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규제에 발목잡힌 식품 온라인 유통 서비스

머니투데이 조성훈 기자 2018.08.12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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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맛집제품, 온라인서 팔려면 수억원대 설비갖추고 허가받아야

편집자주 문재인 정부가 '붉은 깃발' 걷어내기에 나섰다. 붉은 깃발법(적기조례)은 1861~1896년 영국이 자동차 속도를 제한하기 위해 차 앞에 붉은 깃발을 든 사람이 걸어가도록 의무화한 것을 말한다. 마차업자를 보호하기 위해 자동차 속도를 내지 못하게 한 반시장적 규제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사회 곳곳의 '붉은 깃발'을 걷어내는데 혁신성장의 성패가 달려 있다는게 문재인 대통령의 시각이다. 한국판 붉은 깃발의 실체를 짚어본다.

마켓컬리/사진=더파머스마켓컬리/사진=더파머스


2015년 스타트업 더파머스는 전국 유명 빵집이나 떡집, 반찬가게 등 맛집 음식을 소비자가 편하게 맛보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식품유통 플랫폼인 마켓컬리를 오픈했다.

마켓컬리가 전국 유명가게 제품을 온라인플랫폼에 올리고 소비자 주문을 받아 배송까지 해주는 방식이다. 저녁 11시까지 주문하면 다음날 아침 7시까지 집 앞에 배송해준다. 소비자로서는 신선한 제품을 아침에 즉시 받아볼 수 있고 가게들은 판로를 개척해 매출을 확대할 수 있는 윈윈모델이었다. 이른바 '푸드 큐레이션' 서비스다. 실제 마켓컬리는 서울 이태원의 유명빵집인 '오월의 종'의 빵과 떡, 쿠키 등을 입점시켜 인기리에 판매했다. 그런데 지난해말 이 사업을 접어야 했다. 식품위생법에 저촉됐기 때문이다.



현행 식품위생법은 '식품 등을 제조 가공하는 영업자는 시설기준에 맞는 시설을 갖춰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오월의 종 같은 소규모 제빵점은 '즉석판매제조업체'로 분류된다. 이들이 온라인 판매를 하려면 식품제조업 허가를 받아야 한다. 식품위생법상 분리 독립된 공장과 포장실, 창고 등 제조설비를 갖춰야 한다. 여기에는 2억원 이상이 들어간다. 또 제조 품목별로 일일이 제조허가를 받아야 하고, 제조설비 확대를 위한 임차료 부담도 적지 않다.

영세한 동네빵집으로선 감당하기 어렵다. 오월의 종과 같은 즉석판매제조업체는 온라인 유통업체를 통해 식품을 파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셈이다. 실제 현재 주요 오픈마켓에서 판매하는 식품들은 제조허가를 받은 업체를 통해 생산된 제품이거나 단순 배달대행 서비스다.



그러나 즉석판매제조업체도 소비자 주문을 받아 택배를 통해 직접 배송하는 것은 현행법상 문제가 없다.

업계에서는 소비자를 대신해 맛집을 플랫폼 업체가 발굴하고 판매를 중계해 주는 것일 뿐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는데도 규제를 받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마켓컬리 역시 동네빵집이나 영세상인들에게 제조허가를 받을 것을 요구하기 어려워 당국에 제도개선을 건의했다. 그러나 식약처는 어렵다는 입장만 되풀이했다. 규모가 있는 식품제조업과 영세소상공인의 편의를 위한 즉석판매제조업은 위생관리 수준이 다른 만큼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마켓컬리 측은 "과거 냉동시설이 낙후되고 배송시스템이 미비했던 시절 만들어진 법규인데 최신 배송시스템에 기반한 신생 비즈니스 모델을 규제하려니 답답하다"면서 "현재는 식품제조업 허가를 받은 제품만 취급하거나 발굴한 맛집에 대해 식품제조업 허가를 취득하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켓컬리는 맛집들을 한군데 모아 식품제조시설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규제를 피하는 사업모델을 추진 중이다.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은 "오프라인 경기가 위축되는 가운데 소상공인이 성장하고 판로를 개척하며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혁신적 서비스를 낡은 규제가 가로막고 있는 사례"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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