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법의학자는 고작 59명… 하루 평균 3~4구 시체 부검
부검은 보통 4명 정도가 팀을 이룬다. 집도 부검의 1명과 시체를 뒤집거나 톱으로 두개골을 여는 등 보조 역할을 맡는 법의조사관 2명, 카메라로 기록하는 사람 1명 등이다. 시체 1구를 부검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1시간 내외다.
시체를 메스로 열어 보는 게 부검의 다는 아니다. 부검 전 수사 기록이나 병원진료서도 꼼꼼하게 살핀다. 이숭덕 서울대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교수(55)는 "의학 증거에만 국한하면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없다"며 "정황적 소견을 보면 더 충실한 해석을 할 수 있고, 수사 자료를 보면 해석 범위도 폭넓어진다"고 말했다.
문서 작업도 빼놓을 수 없다. 이수경 법의관은 "아침 8시에 출근해 오전 내 부검 한 뒤 퇴근 전까지 감정서 작성에 매달린다"고 말했다. 며칠 혹은 일주일 전 부검한 시체들의 부검서다. 당일 오전 부검한 시체는 혈액과 장기조직을 정밀검사 해야 하기 때문에 곧바로 작성할 수 없다. 부검감정서 작성까지는 시체 1구당 대략 2~3주가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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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에 휘말린 시체만 부검한다는 것도 오해다. 국과수에 따르면 2016년 국내에서 부검이 이뤄진 사망자는 총 8335명이었다. 이 중 외인사(사고·타살 등 신체 외적인 원인)가 48.3%, 내인사(질병 등 신체 내적인 원인) 41.4%로 나타난다. 외인사 중 사고사가 1584명(39.3%)으로 가장 많고, 자살 1378명(34.2%), 타살 428명(10.6%) 순이다.
부검을 해도 모든 사인이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시체가 심하게 부패하거나 백골화된 경우 사인을 정확히 알기 어렵다. 2016년 국내에서 부검한 사망자 중 약 13%인 987명은 끝내 사인을 밝혀내지 못했다. 다만 이숭덕 교수는 "법의학은 의학과 법학을 결합해 의미 있는 결과를 내는 것"이라며 "꼭 사망 원인을 밝혀내지 못해도 그 외 의미있는 메시지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법의학자들은 꼭 유족 동의가 없더라도 의문스러운 죽음이라면 부검이 필수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법의학에서는 사망자 중 통상 15%가량을 사인불명 변사로 본다. 그러나 연간 약 3만건 변사 가운데 부검이 이뤄지는 7000~8000건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2만건 이상은 끝내 죽음의 이유가 밝혀지지 않는다.
◇"부검, 산 자도 구한다… 보건·안전 대책 마련에 도움"
우리나라는 몸에 손대는걸 꺼려 하는 과거 문화 때문에 "죽은 사람을 두 번 죽일 작정이냐"며 부검에 반감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반면 일본은 병원에서 치료받다 사망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부검을 한다. 범죄 가능성이 없더라도 사인 파악이 안되면 '행정부검'을, 범죄 가능성이 의심 되면 '사법부검'을 한다.
이숭덕 교수는 "억울한 죽음이 나오지 않도록 국가가 가능성 있는 것은 다 조사해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문제는 그 결정을 자의적으로 한다는 것"이라며 "부검을 하는 기준을 국가가 정해야 하고 기준에 맞지 않아 부검을 하지 않는다면 최종적으로 누가 결정할지 등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부검은 망자뿐만 아니라 산자를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이수경 법의관은 "사인이 명확한 병사라도 부검해서 얼마나, 어떻게 병을 앓았는지 통계를 만들면 우리 국민에게 적합한 보건정책을 쓸 수 있다"며 "화재 사건 시신도 부검하면 상흔들로부터 해당 건물이 부실하게 지어지진 않았는지 등 정보를 얻어 안전대책을 만드는 데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