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면부지 남과 추석 만찬을…'명절 소셜 다이닝' 왜?

머니투데이 성남(경기)=이해진 기자 2018.09.23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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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스트레스 싫어, 가족보다 마음 맞는 '대체가족'"…혼추족도 확산, 新 풍속도↑

추석 전날인 23일 오후 경기 성남시 분당구 한 가정집에 '소셜다이닝'을 위해 참가자들이 모였다. /사진=이해진 기자추석 전날인 23일 오후 경기 성남시 분당구 한 가정집에 '소셜다이닝'을 위해 참가자들이 모였다. /사진=이해진 기자


추석 하루 전날인 23일 오후 5시30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의 한 가정집으로 생면부지의 사람들 13명이 이른바 '추석 파티'를 위해 모였다. 식탁에는 초밥, 샐러드, 중동음식인 후무스, 연어 구이 등에 와인이 곁들여진 이색 추석 밥상이 차려졌다. 대다수 국민이 가족들과 모여 즐기는 연휴에 추석맞이 한 끼를 위해 남들과 모인 이유는 무엇일까.



명절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려는 이들이 늘면서 이른바 '명절 소셜다이닝(socialdining)'이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소셜다이닝은 온라인에서 만난 낯선 이들이 오프라인에서 직접 만나 식사하는 모임을 말한다.

모임을 주최한 심한나씨(44)는 "추석을 홀로 보내야 하거나 친척들의 취업·결혼 잔소리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한 즐거운 추석 파티를 열고 싶었다"고 말했다.



대학생 성강현씨(26)는 "명절 때마다 안부를 이유로 취업이나 진로에 대해 묻는 친척 어른들로 스트레스가 쌓이곤 했다"며 "차라리 모르는 남들과 서로의 관심사와 고민을 나누면 더 즐거운 추석을 날 수 있을 것 같아 참가했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이름·나이·직업은 밝히지 않고 취미나 관심사로 자신을 소개했다. 참가비는 없고 각자 음식을 준비해오는 방식이다. 처음 보는 사이임에도 만들어온 음식을 함께 나눠 먹으며 금세 즐겁게 이야기꽃을 피웠다.

직장인 권기정(40)씨는 "이번 추석부터는 명절에 시댁과 친정을 가지 않고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보내기로 결정했다"며 "새로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재밌는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시각예술가 나미나씨(35)도 "이렇게 소셜다이닝을 통해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지적 영감을 얻을 수 있어 좋다"며 "추석이라고 해서 반드시 가족과 보내야 한다는 법은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명절 소셜다이닝' 밥상에는 일반적인 추석 밥상과 달리 연어구이, 초밥, 샐러드 등에 와인이 곁들여졌다./사진=이해진 기자'명절 소셜다이닝' 밥상에는 일반적인 추석 밥상과 달리 연어구이, 초밥, 샐러드 등에 와인이 곁들여졌다./사진=이해진 기자
아예 나 홀로 추캉스(추석+바캉스)를 보내려는 젊은 '혼추족'(혼자 추석을 즐기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이들은 도심 호텔에서 스파와 호텔 뷔페를 즐기거나 맛집을 찾아다니면서 혼자만의 여유를 만끽한다.

이 같은 영향으로 호텔 예약도 붐빈다.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은 이달 18일 기준 올해 추석 패키지 예약률이 작년 대비 약 30% 증가했다. 당일 예약이 많은 기간이라 예약률이 더 높아질 것으로 호텔은 기대했다. 쉐라톤 서울 팔래스 강남 호텔도 추석 패키지 예약률이 지난해 대비 25% 증가했다. 롯데호텔월드는 만실에 가까운 예약율을 보이고 있다.

추석 당일과 이튿날 1박2일 간 서울 시내 한 호텔 숙박을 예약한 대기업 직장인 문모씨(32·여)는 "평소 회사 일로 몸도 마음도 지쳐있었는데 연휴 때만이라도 혼자 느긋하게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혼추족들도 있다. 대학생 이모씨(24)는 "친척들에게 취업 이야기로 들볶일 것이 뻔해 혼자 집에 남기로 했다"며 "혼자 심야 영화도 보고 맛집 투어도 다닐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명절 신풍속도를 가족의 의미가 약해지는 현대 사회 특성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분석한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현대인은 가족의 일체감이 약화 되고 개인주의 가치를 지향하게 되면서 오히려 명절날 친척과의 만남이 스트레스나 불화로 이어지는 경험을 하게 됐다"며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가족 보다는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타인과 연대하는 모임에서 더 유대관계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원섭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도 "현대인은 가족보다 대체가족으로부터 정신적 위안을 얻는 경향이 있다"며 "자연스럽게 명절에도 혼자만의 시간을 갖거나, 남이라도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정신적으로 더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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