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렌’의 뮤직비디오에서 선미의 집은 ‘Waning’ 표시가 된 노란 테이프로 둘러싸여 있다. 이 집에서 선미는 목욕을 마친 뒤에도 속눈썹 화장은 그대로 두고, 기침을 할 때도 붙인 속눈썹이 날아갈까 조심스러워 한다. 평온하다면 평온한 그의 생활에 변화를 주는 것은 다른 방에서 갑자기 등장한 또다른 ‘선미들’이다. 선미는 자신의 눈 앞에서 ‘사이렌’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또다른 선미 때문에 구토를 일으키고, 왕관을 쓰고 당당한 표정을 짓고 있는 또다른 선미에 무서워한다. 그러나, 선미는 다른 방에서 물 속에서 인어로 살아가는 선미에게 기어이 유혹당한다. 이 인어를 만단 뒤 선미는 다른 ‘선미들’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기 시작하고, 집 밖으로 나갈 생각도 해본다. 그리고 집 밖으로 나간 순간, 선미는 자신이 그 밖으로 한 발도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뮤직비디오에 등장한 새장 속의 장미. 선미가 가수로서 자신의 위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선미는 또다른 자신이 이끄는 유혹을 따르면서 이전과 다른 존재로 태어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평온했던 선미는 다른 ‘선미들’처럼 앉아서 다리를 힘차게 뻗기 시작한다. 그 점에서 ‘사이렌’이라는 제목은 흥미로운 모순을 만들어낸다. 선미는 무대 위에서 ‘사이렌’을 통해 다른 사람을 유혹하는 존재다. 하지만 유혹에 흔들리는 것은 바로 그 자신이었고, 유혹은 그를 동화 ‘인어공주’의 인어처럼 물거품으로 만드는 대신 오히려 자신의 다리로 일어서서 걷게 했다.
물론 선미가 ‘사이렌’에서 무엇을 보여주었든, 그의 다리만을 섹슈얼한 이미지로 소비하는 사람들은 앞으로도 많을 것이다. 선미의 인스타그램에는 종종 악플이 달리기도 하고, 그 스스로도 ‘너무 말랐다’, ‘못생겼다’는 외모 평가에 대한 스트레스를 토로하기도 했다. 선미를 비롯한 한국의 많은 여성 가수들은 이런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특히 걸그룹은 늘 대중이 좋아할법한 여성의 모습을 극대화하는 결과물들을 내놓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선미는 같은 재료들을 정 반대의 의미로 뒤집으면서, 결과적으로 K-POP이 콘셉트로서 캐릭터를 활용하는 방법에 변화를 일으킨다. 대중에게 특정한 판타지를 주는 캐릭터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지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캐릭터. 그래서 ‘가시나’-‘주인공’-‘사이렌’으로 이어지는 선미의 캐릭터는 한 아티스트가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가는 과정인 동시에, 지금 한국에서 가장 독특한 색깔을 가진 뮤지션이자 프로듀서인지 증명하는 연대기다. 곡, 안무, 뮤직비디오, 스타일링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에 집중하면서, 그것을 이만큼 선명한 콘셉트로 전달하는 것은 한국 여성 뮤지션의 새로운 성취다. 마돈나와 레이디가가가 자기 자신을 표현하던 방식을, 그들의 영향 안에서 또다른 방식으로 풀어내는 아티스트가 나왔다. K-POP의 기념비적인 순간이다. 그 ‘원더걸스’가 자신의 다리로 서서 세상의 주인공이 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