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붉은 깃발' 흔들며 시속 3㎞로 달린 영국 車

머니투데이 구유나 기자 2018.08.12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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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붉은 깃발 걷어내기] 혁신을 막은 법 '기관차량 조례'

편집자주 문재인 정부가 '붉은 깃발' 걷어내기에 나섰다. 붉은 깃발법(적기조례)은 1861~1896년 영국이 자동차 속도를 제한하기 위해 차 앞에 붉은 깃발을 든 사람이 걸어가도록 의무화한 것을 말한다. 마차업자를 보호하기 위해 자동차 속도를 내지 못하게 한 반시장적 규제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사회 곳곳의 '붉은 깃발'을 걷어내는데 혁신성장의 성패가 달려 있다는게 문재인 대통령의 시각이다. 한국판 붉은 깃발의 실체를 짚어본다.

/사진=Flickr(@Jin Ho)/사진=Flickr(@Jin Ho)


19세기 후반, 영국 거리에는 기이한 풍경이 펼쳐졌다. 자동차는 '붉은 깃발'을 든 사람의 뒤를 느릿느릿하게 따르면서, 마차나 말이 지나갈 때마다 멈췄다. 마차는 물론 자전거나 행인보다도 느렸다. 심지어 몇몇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자동차에 돌을 던지기도 했다.

세계 최초로 증기기관을 발명하고 자동차를 상용화한 영국은 왜 자동차 산업을 장악하지 못했을까? 이 질문에 영국인들은 종종 붉은 깃발을 이유로 든다.



1861년 영국 의회는 '도로 위 기관차량 조례'를 시행하고, 4년 뒤 이를 개정해 '기관차량 조례'(Locomotive Acts)를 만들었다.

새 조례에 따르면 증기자동차에는 반드시 세 명이 탑승해야 했다. 운전수, 증기엔진용 물을 끓이는 기관원, 그리고 기수이다. 기수는 자동차 55m 앞에서 걸어가며 붉은 깃발을 흔들어 자동차가 접근한다는 것을 알려야 했다. 이 조례가 붉은깃발법으로도 불리는 이유이다. 자동차 주행속도는 시골에서 시속 6㎞, 도시에서 3㎞로 제한됐다. 성인 남성의 평균 도보 속도인 시속 5㎞보다도 느린 수준이었다.



조례를 위반할 경우 10파운드 벌금을 부과했다. 당시 영국인의 평균 연봉이 48파운드였던 점을 감안하면 큰 액수였다. 언론도 "시속 32㎞ 이상으로 달리면 차 안에서 공기가 빠져나가 질식사할 수 있다"며 공포감을 조장했다.

기관차량 조례를 도입한 정치인들은 자동차가 신산업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크게 보지 않았다. 증기기관차가 중·장거리 이동수단으로 자리잡은 상황에서, 좁은 도로에서 매연과 증기를 내뿜으며 보행자 안전을 위협하는 증기자동차는 효용성이 떨어져보였다. 결국 이들은 자동차에 일자리를 빼앗길 것을 두려워한 마부들의 손을 들어줬다.

영국에서 자동차를 규제하는 동안 독일, 미국, 프랑스에서는 내연기관자동차를 발명했다. 영국 의회는 1896년 기관차량 조례를 개정해 기수를 없애고 최대 주행속도를 시속 23㎞까지 높였지만, 이미 2차 산업혁명의 후발주자로 전락한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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