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서울대 의대 연구실에서 유성호 서울대 법의학교실 교수가 부검 관련 주요 업무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홍봉진 기자
이날 유 교수를 찾아온 검체(시신)는 모두 3구다. 유 교수는 매주 월요일 서울대병원 인근 경찰서들이 의뢰한 사인불명의 사체 3~4구를 부검한다. 일반 의사들이 하루에 일정 횟수 이상 수술을 집도하지 않듯 부검의 역시 피로도와 집중도 등을 고려해 하루 4구 이상 부검하지 않는다. 미세한 증거도 놓치지 않으려 부검은 반드시 자연광이 비치는 오전에 진행한다.
부검을 하고 있는 유성호 서울대 법의학교실 교수. /사진제공=유성호 교수
세 번째 사체는 물속에서 발견돼 사인이 익사로 추정됐다. 앞선 사체들과 달리 시취(시신에서 나는 냄새)가 강하고 신체 일부가 부풀어 오른 점이 특징이다. 사체가 물속에 있다가 공기 중으로 나오면 몸속 세균들이 급격히 번식하며 가스를 만들어 내고 이 때문에 안구 등 신체가 상당히 부푼다.
유 교수는 가슴을 열어 폐나 식도 등 각종 장기에 물이 찼는지 확인했다. 또 사체에 흡수된 플랑크톤을 추출하기 위해 장기 일부를 잘라뒀다. 혈관이나 장기에 얼마나 플랑크톤이 퍼졌는지를 보고도 익사 여부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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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서울대 의대 연구실에서 유성호 서울대 법의학교실 교수가 부검 관련 주요 업무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홍봉진 기자
유 교수는 각 사체 부검이 끝날 때마다 작성해 둔 조직검사표를 어시스턴트들에게 건넸다. 조직검사는 마약분석, 유전자분석, 조직분석 등 각 항목에 따라 사체에 필요한 검사들을 간단히 표시해두는 일종의 체크리스트다.
이후 연구실에 돌아와 간단히 식사를 끝내고 본격적인 서류 작업을 시작한다. 가장 중요한 일은 부검소견서 작성이다. 부검소견서는 부검 당시 확인한 사실 외에도 미리 요청해 둔 조직검사 결과, 사건 수사 내용 등을 종합해 사인을 병사·외인사·원인불상 중 하나로 결론낸다. 조직검사 결과가 나오는 데 적어도 수일이 걸리기 때문에 부검소견서 작성까지는 사체당 2~3주 정도가 필요하다.
이렇게 제출한 유 교수의 소견서는 사건 해결에 중요한 실마리다. 사법기관이 요청하면 유 교수는 감정서의 내용을 법정에서 증언하기도 한다. 쉴 틈 없는 하루에도 유 교수는 "나는 그래도 부검을 적게 하는 편"이라며 "국과수 법의관들은 이런 부검을 일주일에 2번, 즉 최대 8건의 부검을 하다 보니 사명감 없이는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 교수처럼 부검을 하는 의사는 전국에 딱 59명이다.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지는 식의 억울한 죽음을 용납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부검의 중요성은 커지지만 매년 법의학자 수는 제자리걸음이다. 2018년 기준 전국 의대 중 법의학교실에서 유 교수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전공자(의사 출신)는 단 3명뿐이다.
유 교수는 "법의학자는 망자의 사인을 밝혀 정의를 구현하는 보람찬 일임에도 '사체를 해부한다'는 부정적 편견 등으로 전공자가 부족한 점이 상당히 안타깝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