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집값은 버블일까, 집값이 올라 배가 아픈 걸까

머니투데이 권성희 금융부장 2018.09.22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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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 투자노트]

많은 분들이 지난 15일에 올린 저의 글 '서울 집값은 오를 수밖에 없다’에 의견을 주셨습니다. 그 중 집값이 투기꾼들에 의한 버블이란 반박과 저의 서울 주택 소유 여부에 대한 지적은 대답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여기에 답한 뒤 요 근래 서울 집값 폭등에 대한 저의 소회를 밝히려 합니다.

서울 집값은 버블일까, 집값이 올라 배가 아픈 걸까


서울 집값이 버블이란 반박의 근거는 △단기 급등 △소득 수준에 비해 과도한 집값 △인구 감소 △외지인 거래가 많다는 점 등이었습니다. 첫째, 서울 집값의 상승 속도와 폭이 너무 가파르다는 지적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서울 웬만한 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1~2년새 억 단위로 뛰었으니까요.



다만 리처드 플로리다의 ‘도시는 왜 불평등한가’에 따르면 “슈퍼스타 도시들의 부동산 가격 폭등은 극도의 집중으로 희소한 토지에 대한 경쟁이 가열된 지난 10~20년 사이에 발생했다”고 합니다. 단기 급등은 전세계 주요 대도시 부동산의 공통점이라는 지적입니다.

문제는 서울 집값이 너무 짧은 1~2년새에 폭등했다는 점인데요. 이는 버블의 근거가 될 수도 있지만 서울 집값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별 변동이 없다가 최근 1~2년새 급등한 점을 고려하면 다른 대도시 부동산과의 가격 격차 줄이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둘째, 소득 수준에 비해 집값이 과도하다는 지적입니다. 한국의 소득 대비 집값(PIR)은 분석기관에 따라 선진국 수준에 거의 도달했거나 오히려 넘어섰습니다. 하지만 PIR의 약점은 평균 소득을 따진다는 점입니다. 소득 양극화가 심해지면 평균 소득에 따른 분석에 함정이 생깁니다. 평균 소득과 비교하면 도저히 살 엄두가 안 나는 집값인데 고소득자에겐 아닐 수 있으니까요. 소득 양극화는 이런 고소득자가 늘었다는 의미입니다. 아울러 그간의 경제 성장으로 자산 축적이 이뤄진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점도 감안해야 합니다.

셋째, 서울 인구가 줄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통계청의 ‘국내 인구 이동통계’에 따르면 올 1~6월 서울 인구는 5만2254명 줄었습니다. 지난해에도 9만8486명이 감소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서울에서 인근 신도시의 새 아파트로 이주가 늘었기 때문이지 서울을 활동 근거지로 하는 사람이 줄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다른 슈퍼스타 도시들도 인구가 늘어 집값이 오르는 것은 아닙니다. 플로리다는 ‘도시는 왜 불평등한가’에서 “인구 증가는 슈퍼스타 도시의 중심에 존재하는 역동성을 포착하지 않는다”며 “많은 사람들이 이런 도시의 높은 생활비를 감당하지 못해 더 저렴한 지역으로 이동”한다고 설명합니다. 다른 중소 도시로 어쩔 수 없이 이동했지만 기회만 되면 다시 돌아오고 싶은 것이 슈퍼스타 도시의 매력입니다.


게다가 국내 인구가 전체적으로 감소한다고 해도 가장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도시는 지금으로선 서울일 겁니다. 대중교통 시설이 가장 뛰어나고 편의시설이 가장 많고 일자리도 풍부하니까요.

넷째, 이런 이유 때문에 외지인 즉, 서울 비거주자들까지 서울 집을 사는 것입니다. 이를 투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서울 비거주자로선 서울 집값이 더 오르기 전에 자녀가 서울에 입성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자는 나름의 수요가 있는 셈이죠. 결과적으로 비강남인의 강남 아파트 거래가 늘고 서울 비거주자의 서울 집 매입이 늘었다는 것은 투기의 근거일 수도 있지만 인구 감소에 대비해 가장 안전한 곳에 집을 마련해두자는 합리적인 선택의 근거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서울 집값이 더 오를지, 이제는 떨어질지 모릅니다. 모든 경제 전망은 신의 영역, 혹은 운의 영역에 속한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어떤 자산이든 언제나 오를 이유도 있고 떨어질 이유도 있더군요. 집을 사야 하느냐, 팔아야 하느냐의 문제 역시 오를 이유와 떨어질 이유를 가능한 많이 수집해 분석한 뒤 본인이 선택할 문제입니다. 다만 서울 집값 상승을 투기의 결과로 보는 정부의 접근 방법은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글로벌 도시로서 서울의 집값 상승 원인을 소개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무주택자입니다, 서울은 물론 전국 어디에도 집뿐만 아니라 어떤 형태의 부동산도 없습니다. 2015년 말 건강에 이상이 생겨 이듬해 서울 핫한 지역에 있던 집을 팔았습니다. 건강상태를 장담할 수 없어 언제 직장을 그만둬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 대출을 갖고 있기가 부담스러웠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집 판 걸 후회하지 않느냐고 합니다. 물론 아쉽죠. 하지만 전 대출 부담이 없었기에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하고 PT(퍼스널 트레이닝)를 받고 각종 건강식품과 약을 아낌없이 사 먹을 수 있었고 덕분에 지금까지 비교적 건강하게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집을 끼고 있었다면 대출 원리금을 갚느라 건강에 돈을 쓰기가 어려웠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서울 집값이 급등하며 한국이 서울 유주택자와 나머지로 갈라졌다고 합니다. 집도 없는데 집값이 너무 올라서, 또는 집은 있는데 남의 집값이 더 올라서 속상한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겁니다. 하지만 저처럼 집이 없는 선택을 했던 과거 자신의 결정을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집이 없음으로 인해 얻은 것이 무엇이라도 있을 테니까요. 인생은 태어나 죽을 때까지 선택으로 채워집니다. 과거의 내가 내린 선택도 이해하고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집 외에 인생에 가치 있는 다른 많은 일로 시선을 돌리는 것도 필요합니다. 최근 인도에서 한달, 호주에서 한달, 이런 식으로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30대 부부에 대한 글을 읽었습니다. 강남에 20억짜리 아파트에 사는 것과 세계 곳곳에서 한두달씩 살아보는 것 중 하나를 고르라면 무엇을 선택하고 싶나요? 전 후자가 더 가치 있게 느껴집니다.

집이 없더라도, 혹 집이 있는데 초라하더라도 그 외에 가진 것들을 생각해보세요. 건강이나 자녀, 직장, 젊음, 여행한 경험 등등. 넓고 길게 바라보면 집은 우리 인생의 작은 일부분일 뿐입니다. 그리하여 가족, 친지들과 모이는 추석 명절 때 남과 비교하며 열등감에 위축되거나 반대로 자부심이 솟구쳐 남에게 상처 주며 서로 기분 상하는 일 없이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이는 저에게 거는 주문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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