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로 돌아간다면 그때의 제게 조언해주고 싶어요. 고민하지 말고 더 일찍 떠나라고." 10년 지기 두 친구의 좌충우돌 세계 여행기를 담은 책 '서른, 결혼 대신 야반도주'의 저자 위경은(필명 위선임)씨는 "여행 전으로 돌아가도 다시 떠날 거냐"는 기자의 말에 웃으며 답했다.
위경은씨(왼쪽)와 김연우씨가 세계여행 중 찍은 사진. 해변에서 한가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사진 제공=김연우, 위경은씨
퇴사 후 세계여행을 떠나는 이들도 많다. 직장인 안모씨(28)는 "수년간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나는 그저 회사의 부속품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어 퇴사를 결심했다"며 "내년 초 세계여행을 떠나 나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것"이라 말했다. 이처럼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품속에 지니고 있는 '사표'를 던지고 낯선 나라를 여행하며 진정한 나 자신을 발견하는 이야기. 근사하지 않은가.
달리는 트럭 위와 사막에서 온몸으로 여행을 만끽하고 있는 위경은(왼쪽), 김연우씨. 굉장히 신나 보인다./사진 제공=김연우, 위경은씨
잘 다니던 회사 '때려치우고' 여행을 떠나다
사표를 내고 여행을 떠나기로 한 이유는 바로 위씨의 건강 악화 때문이었다. 위씨는 직장생활 4년 차 되던 해, 예고 없이 슬럼프가 찾아왔다고 했다. "직장에서 너무나 큰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온몸이 망가졌어요. 연말정산 도중 그해 쓴 의료비가 700만 원이 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아, 나는 지금 쉬어야 하는 타이밍이구나' 싶었죠."
'서른, 결혼 대신 야반도주' 저자 김연우(왼쪽), 위경은씨. /사진=이상봉 기자
위씨가 '퇴사하고 배낭여행 가자'는 말을 어렵게 꺼냈을 때 김씨는 단 3초 만에 '오케이'를 외쳤다고 했다. 가슴 속에 숨어 있던 '여행 욕구'의 도화선을 위씨가 당겨준 것 같았다고. 위씨는 "어찌나 빨리 대답하던지. 오죽하면 제안한 내가 한 번 더 생각해보라고 말렸을 정도였다."고 말하며 폭소했다.
인도에서 맹장 터지고, 자금 바닥나 딸기 농장에서 일하기도
평범한 배낭여행객들이 선호하는 유럽이 아닌 남미,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등을 다녔던 두 사람. 여행 중 가장 아찔했던 순간으로 인도에서 위씨가 맹장 수술을 받았던 순간을 꼽았다. 김씨는 "귀국 3일 전에 선임이의 맹장이 터졌다. 보호자는 나 하나뿐이어서 직접 (인도의) 병원을 선택하고 수술 스케줄을 잡아야 했다. 매우 큰 부담을 느꼈고 아찔했다."며 당시의 심경을 격정적으로 토로했다.
이에 위씨는 김씨의 존재만으로 큰 힘이 됐다고 했다. "타지에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너무 무서웠어요. 수술실에 들어가면서 제발 눈을 뜨게만 해 달라고 기도했을 정도로요. 수술 후 눈을 떴을 때 멋지의 얼굴을 보는 순간 너무 반갑고 눈물이 났죠."
여행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호주의 딸기 농장에서 노동 중인 김연우(위쪽), 위경은씨./사진=김연우, 위경은씨 제공
콘텐츠 크리에이터로서의 첫발을 내딛다
꿈같은 여행 끝에는 팍팍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는 법. 오죽하면 '여행 후유증이 가장 무섭다'는 말이 생겨날 정도다. 이에 대해 걱정하지 않았냐고 묻자 김씨는 "별걱정 안 했다"며 "다 잃는다고 해도 몸뚱이 하나는 있으니 뭐라도 하면서 먹고 살겠지 싶었다"고 했다. 반면 위씨는 '나이도 먹고 경력 단절도 올 텐데 결혼은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에 출국 전날까지 밤잠을 설쳤다고 털어놨다.
지난 11일 광화문 북바이북에서 북토크를 진행하는 김연우(왼쪽), 위경은씨 /사진=강선미 기자
달라진 현실만큼이나 여행은 두 사람이 삶을 대하는 자세도 바꿔 놨다. 김씨는 "가만히 있는 것보다 행동으로 옮길 때 재밌는 일이 많이 생긴다는 걸 배웠다. 뭔가를 할 때 늘 망설였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무조건 행동으로 옮기려 한다"고 했다. 위씨는 "여행 당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밀고 나갔던 경험이 지금 내 삶을 지탱하는 원동력인 것 같다. 이전에는 내 의견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이젠 아닌 건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뭐든 해보지 않으면 몰라… 작은 것부터 도전을
마지막으로 두 사람은 고민하는 청춘들에게 묵직한 조언을 남겼다. 위씨는 "일단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면서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끊임없는 미련이 든다면 한 번쯤은 무작정 가보는 것이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김씨도 "퇴사나 결혼, 여행처럼 큰 선택이 아니어도 된다"며 "관심이 가는 게 있다면 조그만 일이라도 처음부터 시작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호숫가에서 우쿨렐레를 연주하고 있는 위경은(왼쪽), 김연우씨./사진=김연우, 위경은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