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이 말했다. 태극기부대 이해한다고…"

머니투데이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 정리=조준영 정진우 기자 2018.09.22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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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나의 방북기]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 "평양이 변했다"

편집자주 지난 18~20일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북한을 다녀온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의 '나의 방북기'를 준비했습니다. 누구보다 북한의 현재 상황을 잘 알고 있는 박 의원이 직접 살아있는 북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 인터뷰/사진=김창현 기자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 인터뷰/사진=김창현 기자


18년만이다. 2000년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김대중 대통령을 수행해 평양에 다녀온지 벌써 그만큼 시간이 흘렀다. 그래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는 구면이다. 지난 4월 판문점에서 먼저 내게 손을 내민 것도 김 위원장이다.

날 보자마자 "어? 장관선생! 방금 텔레비전에서 봤는데 여기까지 오셨네"라며 반갑게 웃던 그였다. 더욱 설레는 마음을 안고 평양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평양 순안공항 상공에서 본 풍경은 생각과 참 많이 달랐다. 잘 정리된 농지에 농사도 풍년이었다.



마침 2000년 정상회담 때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의 말이 떠올랐다. 당시 김 위원장은 "왜 그렇게 서울은 복잡하냐, 딱 뉴욕처럼 디자인됐다"며 "우리 평양은 워싱턴처럼 환경이 좋은 도시로 만들겠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그 때부터 잘 보존된 평양이 우리가 말하는 도시재생사업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말 그대로 '상전벽해'다. 예전 같으면 시내 곳곳에 나부꼈을 '미제국주의자 타도', '까부시자' 등 적대적인 선전물들도 사라졌다. 간혹 보이는 문구라면 '경제발전' 정도다. 오히려 우리 한국이 현수막이 너무 많아 문제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대동강물이 오염된 게 눈에 띄었다. 역시 도시는 개발하면 오염이 된다는 데 북한도 그랬다.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 인터뷰/사진=김창현 기자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 인터뷰/사진=김창현 기자
공항에 도착해 숙소로 이동하는 거리엔 환영인파가 즐비했다. 18년 전만해도 평양 시민들 중 상당수가 영양실조로 이가 많이 빠져있었다. 당시 우스갯소리로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치과부터 차려야하겠단 얘기가 많았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예전에 봤던 그런 모습이 전혀 없었다. 일부러 그런 사람들만 보여줬다? 수십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그렇게 통제한다는 게 더 말이 되지 않는다.

북한 최고지도자가 바뀐 탓인지 우리 대통령과 평양 시민들 간 스킨십도 자유로웠다. 예전엔 거리에 꽃술을 들고 나온 환영객들에게 악수를 요청하려고 하면 경호원들이 접촉을 막았다. 김대중 대통령도 예외가 없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자유롭게 시민들과 악수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이번 2박3일동안 본 김 위원장은 굉장히 따뜻했다. 아무래도 어린 시절 서양교육을 받은 탓인지 지금 시대의 흐름을 읽고 있는 지도자란 인상이 강했다. 핵을 포기하고 경제로 가겠다는 의지도 읽혔다.


능라도5·1경기장에서 가진 문 대통령의 연설은 그걸 증명했다. 15만명을 수용하는 곳이 어디 있던가. 그 평양 시민 앞에서 문 대통령이 "나와 김정은 위원장은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 완전히 합의했다"라고 선포했다. 그 때 다들 순간 주춤하는게 느껴졌다. 나만 느꼈나 싶어 이후 문정인 교수에게 물어보니 똑같이 느꼈다고 했다.

그 자리에 있던 평양시민들도 놀란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제안한 비핵화가 인민들로부터 공인받고 지지받는 감동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그곳에서 북한의 발전과 개혁개방의 희망이 보였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대성공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김 위원장은 통 크게 서울에 답방하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북한 내부에서도 강력히 반대하는 사안에 적극적이었다. 말 뿐인 약속일까. 식사자리에서 김 위원장에게 이를 물어볼 기회가 있었다. 답변은 놀라웠다. 그는 "태반이 반대하지만…태극기부대 나는 이해한다"라고 말했다.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도 6·15 회담 때 답방을 약속했지만 신변의 위협으로 이루지 못한 일이다. 지금 자체도 엄청난 진전이지만 답방이 실제로 이뤄진다면 이루 말할 수 없다.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 인터뷰/사진=김창현 기자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 인터뷰/사진=김창현 기자
김 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부부장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나중에 알고보니 4·27 판문점 회담 당시 해산하고 온지 얼마 되지 않았던 거였다. 김 부부장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삼지연 오찬장에서도 다들 밥을 먹는 중에 밖에 나가 서있었다. 북한 사람들도 김 부부장을 높이 평가한다. 사실 김 부부장 정도면 수행원을 데리고 다닐 위치지만 혼자서 그렇게 김 위원장을 모시고 있다.

내가 이번 방북 때 잘 써먹은 게 다친 오른팔이다. 김 위원장에게 악수를 왼손으로 하며 "좌파입니다"라고 하니 깜짝 놀라며 나를 쳐다봤다. "다치셨군요?"라는 말에 냉큼 "아니요. 우파를 묶어버렸습니다"라고 농담을 하니 호쾌하게 웃었다. 아주 재밌었다.

이번 회담에서 문 대통령을 제일 극진히 대접했다면 다음은 경제인들이었다.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 아주 노골적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데리고 김 위원장에게 소개를 했다. 김 부장이 설명을 하려고 하자 김 위원장의 대답이 "내가 다 안다"였다. 이번 경제인들의 방북이 북한 주민들에게 오히려 한국대기업이 북한에 투자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겠다는 선전과 희망이 됐다고 본다.

하지만 결국은 북미관계다. 100가지를 합의해도 마찬가지다. 이제 김 위원장이 카드를 많이 내놨다. 트럼프 대통령이 성의를 보여야 할 때다. 내가 그리는 시나리오는 이렇다. 폼페이오 장관이 방북을 하고 10월 초로 유엔총회를 연기해 그곳에서 김 위원장이 연설을 한 후 2차 북미정상회담까지 하는 거다. 그리고 뉴욕 옆에 있는 뉴저지 트럼프의 골프장에서 남북미중 정상들이 종전선언을 하면 그게 최고의 시나리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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