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중신용자에 혜택 집중..."빗나간 서민금융"

머니투데이 김진형 기자 2018.10.17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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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서민금융 틀을 바꾸자]<2>10년간 34조원 지원했지만 8~10등급 비중은 9.2% 불과

편집자주 '서민금융'은 신용도가 떨어져서, 소득이 낮아서 금융권에서 돈을 빌릴 수 없거나 빌리더라도 높은 금리를 내야 하는 사람들을 위한 금융이다. 2008년 미소금융으로 시작해 햇살론, 바꿔드림론, 새희망홀씨 등 다양한 상품이 출시됐다. 하지만 10년을 지나며 양적으론 커졌지만 문제를 드러냈다. 복잡한 상품 구조, 공급중심의 정책, 민간상품과의 충돌, 도덕적 해이에 따른 부실률 상승, 재원 고갈 등 서민금융의 문제를 짚어본다.

‘햇살론’과 ‘새희망홀씨’ 대출은 똑같이 저신용자와 저소득층을 위한 생계자금 대출이다. 햇살론은 저축은행과 상호금융에서 취급하고 새희망홀씨는 은행에서 판매한다. 두 상품은 2010년 같이 출시됐다. 햇살론은 신용등급 6등급 이하면서 연소득이 4000만원에 못 미치기나 신용등급과 상관없이 연소득이 2600만원 이하면 받을 수 있었다. 금리는 연 13%였다. 새희망홀씨 대출은 신용등급이 5등급 이하이면서 연소득이 4000만원 이하 또는 연소득이 3000만원이 안되는 사람들이 대상이었다. 금리는 연 19% 이내였다.



현재는 두 상품 모두 지원 조건이 동일하다. 6등급 이하(연소득 4500만원 이하) 또는 연소득 3500만원 이하다. 신용등급과 소득 기준 모두 완화됐다. 금리도 연 10.5% 이하로 똑같다. 고금리 대출을 은행의 저금리 대출로 바꿔주는 ‘바꿔드림론’도 조건은 동일하다. 대부업 대출조차 거절되는 사람이든, 금리 연 20%에 돈을 빌릴 수 있는 사람이든, 연 15%의 금리가 적합한 사람이든 지원 기준만 충족하면 모두 같은 금리로 정책 서민금융 대출을 이용할 수 있다.
[MT리포트]중신용자에 혜택 집중..."빗나간 서민금융"


◇낮추고, 넓히고, 더주고...공급에 치중한 서민금융= 서민금융은 이명박 정부가 2008년 미소금융을 도입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래 거의 매년 강화 방안이 나왔다. 2008년 7월 ‘금융소외자 지원 종합대책’을 시작으로 매년 활성화, 지원 강화, 제도 개선 등의 이름으로 대책이 발표됐다. 수차례의 대책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공급 확대였다. 지원 대상을 늘리고, 금리는 낮추고, 상품은 확대했다.

서민금융 상품 하면 미소금융, 햇살론, 바꿔드림론, 새희망홀씨 등 소위 4대 금융상품만 알려져 있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 보면 대학생·청년 햇살론, 햇살론 청년·대학생 임차보증금, 취업성공대출, 취약계층자립자금, 징검다리론, 정책 서민금융 이용자 전세특례보증, 햇살론 대환대출, 대학생·청년 대환대출, 안전망대출 등 27개에 달한다.



서민금융 공급 규모도 매년 지속적으로 확대돼왔다. 2010년 3조3000억원 수준에서 2014년 4조5000억원, 지난해에는 7조원으로 커지며 지난해 말까지 총 37조5000억원이 공급됐다. 올해도 지난해 수준으로 공급될 것으로 예상돼 연말이면 40조원을 넘어선다.

하지만 이 중 저신용자인 신용등급이 8~10등급에 공급된 비중은 9.2%에 불과하다. 반면 6등급 이상 비중은 60.4%에 달한다. 6등급 이상 신용도라면 제도권 금융기관에서도 대출이 가능하지만 정책 서민금융 자금을 받아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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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구 금융위원장도 지난 6월 서민금융체계 개편 태스크포스(TF)를 출범하면서 “금리를 인하하고 지원 대상의 범위를 확대하는데 중점을 두다 보니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양호한 6~7등급은 시장상품(중금리)과 정책상품(햇살론)을 선택적으로 이용 가능한 반면 지원이 절실한 8~9등급 이하 분들은 오히려 정책적 지원에서 배제돼 대부업체 등의 최고금리 상품으로 내몰리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민간 금융회사의 중·저신용자용 상품 개발을 막아버리는 일종의 구축 효과도 발생하고 있다. 햇살론은 90%, 바꿔드림론은 100% 보증상품이다 보니 민간 금융회사들이 자체 상품을 만들 필요가 없다. 이재연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상호금융 등 서민금융회사에서 담당해야 할 부분을 정책자금이 차지하는 상황이 돼 버렸다”며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햇살론 등의 서민금융 상품이 운영되다 보니 상호금융이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도덕적 해이도 나타나고 있다. 특히 금리 연 20% 이상의 고금리 대출을 연 10.5% 이하의 은행 대출로 바꿔주는 바꿔드림론은 대부업체들의 영업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연 20% 이상의 고금리 대출을 6개월 이상 정상적으로 상환해야 한다’는 조건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바꿔드림론의 부실율은 올 6월말 현재 28.6%에 달한다.

◇사채시장은 없는 시장?...방치된 암시장= 정부의 서민금융 지원은 은행부터 대부업까지 제도권 금융시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대부업체조차 이용하지 못해 불법 사채시장으로 내몰리고 있는 진짜 저신용자들은 방치돼 있다.

김선동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 8일 공개한 나이스평가정보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상위 20개 대부업체의 대출 승인율은 13.4%에 불과했다. 10명 중 9명은 대부업체에서도 대출이 거절됐다는 의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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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권 금융기관의 마지막 단계인 대부업체에서도 대출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갈 수 있는 곳은 사채시장밖에 없다. 하지만 사채시장에 대해서는 정부가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장은 “대부업체에서라도 돈을 빌릴 수 있는 사람들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라며 “사채시장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최고금리가 낮아지면 사채시장으로 내몰리는 사람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2014년 24.5%였던 대부업체의 대출 승인율이 10%대까지 떨어진 것도 최고금리 인하와 연관이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금융연구원 분석을 통해 최고금리를 연 24%로 인하한 영향으로 최소 38만8000명, 최대 162만명이 제도권 금융기관에서 탈락할 것으로 추정했다.

서민금융연구원의 조 원장은 “불법 사금융 시장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사채시장밖에 이용할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상담을 강화해 서민금융 시스템에서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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