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이 다 가져간 할머니 재산, 찾아올 수 없나요?

머니투데이 박윤정 (변호사) 기자 2018.09.2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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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 [엄마 변호사의 세상사는 法]

편집자주 두 아들을 둔 엄마 변호사입니다. 저와 제 주변 사람들이 살면서 겪는 소소한 문제들의 법적 쟁점과 해결책을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드립니다.

삼촌이 다 가져간 할머니 재산, 찾아올 수 없나요?


혜미(가명)씨는 최근 외할머니께서 지병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혜미씨의 어머니는 20년 전 혜미씨와 동생 혜정(가명)씨 자매를 남겨둔 채 병으로 돌아가셨고, 홀로 남아 내내 자매의 뒷바라지를 해오던 아버지는 자매의 등쌀에 못 이겨 5년 전 새로운 가정을 꾸리셨습니다. 혜미씨의 외할아버지는 사업을 크게 하셔서 수백억대 부를 축적하셨는데 11년 전 돌아가셨고, 혼자되신 외할머니는 큰외삼촌과 숙모가 모시고 살고 계셨습니다.

외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큰외삼촌은 혜미씨 자매를 비롯한 가족들에게 외할머니의 유언 공정증서를 보여줬습니다. 6개월 전 쯤 작성된 유언장에는 외할머니가 부동산과 예금을 비롯한 전(全)재산을 큰외삼촌에게 물려준다는 내용이 기재돼 있었습니다.



작은 외삼촌 내외와 혜미씨 자매가 반발하자 큰외삼촌은 혜미씨에게 ‘너는 상속 포기해놓고 이제 와서 무슨 소리들 하느냐’고 소리쳤습니다. 그제서야 혜미씨는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 처음 외가 식구들이 모두 모인 명절 때 외삼촌들이 내민 서류에 서명을 했던 것이 기억났습니다.

당시 외삼촌들은 혜미씨와 혜정씨 자매에게 현금 5000만원 씩을 건네며 ‘외할아버지께서 재산은 부인과 아들들이 나눠 가지라고 유언하셨는데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읜 너희가 안쓰러워 우리가 챙겨주는 것이니 받아두라’고 했고 큰 돈을 받고 어쩔 줄 모르던 자매에게 ‘단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시면 그 재산에 대해서는 모든 상속을 포기한다는 각서를 쓰라’고 하기에 자매는 순순히 그렇게 했었습니다.



혜미씨는 외할머니 사후까지 계산해서 미리 상속포기각서를 받아둔 큰외삼촌이 너무 원망스럽기도 했거니와 죽은 딸을 쏙 빼닮았다고 혜미씨를 볼 때마다 손을 붙잡고 우시던 외할머니가 한마디 언급도 없이 전(全)재산을 큰외삼촌에게만 물려주겠다고 유언하신 것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장례식장에서 넋을 놓고 있는 혜미씨에게 누군가가 다가와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치매기가 있으셨다고 귀띔해줬습니다. 혜미씨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 혜미씨 자매는 외할머니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을까요?

▶ 받을 수 있습니다. 우선 상속의 포기는 피상속인이 사망한 후 일정한 기간 내에 가정법원에 신고하는 등 일정한 절차와 방식을 따라야만 그 효력이 있으므로, 상속개시 전에 한 상속포기약정은 효력이 없고, 상속을 포기하기로 약정한 상속인이 상속개시 후 상속권을 주장하더라도 이는 정당한 권리행사라는 것이 판례입니다(대법원 98다9021 판결). 따라서 혜미씨 자매가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미리 작성한 상속포기 각서는 아무런 효력이 없습니다.


외할머니가 생전에 치매를 앓으셨던 것이 사실이라면 유언의 무효를 주장해볼 여지도 있기는 합니다. 혜미씨는 큰외삼촌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그 소송에서 재판부로 하여금 외할머니가 평소에 진료를 봤던 병원 측에 의무기록사본 제출을 명해줄 것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회신 내용에 따라 유언공정증서 작성 시기에 외할머니가 유언이 가능한 의사식별능력이 없었다고 주장해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이 상당히 엄격한 요건 하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감안하면 의사능력이 없었던 것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유언 무효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혜미씨 자매는 큰외삼촌을 상대로 유류분반환청구를 할 수 있습니다. 유류분이란 피상속인의 재산 중 상속인에게 취득이 보장된 비율 또는 일정액을 말하는데, 우리 민법은 직계비속의 경우 법정상속분의 1/2을 유류분으로 보장하고 있습니다(민법 제1112조 제1호). 혜미씨 자매의 경우 직접 상속인인 어머니가 외할머니 생전에 사망했기 때문에 혜미씨 자매가 어머니의 상속분을 대습상속하게 되는데, 유류분의 경우에도 대습상속 규정이 적용되기 때문에 혜미씨 자매는 당연히 유류분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민법 제1118조, 제1010조).

그 비율을 살펴보면, 외할머니의 자녀들은 돌아가신 혜미씨 어머니를 포함해 3인이므로 혜미씨 어머니의 법정상속분은 상속재산의 1/3이고, 유류분은 법정상속분의 1/2이므로 결국 상속재산의 1/6이 혜미씨 어머니의 유류분이 됩니다. 이를 혜미씨와 혜정씨가 각각 1/2씩 나누어 청구하면 될 것입니다.

다만 유류분 반환 청구권은 유류분 권리자가 상속의 개시와 반환하여야 할 증여 또는 유증을 한 사실을 안 때로부터 1년 내에 하지 아니하면 시효로 소멸하므로(민법 제1117조) 혜미씨 자매는 외할머니의 사망과 큰외삼촌에의 유증 사실을 모두 안 때로부터 1년 이내에 유류분 반환청구를 하지 않으면 권리를 잃는다는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유류분반환청구의 기준이 되는 외할머니의 총 상속재산(유류분 산정의 기초재산)은 어떻게 파악하나요?

▶ 상속재산의 총 규모는 사망자의 주민등록주소지 시군구 주민센터에 '안심상속 원스톱 서비스'를 신청하여 그 결과로 파악하는 방법도 있으나, 이 경우 큰외삼촌이 외할머니 생전에 현금으로 미리 받아간 재산의 규모를 놓치게 될 우려가 있습니다. 본래 유류분 산정을 위해 파악하는 기초재산에는 피상속인 사망 1년 전 증여만을 포함시키도록 하고 있으나(민법 제1113조), 공동상속인의 경우에는 기간의 제한이 없다는 것이 판례입니다.

즉, 공동상속인의 경우 피상속인으로부터 생전에 증여받은 것이 있다면 이는 그 시점을 불문하고 기초재산에 산입됩니다(대법원 93다11715 판결 등). 다시 말해 큰외삼촌이 외할머니 생전에 계좌이체 등을 통해 현금으로 받아간 것이 있다면 그 금액을 모두 유류분 산정을 위한 기초재산에 포함시켜 반환될 유류분을 계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피상속인이 고액 자산가인 경우 소송 중 과세정보 제출명령 신청 등을 통해 과세관청의 상속세 세무조사 결과지를 받아보면 피상속인 사망 10년 이내에 현금이 상속인에게 이동한 내역까지 모두 파악돼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 활용하면 유류분반환청구를 하는 입장에서 일일이 피상속인의 은행거래 내역을 들추어보지 않아도 유류분 산정을 위한 기초재산을 파악하기 용이합니다.

- 혜미씨 자매는 이제라도 외할아버지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을까요?

▶ 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유류분 반환청구권은 소멸시효가 있습니다. 민법 제1117조는 상속이 개시된 때로부터 10년이 지난 경우 유류분 반환청구권이 시효로 소멸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이미 돌아가신지 10년이 지난 외할아버지의 유류분에 관해서는 혜미씨 자매가 더 이상 반환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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