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몸통' 콜센터 잡고보니…일자리 찾아헤맨 청년들

머니투데이 방윤영 기자 2018.09.17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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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조직원 10~20대 대부분…고수익 일자리 속아 범죄 가담, 감금·폭행 당하기도

/삽화=뉴시스/삽화=뉴시스


중국·태국 등에서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콜센터를 운영하면서 68억원을 가로챈 혐의로 조직원 85명이 무더기로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사기 혐의로 총책 윤모씨(28) 등 85명을 입건했다고 17일 밝혔다. 이 중 70명은 구속됐다.

경찰에 따르면 이번에 붙잡힌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은 중국·태국·필리핀에서 각각 활동한 3개 조직 소속이다. 경찰이 파악한 피해자만 모두 312명, 피해금액은 68억원에 달한다.



윤씨 등은 2015년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중국 청도·연길에서 9개 콜센터 개설·폐쇄를 반복하면서 보이스피싱 범죄를 저지른 혐의를 받는다. 윤씨와 함께 일하다 같은 혐의로 붙잡힌 조직원은 69명이다.

경찰은 태국 방콕에서 활동하던 또 다른 조직의 총책 이모씨(36) 등 12명도 검거했다. 이씨는 2014년 5월부터 약 1년 간 중국 총책 윤씨에게 보이스피싱 수법을 전수해준 인물이다. 필리핀 마닐라 보이스피싱 콜센터에서 일하던 별개의 조직 소속 상담원 4명도 붙잡았다.

윤씨 일당은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로 전환해주겠다며 피해자들에게 접근했다. 미리 구매한 개인정보 DB(데이터베이스)로 대량으로 음성메시지를 보냈다.


이들은 '국민행복기금'을 운영하는 은행으로 속이고 "고객님은 국민행복기금 발급 대상자입니다. 더 자세한 상담을 원하시면 1번, 차단을 원하시면 2번을 눌러주세요"라는 내용의 음성메시지를 보내 상담에 응해오는 사람들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한국자산관리공사가 운영하는 국민행복기금은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로 바꿔주는 '바꿔드림론' 등을 지원하고 있다.

이후 "신용등급이 낮더라도 (은행 직원의) 친인척인 것으로 가장하면 예외심사를 받아 저금리 대출이 가능하다"며 "다만 상환능력을 보여줘야 하니 다른 은행에서 대출을 받자마자 대출금을 상환하라"고 속였다. 피해자들은 이 같은 방식으로 적게는 500만원에서 많게는 6000만원까지 대출을 받았다.

경찰 조사 결과 이번에 붙잡힌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은 10대에서 20대 초반이 가장 많았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성인이나 군 제대 후 일자리를 알아보던 구직자들이었다.

보이스피싱 조직 주범들은 동네 선후배 등에게 접근해 "중국 여행사 콜센터 상담 일인데 매월 500만원, 잘하면 1000만원까지 벌 수 있다"고 속여 상담원들을 모집했다.

주범들은 상담원 아르바이트생들이 중국에 도착하자마자 본색을 드러냈다. 상담원들의 여권과 휴대폰을 빼앗았다. 범죄 가담에 거부 의사를 밝히면 폭행을 하며 "중국까지 지원한 비행기 표, 비자 비용 등 1000만원을 모두 갚고 가라"고 협박했다.

보이스피싱 조직에서 벗어나려 해도 쉽지 않았다. 총책 윤씨는 탈출하다 적발된 한 상담원을 흉기로 폭행하고 끓는 물을 붓기까지 했다. 또 다른 상담원은 비자 갱신을 핑계로 한국에 갔다가 도주했으나 우연히 총책 윤씨를 만나 폭행당한 뒤 다시 중국으로 끌려가 범죄에 동원됐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은 범죄 피의자인 동시에 피해자인 안타까운 상황"이라며 "주범들은 상담원들이 비자 연장을 위해 한국에 갔을 때 수당의 50%만 주고 '나머지는 중국에서 주겠다'는 식으로 수익조차 제대로 배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구류 중이던 보이스피싱 조직원 8명을 국내로 강제 송환하기도 했다. 경찰청 외사국이 중국 공안부와 협조해 이룬 성과다. 중국 공안은 현지에서 도피 중이던 조직원 8명(인터폴 적색수배자)을 체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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