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보니]'명절 노동'은 그만…간편식 추석상 차려봤다

머니투데이 남궁민 기자 2018.09.23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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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원으로 1시간 만에 10가지 식사 완성…"시간 아껴서 가족끼리 나들이를"

기자가 여러가지 전을 부치고 있다 /사진=강선미 기자기자가 여러가지 전을 부치고 있다 /사진=강선미 기자




전 부치는 소리와 고소한 냄새, 쌓여가는 기름진 음식들. 하지만 대화는 사라진다. 산더미 같이 쌓인 재료를 다듬고 요리하느라 가족들은 비지땀을 흘린다. 명절이 끝나면 음식 처치가 가장 큰 고민이다. 명절마다 이 모습이 반복된다. 상차림이 골칫거리라며 '명절 공포증'을 호소하는 이들은 늘어만 간다.



'명절 노동'을 생각하니 앞이 깜깜했다. "올해도 전 부치느라 죽겠구나"하는 걱정이 밀려왔다. 온 가족이 주방에 모여 반나절을 비지땀을 흘리곤 했다. 요리 준비를 더 쉽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했다. 10년 가까이 혼자 살고 있는 기자의 집밥 생활에 큰 도움을 준 가정식 대체식품(HMR·Home Meal Replacement)이 떠올랐다. 간편식으로 명절 밥상을 차릴 순 없을까. 직접 도전해봤다.

간편식 상차림에 대한 의견은 엇갈렸다. 식사를 차릴 때마다 직접 육수를 우려내고 유기농 식자재 마트만 간다는 살림 15년차 나모 부장은 "조미료 맛이 날까 봐 걱정"이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간편식이 익숙한 20대 기자들의 반응은 대체로 호의적이었다. 이재은 기자는 "요즘 간편식이 잘 나와서 괜찮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5만원·1시간·10가지 요리 도전
10가지 요리를 차리기 위해 구입한 간편식 영수증 /사진=남궁민 기자10가지 요리를 차리기 위해 구입한 간편식 영수증 /사진=남궁민 기자
19일 퇴근 후 마트로 갔다. 추석 준비를 위해 장을 보려는 이들로 북적였다. 채소와 고기를 고르는 이들 사이를 빠르게 지나 간편 식품 코너로 갔다. 국과 고기 요리, 밥, 냉동 전까지 생각보다 종류는 다양했다. 매년 먹었던 명절 요리를 떠올리며 하나씩 카트에 집어넣었다.

소고기 뭇국·전·불고기·송편… 카트가 금세 '명절' 하면 떠오르는 필수 요리로 가득했다. 밥과 국, 고기 요리, 전, 송편까지 한상 제대로 차릴 수 있을 만큼 장을 봤지만 가격은 5만4530원에 불과했다. 두 사람이 먹는다고 해도 1인당 3만원도 되지 않는 가격이다.


마트에서 산 간편식. 명절 필수 요리가 빠지지 않고 들어갔다. /사진=강선미 기자마트에서 산 간편식. 명절 필수 요리가 빠지지 않고 들어갔다. /사진=강선미 기자
간편식 상 차리기의 목표는 '쉽고 빠르고 저렴하게'였다. 쉽고 빠르게 할 수 있을지 보기 위해 밥과 국, 다섯 가지 전, 찜닭, 불고기, 송편을 1시간 내에 만들기에 도전했다. 다른 사람 도움도 받지 않았다.

메인 요리인 찜닭을 재료와 함께 큰 냄비에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이 사이에 프라이팬에 기름을 둘렀고 국과 송편은 전자레인지에서 데우기 시작했다. 전자레인지와 냄비가 끓는 사이에 전은 노릇노릇 익어갔다. 부침가루와 계란물을 묻히는 고생이 사라지자 요리 훨씬 수월해졌다.

금세 요리가 하나씩 완성됐다. 10가지 요리를 할 생각에 급했던 마음은 점차 차분해졌다. 찜닭은 조용히 익어갔고, 국과 송편은 전자레인지에서 데워졌다. 전 부치기도 어렵지 않았다. 도마나 칼도 없이 식용유와 젓가락, 프라이팬 만으로 요리를 완성했다. 그릇에 옮겨 담자 그럴싸한 한 상이 완성됐다. 1시간이 채 안 걸렸다.

닭찜, 전, 밥과 국, 불고기, 양념장, 김치가 차려진 상. 식사 후 빈 접시에는  송편을 옮겨 먹었다. /사진=강선미 기자닭찜, 전, 밥과 국, 불고기, 양념장, 김치가 차려진 상. 식사 후 빈 접시에는 송편을 옮겨 먹었다. /사진=강선미 기자
테이블을 가득 채운 상차림은 제대로 된 명절 밥상이었다. 곤드레나물밥을 한 술 뜬 뒤 찜닭, 전을 먹기 시작했다. 지나치게 짜거나 달까 봐 걱정했던 찜닭은 음식점에서 먹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몇 분 만에 부쳐낸 전은 직접 반죽한 요리처럼 바삭하면서 고소했다. 간편식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알아채기 어려울 정도였다.

동료 기자들을 불렀다. 기자의 마음을 가장 불안하게 했던 '살림 고수' 부장은 조심스럽게 찜닭을 맛 본 뒤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젓가락은 전과 불고기, 밥으로 향했다. 다른 동료들 사이에서도 '괜찮은데?', '맛있다'는 반응이 나왔다. '합격점'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남은 음식↓…"요리는 조금만, 가족끼리 시간 보내야"

간편식 상차림을 해본 뒤 느낀 가장 큰 장점은 식사량 조절이었다. 2인 분량으로 마련한 음식은 남지 않았다. 소량으로 판매되기 때문에 미리 적절하게 조절할 수 있었다. 김자아 기자는 "명절 때마다 남은 음식을 냉장고 방치하고 버리는 경우가 많다"며 "이렇게 준비하면 먹을 만큼만 사서 낭비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줄어든 요리 시간을 장점으로 꼽는 반응도 나왔다. 이재은 기자는 "솜씨 좋은 사람이 공들여 만든 식사보다는 맛이 조금 떨어질 수도 있지만 득이 되는 점이 많다"며 "명절 준비하느라 스트레스 받는 걸 생각하면, 빨리 식사하고 가족들끼리 볼링이라도 한 게임 치러가는 게 더 행복할 것 같다"고 말했다. 15년 가까이 명절 준비를 해오느라 고생했다는 부장은 '이번에는 바꿔 봐야겠다'며 간편식을 들여다봤다.

어려운 상차림을 포기하자 여유가 찾아왔다. 명절은 요리를 하기 위해 모이는 날이 아니다. 의무처럼 해오던 명절 노동을 포기하고 가을 하늘을 보러 가족 나들이를 떠나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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