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목의 개人주의]너와 나의 연결고리…'인권'은 '동물권'과 피를 나눴다

머니투데이 유승목 기자 2018.08.3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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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人주의][반려견TALK]동물권 존중은 곧 인권존중…한국 동물권 논의 시작했지만 동물복지 사각지대 여전

편집자주 인도 건국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는 "한 나라의 위대함과 그 도덕적 진보는 동물에 대한 처우를 통해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람에게 필요하다는 이유로, 혹은 맛있는 음식 재료라는 이유로 동물의 목소리는 무시 받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함께 공존해야 할 공동체의 관점에서 동물의 권리를 존중하고 최소한의 삶의 질을 보장할 때 우리도 새롭게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나(사람)만 생각하는 '개인주의'가 아닌 개(동물)와 사람이 함께하는 '개人주의'를 위해 사랑스러운 반려동물부터 맥주와 콤비를 이뤄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 닭의 삶까지 여태 알지 못했던 우리 주변 동물들의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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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동물은 혈연관계에 있다"

100여년 전 '인도주의자'의 삶을 살다 간 헨리 솔트가 남긴 말이다. 언뜻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라고 한다면 납득이 갈텐데 모든 동물이 피를 나눈 가족이라니. 가족이나 동료와 함께 삼겹살 집에서 눈 앞에 놓인 고기를 굽고 있다면 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내가 먹는 돼지고기가 내 형제·자매라고?



어떤 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외출 후 귀가한 자신을 반겨주는 반려견을 동생이나 자식처럼 여기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이들 역시 혈연관계로 상정하는 동물의 범위가 집에서 동고동락하는 반려동물로 한정하는 경우가 많다. 불판의 구워지는 가재의 고통이나 야식으로 주문한 닭이 겪는 끔찍한 일생까지는 생각하려면 조금 피곤하다.

'혈연관계'는 다시 말하면 '동족'(同族)으로 표현 가능하다. 동족은 공동체로서 서로 상호작용을 주고받는다. 긍정적인 영향으로 통해 발전을 꾀할 수도 있고 누군가의 이기심으로 전체가 피해를 볼 수도 있다. 그리고 문명이 발달할수록 인간과 동물의 관계는 더욱 가까워지고 서로에 대한 상호작용도 더욱 커지고 있다.



헨리 솔트가 '모든 동물은 혈연관계'라고 말한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인도주의'의 범위를 인간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동물로 확장해 동등한 관계로 생각할 때 인간이 더 성장할 수 있다는 것. 잘 이해가 가지 않고 생각하기 피곤하더라도 더 나은 삶과 인간의 성장을 위해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동물의 권리를 보장하고 최소한의 삶의 질을 보장하자는 '동물권' 시각은 이렇게 생겨났다.
[유승목의 개人주의]너와 나의 연결고리…'인권'은 '동물권'과 피를 나눴다
"불필요하고 피할 수 있는 고통이라면"

스스로도 동물에 속하지만 인간은 자신을 제외한 모든 동물을 열등하게 여겼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동물은 이성이 없다고 폄하했고 근대 프랑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 역시 "동물은 자극에 기계처럼 반응할 뿐 의식하지 못한다"고 깎아내렸다. 동물에게는 행복과 고통을 느끼는 지각이 없다는 생각이 낳은 우월의식은 인간이 동물을 마음껏 이용해도 된다는 좋은 근거로 작용했다.

그렇게 동물은 인간의 '도구'로 쓰이기 시작했다. 집에서 개와 고양이는 기쁨을 주는 도구인 '애완동물'의 인식으로 길러졌고 계란을 만드는 기계일 뿐인 산란닭은 A4용지 한 장 크기의 공간에서 짧은 생을 마치게 됐다. 하루에 약 7900마리에 달하는 동물이 산 채로 실험을 당하다가 희생되고 매년 600억 마리의 닭이 도축된다. 이 중 상당수가 비인도적인 환경에서 본성이 억눌린 삶을 산다.


하지만 동물도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영혼 없는 존재가 아니다. 사람처럼 기쁨은 물론 고통과 두려움을 똑같이 느낀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비단 개나 고양이 같은 척추동물 만이 아니다. 산 채로 끓는 물에 삶아지는 가재같은 갑각류나 '탕탕이'라는 음식을 위해 산 채로 칼에 썰리는 낙지 등 두족류도 마찬가지다. 2013년 로버트 엘우트 벨파스트퀸스대 생태학 교수는 '갑각류가 고통을 느낀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이 같은 인식이 점차 확산되기 시작하며 '동물권' 논의가 시작됐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피터 싱어(Peter Singer)가 1975년 '동물 해방'(Animal Liberation)을 출간하며 본격화됐다. 공리주의에 입각해 생명윤리를 바라보는 싱어는 행복과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생명체도 최소한의 권리를 인정받고 존중 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동물에게 비인도적인 행위를 일삼는 것은 마치 흑인을 비롯한 몇몇 인종이 차별받고 여성이 남성보다 못하다는 인식과 같은 '종(種) 차별주의'적 행위라는 것이다.

이후 '동물해방전선'(Animal Liberation Front), '동물의윤리적처우를바라는사람들'(PETA) 등 여러 동물권 단체들이 만들어졌다. 이들은 비인도적인 동물실험과 공장사육 실태를 고발하고 인간의 쾌락을 위한 투우, 투계, 투견 행위 등의 금지를 촉구하는 활동을 벌였다.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인 일부 국가들은 동물의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시작했다. 유럽연합(EU)은 2009년 동물을 '지각력 있는 존재'로 간주하고 동물실험과 학대를 금지했다. 독일과 스위스를 비롯, 브라질, 이집트 등은 아예 헌법에 '동물보호'를 명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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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권리를 인정한다고 해서 인간의 권리가 손상되는 것은 아니다"

동물권 운동을 바라보는 시각이 모두 고운 것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동물까지 신경 쓸 여력이 있냐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한다. 빈곤과 노인 문제, 질병 치료와 인간 사이에 만연한 폭력 등 먼저 해결해야 할 '인권' 문제가 산더미라는 것. 문화적 차이도 있는데 '동물권'을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것도 서구적 시각에 입각한 일종의 문화제국주의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동물권 증진은 인권 문제 개선에 개입한다. 헨리 솔트는 저서 '동물의 권리'(Animal Rights)에서 동물에 대해 잔인한 행위를 저지르는 것은 인간에 대한 잔인한 행위까지 용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성이 없다며 동물을 낮춘 아리스토텔레스조차 동물에 대한 잔혹 행위를 절제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 역시 동물에 대한 잔혹함이 인간에게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동물에게 폭력을 일삼은 사람은 인간에게도 거리낌이 없다. 연쇄 강간이나 살인범을 대상으로 한 FBI의 연구 결과 이들 중 상당수가 아동·청소년기를 물론 성인이 되어서도 동물학대 경험이 있었고 FBI는 2015년 동물학대를 '반사회범죄'로 규정하고 관리하겠다고 나섰다. 한국 사회를 충격에 몰아넣은 연쇄 살인마 강호순과 유영철, 인천 초등생 살인 사건을 저지른 김양, 어금니 아빠 이영학 등도 동물학대를 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물의 권리를 경시하는 태도는 인권을 경시하는 태도로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동물권을 경시하면 인간의 건강한 삶도 보장할 수 없다. 생산성 극대화를 위해 계란이나 우유, 각종 육류 등 공장식 생산을 하며 시달리는 동물들은 질병과 항생제에 찌들어 있다. 생산량 증가를 위해 성장호르몬을 맞는 미국의 젖소들은 유선염과 고름에 시달리고 이를 억제하기 위해 항생제를 투여 받는 악순환을 반복한다. 자연스럽게 우유에도 해당 성분이 들어가고 인간에게도 축적될 우려가 높다. 본성이 억눌린 채 비인도적인 환경에서 자란 닭 농장에서 지난해 발생한 '살충제 계란 파동'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빨간날] 오늘 밤 나를 행복하게 한 치킨…닭은 행복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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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의 도덕적 진보는 동물에 대한 처우를 통해 판단할 수 있다"

세계적 추세에 발맞춰 한국도 동물권 논의에 걸음마를 떼고 있다. '애완동물'에서 '반려동물'로 인식이 바뀌고 반려인구도 늘어나며 차츰 동물의 행복 추구와 복지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모양새다.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반려동물 가구 비율은 전체의 28.1%로 약 593만 가구에 달한다. 네 가구 당 한 집 꼴로 반려동물을 기르고 있다.

공원, 한강 등 곳곳에서 해맑은 표정으로 주인과 함께 뛰노는 반려동물의 모습도 흔한 풍경이다. 도처에 동물병원과 미용실이 생기고 반려동물 테마파크 등 관련 산업도 성장하고 있다. 유명 복합 쇼핑몰에서 사람과 개가 함께 쇼핑을 즐기고 전문적인 장례·추모로 반려동물의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책임지는 모습도 보이기 시작했다. (☞[유승목의 개人주의]"가족이라더니"…죽으면 쓰레기통에?)

하지만 여전히 여기저기서 동물학대와 동물에 대한 비인도적인 처우를 목격할 수 있다. 키우다 버리는 일은 다반사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유기동물 수는 10만2593마리에 달하며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도 무시할 수 없는 규모다. 개를 차에 묶어 끌고 가거나 산 채로 땅에 묻는 학대 행위는 하루가 멀다하고 발생한다. 법적인 보호도 전무하다. 현행법상 반려동물은 생명이 아닌 '물건' 취급을 받기 때문. 세상을 떠나도 폐기물로 분류돼 종량제 봉투에 버리면 그만이다.
제주 서귀포시에서 방치돼 있던 개 33마리가 지난달 7일 동물보호단체 의해 구조될 당시의 모습. /사진제공= 제주동물친구들제주 서귀포시에서 방치돼 있던 개 33마리가 지난달 7일 동물보호단체 의해 구조될 당시의 모습. /사진제공= 제주동물친구들
반려동물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축 복지도 여전히 사각지대다. 닭은 자연수명이 7~13년이지만 우리나라 육계공장에 태어난 병아리는 한 달 만에 도축된다. 사람으로 치면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이다. 산란계로 태어난 수평아리는 '고기'로도 알 낳는 '기계'로도 쓸모가 없어 태어나자마자 분쇄기에 갈아진다. 그나마 암평아리가 산란계로 2~3년의 생을 살지만 그나마도 산 채로 부리가 잘리고 A4용지 한 장(0.05㎡) 크기의 우리에서 평생을 살아야 한다. 복날 '개고기' 문제도 이면을 살펴보면 이같은 비인도적인 사육 환경에서 비롯되는 논쟁이다. (☞복날 식탁 오른 개고기…"쓰레기 먹고 자랐다던데?")

이 같은 모습은 제도적·사회적으로 동물권 인식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해가 부족함을 보여준다. 이형주 동물권단체 어웨어 대표는 "반려인구가 늘어나며 동물 복지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지만 개나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에 한정되는 경우가 많고 정치인들도 '반려견 놀이터' 등 편의시설 건립에 집중하고 있다"며 "우리 식탁에 올라오는 동물들의 권리나 복지에 대한 논의를 사회 전반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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