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文정부 규제혁신 상징 된 붉은깃발 리스트

머니투데이 김성휘 ,세종=정현수 기자 2018.08.12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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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MT리포트-붉은 깃발 걷어내기]

편집자주 문재인 정부가 '붉은 깃발' 걷어내기에 나섰다. 붉은 깃발법(적기조례)은 1861~1896년 영국이 자동차 속도를 제한하기 위해 차 앞에 붉은 깃발을 든 사람이 걸어가도록 의무화한 것을 말한다. 마차업자를 보호하기 위해 자동차 속도를 내지 못하게 한 반시장적 규제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사회 곳곳의 '붉은 깃발'을 걷어내는데 혁신성장의 성패가 달려 있다는게 문재인 대통령의 시각이다. 한국판 붉은 깃발의 실체를 짚어본다.

문재인정부 주요 규제혁신 분야/그래픽=유정수 디자인기자문재인정부 주요 규제혁신 분야/그래픽=유정수 디자인기자


개인정보 활용을 제한하고 원격의료를 금지한 현행 법령이 의료기기 진입규제(1호), 인터넷은행 은산분리(2호)에 이어 문 대통령의 세번째, 네번째 '붉은 깃발'로 꼽히고 있다. 12일 청와대와 정부, 국회를 종합하면 당국은 이 과제들을 포함, 국내 각 분야별 혁신성장을 가로막는 핵심 규제를 한국판 붉은 깃발로 보고 그 해결에 국정역량을 집중한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9일 기자들과 만나 "개인정보에 관한 규제와 원격의료를 포함한 의료관련 규제를 중요한 과제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비식별조치는 조각난 개인정보를 재조합해도 개인신상을 알 수 없게 처리하는 것이다. 빅데이터와 핀테크 활성화에 필수요소다. 지난 정부부터 격렬한 논쟁을 일으킨 원격의료도 고령화 및 첨단의료 시대에 규제 빗장이 풀릴지 주목된다.



의료기기·은산분리·개인정보..속도 내는 혁신= 정부는 그동안 투트랙으로 규제혁신을 해왔다. 현장의 작은 과제(스몰딜 small deal)는 시행령 개정 등을 통해 신속 대처하고 이해관계가 첨예한 규제(빅딜 big deal)는 관계부처 협의를 이어나가는 식이다.

지난 2월 확대경제장관회의에선 경제분야 현장규제 개선 과제 27건과 신(新) 서비스시장 활성화를 위한 규제혁신 14건, 행정규제·그림자규제 혁신 9건 등 50건을 제시했다. 기재부엔 혁신성장을 전담할 혁신성장본부를 만들었다. 본부는 10~20개 정도의 핵심 규제혁신 대상 리스트를 이르면 지난달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규제혁신 드라이브를 걸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문 대통령은 백화점식 규제점검 회의보다 현장을 방문, 특정 규제를 하나씩 푸는 가시적 조치를 연달아 내는 방식을 추진중이다.

첫번째 '깃발'은 의료기기 분야였다. 지난달 분당서울대병원에서 혈당측정기 등 안전이 입증된 체외진단기는 인증절차를 간소화하겠다고 밝혔다. 두번째는 은산분리(산업자본의 은행 소유 제한)다. 문 대통령은 지난 7일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해 IT(정보기술) 기업의 투자확대 허용을 약속했다.

기재부 혁신성장본부는 협회 등 유관단체들의 의견을 듣고 정리한 핵심규제 리스트를 청와대에 전달했다. 문 대통령의 다음 규제혁신 현장 방문도 여러 통로로 건의하고 있다. 정부는 신산업을 원칙적으로 규제하고 선별 허용하는 지금의 규제방식을, 일단 허용하고 필요시 규제하는 이른바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꾸려 한다.


이와 관련 규제샌드박스 5법, 규제프리존법 등이 국회 계류중이다. 핀테크 활성화 조치, 특정지역에 드론이 마음껏 날고 자율주행차가 달릴 수 있게 하는 스마트시티 구상도 담았다. 숙박, 승용차 등 공유경제 사업을 허용하는 각종 법안도 대기 중이다.

"제 때 해야" 절박함 표출= 문 대통령이 붉은 깃발을 언급한 건 의미가 작지않다. 영국의 붉은 깃발법은 지금 보면 황당한 규제이지만 당대에 수십년간 지속됐다. 국내의 수많은 '깃발'도 지금은 타당해보이지만 훗날 황당한 규제로 평가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읽힌다.

문 대통령은 7일 "증기자동차가 전성기를 맞고 있었는데, 영국은 마차업자들을 보호하려고 이 법을 만들었다"며 "제도는 신산업을 키울 수도, 사장시켜버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제때에 규제혁신을 이뤄야 다른 나라에 뒤처지지 않고 4차산업혁명 시대의 주역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지금의 집권여당은 10년여 보수 정부의 일관된 규제완화 흐름에 강력 맞서왔다. 완화도, 철폐도 아닌 혁신이란 이름을 내걸어 차별화하고 있지만 규제를 풀어 성장동력을 만들어야 한다는 건 이념을 뛰어넘어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셈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12일 "나머지 리스트도 준비돼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나 한국판 붉은 깃발 걷어내기가 국민이 체감할 규제혁신 성과로 이어지지 않으면 자칫 지지율 하락, 국정동력 약화를 감수해야 할지 모른다. 문 대통령의 강력한 규제혁신은 지지층 내에도 논란이다. 인터넷은행에 한정한 은산분리 완화조차 "원칙을 허물 수 없다"는 여당 내 강경론을 설득하느라 교통정리가 늦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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