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운명의 날’ D-10…6개월 재판이 가리키는 진실은

뉴스1 제공 2018.09.2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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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예상 깨고 檢 증거 전체 동의하기도
결국 '다스는 누구 것'이 핵심…10월5일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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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 News1 사진공동취재단이명박 전 대통령.© News1 사진공동취재단


2018년 5월9일 낮 12시14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변호인인 강훈 변호사가 보낸 메시지를 두고 법원 기자실이 술렁거렸다.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부터 "바짓가랑이를 잡고서라도 뜯어말리지 않은 변호인의 실책"까지 의견이 분분했다. 어떤 기자는 "둘 중 하나다. 대단한 노림수거나 어이없는 자책골이거나"라는 말도 했다. 어느 쪽이건 법조 기자들이 예상하지 못한 선택임에는 분명했다.

"(…)증거인부서는 모든 증거를 동의하고 입증 취지를 부인하는 내용으로 제출했습니다. 이는 통상적으로 부인하는 피고인이 제출하는 의견서와는 다른 것입니다. 변호인은 통상 제출하는 것처럼 대부분의 증거를 부동의하자고 주장했습니다만, 대통령께서 반대하셨습니다(…)"(강훈 변호사)



일반적으로 무죄를 주장하는 피고인은 검찰이 제출한 증거를 부동의하고, 이를 반박하기 위한 반대 증인을 신청한다. 자신의 혐의를 입증하려는 검찰의 증거가 실체적 진실과 다르다는 점을 최대한 많이 드러내 재판부에 무죄의 심증을 심기 위해서다. 박근혜 전 대통령 1심 재판은 증인으로 138명이 서기도 했다.

변호인의 말은 이 전 대통령이 이런 피고인의 권리를 모두 행사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혐의를 부인하는 피고인으로선 매우 이례적인 선택이다. 검찰은 당연히 반색했다. 다음 날 열린 공판준비기일에서 검찰은 "신청할 증인이 있느냐"는 재판부의 질문에 "이미 신청된 증거로도 공소사실이 입증된다"고 답했다.



강훈 변호사는 이런 선택을 한 배경에 대해 "이 전 대통령께선 '(과거 측근들을) 법정에 불러와 거짓말을 한 것 아니냐는 추궁을 하는 게 대통령을 지낸 사람으로서 금도(襟度)가 아닌 것 같다'고 하셨다"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이 전 대통령이 죄를 다투지 않고 선처를 바라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그 경우 77세의 고령인 이 전 대통령이 최소 몇 년은 옥살이를 해야 한다는 점, 문재인 정부가 사면은 없다고 단언한 점 등이 물음표로 따라붙었다.

일각에선 친인척·참모 등 최측근들이 자신에게 등을 돌린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내린 선택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 등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사람들을 법정에 세운다면 거기에서 무슨 '폭탄'이 터질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는 대승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등 일반적인 피고인의 권리 대신 전직 대통령으로서 여론을 무기로 삼아 정치적 투쟁에 나선 것이란 이야기도 있다. 어쨌건 증인신문 절차가 통째로 없어지면서 법리 다툼만 하게 된 재판은 심리 진행 절차가 크게 단축됐다.

© News1 이윤기 기자© News1 이윤기 기자
정식 재판에서 검찰이 밝힌 이 전 대통령의 16개 혐의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뉘었다. 회사 자금으로 비자금을 조성해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고 삼성에서 소송비까지 받은 다스 관련 횡령·뇌물 혐의, 김성호·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으로부터 특수활동비를 받은 혐의,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등으로부터 공직 임명 대가로 뇌물을 받은 혐의 등이다.


이 중 이 전 대통령 재판의 핵심은 결국 '다스 실소유주'다. 검찰은 이 전 대통령이 다스를 실소유했기에 회사 자금 349억원을 빼돌려 개인적으로 쓸 수 있었고(횡령), 삼성에서 다스 소송비 67억여원을 받았다고(뇌물) 본다. 이 전 대통령은 111억원의 뇌물수수와 349억원의 횡령 혐의를 받는데, 다스가 이 전 대통령 소유가 아니라면 이런 검찰의 공소 논리가 무너질 수도 있다.

이 전 대통령이 다스 실소유주였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검찰이 핵심으로 내세웠던 건 김성우 전 다스 사장의 진술이었다. 다스 설립 준비 단계부터 설립 이후까지 이 전 대통령이 다스 관련 주요 결정에 개입했다는 구체적인 정황이다. 6월14~15일 검찰이 공개한 김 전 사장의 진술조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현대건설 대표이사였던 피고인이 직원인 저를 불러 '부품 회사를 만들어 키울 생각인데 일을 해달라'고 해 대부기공(다스의 전신)을 설립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1985년 퇴사 후 1986년 초 공장 부지를 선정했는데 처음에는 거의 과수원 밭이었습니다. 밀어버리는 데 4~5개월 걸렸고, 그때부터 논현동 자택을 드나들었습니다. 수시로 찾아 설립 준비 현황을 보고했고 설립 후에도 수시로 보고했습니다. 통화도 자주 했습니다. 당시 저는 경주 대부기공 사무실 타자기 한 대 구입하는 것까지 세세한 내용을 다 보고했습니다."

"회사의 중요한 결정은 피고인의 지시로 이뤄졌습니다.(…) 1996~2001년까지는 다스 돈으로 매년 10억~20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해 전달했습니다.(…) 1985년 다스 창업 준비 때부터 매년 초마다 논현동 자택·영포빌딩 사무실·서울시장 공관에서 피고인에게 결산보고를 했습니다.(…) 피고인은 보고받는 자리에서 비자금 조성 부분을 보며 매우 흡족해했습니다.(…) 2006년 보고할 때는 '내가 큰 꿈이 있으니 올해부터는 위험한 일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장차 대통령이 되길 원하니 문제가 될 일을 더 이상 하지 말라는 취지였습니다."

이 전 대통령 측은 다스의 실소유주가 형님인 이상은 회장이라고 주장했다. 김 전 사장의 진술에 대해선 신빙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이 전 대통령도 김 전 사장에 대해선 직접 나서 말을 보탰다. "(…)당시 BBK 특검이 끝나고 인수위에 들어가 바빴는데, 이상은 회장 등이 (김성우 사장을) 그냥 불러다놓고 내쫒다시피 했습니다. 그래서 감정이 상했을 것으로 짐작합니다.(…)"(2018년 6월15일) 진술 자체가 아닌 진술자를 공격해 흔드는 전략이다.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 © News1 성동훈 기자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 © News1 성동훈 기자
각론으로 들어오면, 16개 혐의 중 이 전 대통령의 뇌관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삼성 뇌물수수 의혹이다. 이 전 대통령은 이건희 회장을 사면해주는 대가로 삼성에서 67억원의 다스 소송비를 뇌물로 받은 혐의가 있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혐의는 수뢰액이 1억원 이상이면 무기징역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한다. 유죄로 인정된다면 이 전 대통령은 최소 징역 10년이라는 이야기다.

특히 삼성 뇌물수수 의혹과 관련해서도 '다스가 누구 것이냐'는 의문은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 이 전 대통령 때문이 아니라면, 국내 최대 대기업인 삼성이 도대체 왜 현대자동차의 조그만 협력업체에 67억원이나 되는 소송비를 대납했냐는 게 검찰이 던지는 의문이다. 검찰은 삼성이 다스의 실소유주인 이 전 대통령을 통해 현안을 해결하려 했기에 소송비를 줬다고 봤다.

검찰은 이를 입증하기 위한 핵심 증거로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이 '다스 소송비를 삼성에서 대신 납부하게 했다'고 털어놓은 자수서를 7월10일 공판에서 공개했다.

"(…)2008~2009년 청와대를 다녀온 김석한 변호사가 '엠비 관련 미국 내 소송 비용을 삼성에서 지급했으면 좋겠다'고 요청한 사실이 있다.(…) 회장님께 보고했더니 '청와대가 말하면 그렇게 하라'고 하셨다.(…) 에이킨 검프(A'kin Gump)가 삼성전자에 소송비를 청구하면 그 비용을 대신 지급했다.(…) 엠비 측 소송비용을 대신 지급하면 나중에 회장님 사면에 조금은 도움되지 않겠나 기대를 가진 게 사실이다.(…) 국민적 의혹이 집중된 사건이라 잘못을 솔직히 말씀드리고 법적 책임을 감당하는 게 옳다고 생각해 조기 귀국해 자수했다.(…) 당시에는 회사와 회장님을 위한 것이라 믿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면 후회막급이다."

삼성 뇌물수수 혐의가 인정되지 않더라도, 이 전 대통령이 공직 임명의 대가로 뇌물을 받은 혐의가 아킬레스건이 될 수도 있다.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에게 받은 22억원, 김소남 전 의원의 4억원,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7억원 등이다. 이 역시 유죄로 인정될 경우 최소 징역 10년인 특가법상 뇌물 혐의이기에 중형 여부를 가를 핵심이다.

특히 이팔성 전 회장이 금품 공여 당시 상황을 적은 '비망록'은 뇌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엠비 증오감 솟아나는 건 왜일까.(…) 엠비와 인연 끊고 세상살이를 시작해야 하는지 여러 가지가 괴롭다. 30억원을 지원했다. 옷값만 얼마냐"(2008년 3월23일) 등 상세한 정황과 당시의 심경이 고스란히 적혔다. 이 전 회장은 검찰 압수수색 당시 수사관이 '이상주에 14억5000만원, 이상득에 8억원을 줬다'고 적힌 메모지를 발견하자 입에 집어넣어 삼키려고 하는 등 필사적으로 감추기도 했다.

현재까지 이 전 대통령이 인정하는 혐의는 다스 법인카드 사용과 국정원 특활비 중 10만달러 수수 부분이다. 하지만 이는 "형님의 경제적 도움으로 인식"했고, "원래 예산의 목적에 맞게 대북 공작 용도로 사용했다"고 말하는 점에서 무죄를 주장한다고 볼 수 있다. 법원은 이를 판단한 결과를 10일 후인 10월5일 오후 2시에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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