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보다 플라스틱 많아지는 시대, 왜 아직 20세기 낡은 경제학 고집하나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2018.09.21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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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따끈 새책] ‘도넛 경제학’…20세기 경제학을 박물관으로 보내버린 21세기 경제학 교과서

물고기보다 플라스틱 많아지는 시대, 왜 아직 20세기 낡은 경제학 고집하나


2000년 파리 경제학과 학생들이 교수들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주류 이론만 가르치는 독단적인 교육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이로부터 10년 후 하버드대 학생들은 세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경제학 교과서의 저자인 그레고리 맨큐 교수의 강의실에서 집단 퇴장했다. 맨큐가 신봉하는 관점과 이념이 너무 협소하고 편견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금융 위기가 닥칠 땐 전 세계 학생들이 저항의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 독일, 페루 등 30여 개국 80개가 넘는 학생 집단 네트워크가 출범할 정도였다.

경제는 인간 생존 조건에 필수적인 양식인데도, 경제학은 급변하는 시대에 ‘부적응자’로 낙인찍히고 있다. 사회 불평등, 기후 변화 등 자고 나면 달라지는 사회상에 민감하게 반응하기는커녕 150년 전 낡은 가정과 황당한 전제를 그대로 계승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지금 인류의 삶은 어떤가. 20억 명이 아직 하루 3달러 이하로 살고, 일자리 없는 젊은 층이 7000만 명이 넘는다. 갈수록 심해지는 경제적 불평등으로 2015년 현재 전 세계 부자 상위 1%가 지닌 재산은 나머지 99%의 부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지구의 위기 또한 만만치 않다. 지구 평균 온도는 0.8도 상승했고 이 추세대로라면 2100년엔 거의 4도나 높아진다. 2025년쯤엔 세계 인구의 3분의 2가 심각한 물 부족 지역에서 살게 된다. 또 바다에 플라스틱 쓰레기가 1분마다 한 트럭씩 버려지는 수치를 계산하면 2050년엔 바다에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더 많아진다. 이 모든 것이 경제학이 담당하는 영역이다.

지난 100여 년간 세계는 엄청난 부를 얻었다. 그 대가로 얻은 부작용이 적지 않은데, 여전히 우리는 ‘성장’을 얘기한다. ‘지속 성장’, ‘포용적 성장’, ‘녹색 성장’, ‘소득주도 성장’ 등 수식어만 달라졌을 뿐, 성장은 풀지 못한 숙제처럼 되풀이되고 있다.


이런 ‘주의’가 횡행한 데에는 낡은 경제학에 대한 맹신과 주입이 원인으로 꼽힌다. 중국에서 칠레까지 모든 학생이 하버드대와 똑같은 교과서로 배우고, 그 학습은 1950년대 경제학 사고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저자는 지난 150여 년간 맹신해온 경제학에 숱한 오류를 발견하고, 현실이 움직이는 상황을 쫓아 21세기형 경제론을 제시했다. 그가 모형으로 제시한 것은 20세기 경제 흐름을 그림으로 설명한 폴 새무얼슨의 방식을 따른 ‘도넛’ 다이어그램이다.

경제학, 사회학, 과학 등 각계각층의 복합적인 사고를 종합해 발표한 도넛 경제 모델은 경제학의 새로운 역할을 제시한다. 직선이나 곡선 같은 기존 경제학 도식과 달리 도넛의 동그란 모형이 암시하는 것은 성장이 아닌 균형이다.

이 모델에 따르면 도넛의 안쪽 고리는 ‘사회적 기초’로, 그 안으로 떨어지면 기아와 문맹 같은 심각한 인간성 박탈 사태가 벌어진다. 바깥쪽 고리는 ‘생태적 한계’다. 이 한계선을 넘어가면 기후 변화와 화학적 오염, 생물 다양성 손실 등 지구의 생명 유지 시스템에 치명적인 위기가 닥친다. 사회적 기초와 생태적 한계선 사이에 인간을 위한 최적의 도넛 세계가 그려지는 셈이다.

저자는 ‘도넛 경제학’에서 7가지 발상 전환을 제안한다. 경제학자들은 70년 이상 GDP(국민총생산)를 진보의 척도로 여겼다. 이는 소득과 부의 극단적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됐다. 저자는 인류를 도넛의 안전하고 정의로운 공간으로 데려와 지역 경제와 세계 경제를 창출해 무한 성장 대신 균형을 통한 번영을 제시한다.(‘목표를 바꿔라’)

‘큰 그림을 보라’에선 주류 경제학이 묘사하는 ‘경제 순환 모델’의 한계로 나타난 신자유주의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동반자로서의 국가, 가계의 핵심적 역할 등을 내세운다.

자기 이익과 계산에 몰두하는 20세기 경제학도 사회적이고 상호 의존적인 인간 본성을 파악하는 방향으로 바꿔야 하고(‘인간 본성을 피어나게 하라’) 수요와 공급 곡선이 지배하는 19세기 기계적 균형도 복잡계가 지배하는 경제의 역동성으로 이해해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시스템의 지혜를 배워라’)

저자는 경제 성장을 거치면 불평등 문제가 사라질 수 있다는 쿠즈네츠 곡선(후진국에서 중진국으로 갈 때 소득 불평등이 높아지지만, 선진국으로 가면서 불평등이 완화된다) 이론에 대해서도 경계한다.

불평등은 경제 논리에서 필연적인 게 아니라 설계 오류로 인한 결과여서 21세기 경제학자들은 경제 가치가 더 잘 분배되도록 설계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분배를 설계하라’)

저자는 “과거 정치와 경제 목표가 ‘잘사는 것’이었다면 이젠 그 과정에서 발생한 부작용을 적극적으로 개선하는 일이 필요하다”며 “인류의 맥락과 목적, 가치가 진화하는 만큼 경제 비전을 그려내는 방식도 진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도넛 경제학=케이트 레이워스 지음. 홍기빈 옮김. 학고재 펴냄. 1만4800원/4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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