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 대륙 횡단을 떠났다가 2년간 표류한 끝에 기적적으로 27명의 대원과 함께 무사히 돌아온 어니스트 새클턴, 4000km 사이클 대회에서 다리가 말을 듣지 않자 ‘다리야, 닥쳐’ 하며 경기를 완주한 사이클 선수 옌스 보이트, 바다 한가운데서 아들을 30분 동안 물 위로 들어 올린 장거리 선수 리아넌 헐 등 불가능을 기적으로 이끈 사람들은 한계와 기적을 구분 짓는 과학에 엄중한 ‘경고성 멘트’를 던지는 불굴의 투사들인 셈이다.
나이키는 최고의 연구팀을 꾸려 2년 간 선수 트레이닝, 식습관 등을 최적화하는 방법을 연구했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케냐의 엘리우드 킵초게 선수를 비롯한 세계 최고 마라토너들을 섭외했다.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
킵초게 선수가 2시간 0분 25초로 결승선을 통과해 한계를 극복하진 못했지만, 극복의 시간이 더 가까워졌음을 누구나 절감했다. 킵초게는 경기가 끝난 후 이렇게 말했다. “이제 인류가 단축해야 할 기록은 딱 25초밖에 안 남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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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에 다다를 때 사람은 대개 육체적 핑계를 대지만, 저자는 “한계는 뇌가 만들어 낸 허상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국가대표 육상선수 출신의 물리학 박사인 저자는 선수 시절 비논리적인 기록 향상을 경험했다. 시간 기록원의 실수로 평소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달린다는 것을 믿게 되자, 그날 개인 최고기록을 경신한 것이다. 이런 경험을 다시 반복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날 이후 더 나은 성과는 내지 못했다.
저자는 늘 의문점으로 남아있던 인간의 한계와 이를 극복하는 힘이 무엇인지 지난 10년 동안 전 세계 과학자와 운동선수를 찾아다니며 비밀을 밝혀냈다. 그것은 ‘지구력’이었다.
지구력은 ‘그만두고 싶은 충동과 계속해서 싸우며 현재 상태를 유지하는 힘’을 말한다. 지구력은 마라톤 완주를 위해 필요한 능력이면서 국제선 이코노미에 앉아 정신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힘이기도 하다. 후자의 상황은 지구력과 별 관계없어 보이지만, 육체적 지구력과 정신적 지구력 사이의 경계도 실은 모호하다.
공기가 지상의 3분의 1 수준밖에 안 되는 8848m의 에베레스트를 산소통 없이 등반하거나 102m 바닷속을 들어가 숨을 참는 것은 때론 육체보다 정신의 지구력이 동원된다. 온갖 극한 스포츠에서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다 죽은 사람보다 살아 돌아오는 사람이 절대적으로 많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스포츠생리학자 팀 녹스 박스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죽음에 이를 정도의 한계에 다다르지 않도록 신체 활동의 역치(閾値, 최소한의 자극의 세기)를 설정하고 관장한다. 마라토너들이 한계로 달렸다면 결승선 통과 후 국기를 두르고 경기장 한 바퀴 도는 게 말이 되지 않기 때문.
트레드밀을 뛰던 사람이 도저히 못 뛰겠다고 포기하는 순간은 사실은 한계에 도달하기 직전이다. 이 시점의 심부 체온은 여전히 정상 범주에 속하고 근육에는 산소와 연료가 충분히 남아있으며 대사 작용으로 생긴 부산물 수치도 적정 수준을 넘지 않는다. 우리가 멈추는 것은 오직 뇌에서 시간문제로 다가온 위험의 가능성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오래 견디는 힘은 근육 피로도나 수분 섭취 등 몇 가지 요인과 관계가 있지만, 면밀히 살펴보면 당연하다고 여겼던 관계가 뒤집히는 일이 다반사다. 가령 수분 손실이 체중의 2%에 이르면 경기력이 급격히 저하된다는 가설은 극심한 탈수에도 갈증을 느끼지 못하는 ‘수의탈수증’을 설명하기 어렵고 경기력 저하 역시 2%보다 더 많은 탈수에도 별 영향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탈수로 인한 체중 감소는 산악 사이클 같은 장거리 경기에서 되레 이점이 되는 등 수분 섭취에 대한 통념도 빠르게 뒤집히고 있다.
저자는 “마라톤에 필요한 지구력은 일상생활의 다른 부분에 필요한 지구력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운동선수들이 계속된 훈련을 통해 적은 힘으로 같은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처럼 뇌도 ‘노력 다이얼’을 통해 지구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인듀어=알렉스 허친슨 지음. 서유라 옮김. 다산초당 펴냄. 504쪽/1만9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