷으로 인식되고 발전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찾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여행지에서 한복을 입어 수많은 외국인들의 환호와 VIP급 대접을 받았다.오른쪽이 이영현씨. /사진=본인 제공  이탈리아 여행지에서 한복을 입어 수많은 외국인들의 환호와 VIP급 대접을 받았다.오른쪽이 이영현씨. /사진=본인 제공
이영현씨는 한복을 입기 시작하기 전과 후에 생각의 변화가 컸다고 고백했다. 그는 "예전엔 단아하고 예쁘지만 불편한 옷이라고 생각했다"며 "치마는 땅에 끌릴 정도로 길어야 하고 헤어스타일은 댕기를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실제로 입으니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다"며 "어떤 방식으로든 자기 개성에 맞게 입을 수 있어 발랄하고 유쾌한 에너지를 보여줄 수 있는 옷"이라고 덧붙였다.

전통한복은 특히 외국 여행지에서 진가를 발휘했다고 이씨는 회상했다. 올 초 유럽 여행에서 한복 덕에 많은 외국인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고.

"전통한복을 입고 이탈리아, 스위스, 프랑스를 다녀왔습니다. 말도 먼저 걸어주고, 한국에 대해 질문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식당에선 좋은 자리와 품위있는 만찬을 즐긴 적도 있었어요. 한복 덕에 VIP처럼 특급 대우를 받은 셈이죠(웃음). 인종 차별이나 소매치기를 당한 적도 없었어요. 오히려 한복을 알아보고 제게 다가와서 '한국문화를 사랑한다',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등을 말씀하신 분들도 있었죠. 한복으로 사람들에게 행복과 즐거움을 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시민들이 경복궁에서 한복을 입고 인증사진을 찍고 있다./사진= 머니투데이 DB 시민들이 경복궁에서 한복을 입고 인증사진을 찍고 있다./사진= 머니투데이 DB
얼마전 '한복 착용자 경복궁 무료 입장' 혜택을 퓨전한복은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지난달 11일 서울 종로구는 '전통한복'을 입은 관람객들에게만 경복궁 입장료 면제 혜택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한복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해 시작한 제도가 정체불명의 옷을 홍보하는 목적으로 전락됐다는 점과 '한복의 본질과 전통'에 대해 알아가자는 취지에서다.

대중들의 의견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한복을 찾고 즐기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돼 긍정적이라는 입장과 고유의 전통 한복이 아니어서 결국엔 한복이 아닌 옷을 한복으로 인식하게 된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이씨는 "많은 사람들이 한복에 관심을 갖는 만큼 한복이 어떤 옷인지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며 "퓨전, 개량, 생활한복 등 다양해지는 현상은 좋지만 하나의 형태가 우리가 알고 있는 한복의 전부로 인식돼선 안된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한복 입는 것은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전통과 문화를 내 몸에 입는 과정'이라고 말하며 전혀 특이한 것이 아니다고 전했다. "한복을 일상 속에서도 충분히 입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가치를 전하는 옷인 만큼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면 한복의 미래가 더 밝아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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