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 벤처캐피탈 90%가 수도권에... 신음하는 지역벤처

머니투데이 이민하 기자, 김유경 기자, 이원광 기자, 지영호 기자, 고석용 기자 2018.08.0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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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지역벤처] (종합)

편집자주 지역벤처, 스타트업의 생태계가 위협받고 있다. 돈이 있는 곳에 사람이 몰리고, 일자리가 생긴다. 그런데 벤처캐피탈 10곳 중 9곳 이상이 수도권에만 몰려 있다. 혁신경제의 풀뿌리인 지역 벤처생태계를 살리기 위한 해법을 찾아봤다.

'지방은 죽는다' 116대 10…수도권 편중된 벤처투자
[위기의 지역벤처] ①신규투자액 2.3조 중 1.8조 수도권 집중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왼쪽 세 번째) 18개 테크노파크 원장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중소벤처기업부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왼쪽 세 번째) 18개 테크노파크 원장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중소벤처기업부


[MT리포트] 벤처캐피탈 90%가 수도권에... 신음하는 지역벤처
"지역 기업이 성장하고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힘써달라."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8일 전국 18개 테크노파크(TP) 원장과 만나 창조경제혁신센터와 협력을 강조하면서 이같이 당부했다. 1998년 TP가 생긴 이래 장관이 전국의 TP원장과 간담회를 가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홍 장관은 올해 초 창조경제혁신센터장과도 장관으론 처음으로 간담회를 가졌다.

[MT리포트] 벤처캐피탈 90%가 수도권에... 신음하는 지역벤처
홍 장관이 지역 창업·지원 기관장과 연이어 간담회를 가진 것은 지역경제 활성화가 그만큼 절박하다는 반증이다. 중기부와 한국벤처캐피탈(VC)협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현재 운영 중인 중소기업 창업투자사 126개 중 116개가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에 몰렸다. 이 외 지역에는 부산 5개, 대전 2개, 대구·광주·경북에 각각 1개씩뿐이다.


초기 단계부터 투자하는 액셀러레이터(창업기획자)도 상황이 비슷하다. 전체 104개 중 서울에 54개, 인천·경기에 11개 등 수도권에만 63개가 있다. 서울에서 사무실을 운영 중인 한 VC 관계자는 "투자업 특성상 수시로 여러 사람들과 만나야 하는데 서울을 벗어나면 벌써 제약이 생긴다"며 "지역에서는 투자업계 네트워크를 쌓기도 쉽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면 수도권에 있으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금줄과 네트워크를 갖춘 투자사가 수도권에 몰리면서 지역별 투자비중도 수도권 중심이다. 지난해 수도권 내 기업에 투입된 신규 투자자금만 1조8030억원에 달한다. 전체 신규 투자금액 2조3803억원 가운데 75.8%다.

지역별 벤처기업 수도 인구의 쏠림에 따라 한쪽으로 치우쳤다. 벤처기업 3만5985개 가운데 서울에 8420개, 인천·경기 1만2554개 등 수도권에 58.2%가 자리잡았다. 자금줄을 움켜진 투자사와 액셀러레이터가 수도권에 편중돼 있다보니 투자도,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도 수도권으로 이동한단 얘기다. 벤처생태계 쏠림 현상을 해소하지 않으면 지역간 산업 격차가 심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또 다른 VC 관계자는 "창업자들 사이에서는 수도권이냐, 지방이냐 하는 소재지 결정에서부터 후속 투자를 받느냐 못 받느냐가 갈린다는 말도 나온다"며 "정부가 혁신벤처 생태계 조성을 위해 막대한 투자금을 투입하고 있지만 지금 같은 분위기면 수도권과 지방기업간 격차가 심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MT리포트] 벤처캐피탈 90%가 수도권에... 신음하는 지역벤처
이민하 기자, 김유경 기자

벤처기업의 '지방 엑소더스'…"VC 찾아 서울로“
[위기의 지역벤처] ②혁신벤처 수도권에 68.7% '편중'…지역균형발전 걸림돌

[MT리포트] 벤처캐피탈 90%가 수도권에... 신음하는 지역벤처
# 재능마켓 플랫폼기업 '크몽'의 박현호 대표(40)는 2014년 5월 사업 확장을 위해 회사를 경남 진주에서 서울 강남으로 옮겼다. 수개월간 투자 유치에 고전하다 결국 벤처캐피탈(VC) 관계자들이 몰리는 곳으로 이전한 것. 박 대표는 "VC들에게 수차례 사업계획서를 보내봤으나 비대면으로 투자받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며 "직접 서울에 가기도 했지만 몇차례 만남도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크몽은 이전 1년만인 2015년 6월 동문파트너즈를 상대로 7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성공했다. 스타트업 플랫폼 '홍합밸리'가 개최한 데모데이 행사에서 우연히 VC 관계자를 만난 것이 투자유치로 이어진 것. 지난해 7월에는 알토스벤처스로부터 30억원 규모의 투자도 이끌어냈다.

국내 벤처기업들이 투자 유치를 위해 수도권에 몰리는 '벤처 쏠림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신규 일자리를 창출하는 벤처기업을 따라 인재들도 수도권으로 향하면서 지역 균형 발전에 걸림돌이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8일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지난 6월말 서울과 경기, 인천 등 수도권 지역 벤처기업 수는 2만974개로 전국 벤처기업(3만5985개)의 58.3%가 몰린 것으로 파악됐다. 경기가 1만개를 넘어섰고, 서울도 8500개에 근접한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벤처기업들의 수도권 쏠림현상은 더욱 심각하다. 중소기업연구원에 따르면 2016년말 4차 산업혁명 관련 벤처기업 중 68.7%가 수도권에 몰려있다. 같은 시기 수도권 소재 벤처기업(57.8%)보다 10.9%포인트 많다.

혁신벤처기업들이 수도권에 집중되는 이유는 투자유치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다. 벤처업계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창업 초기 성패를 좌우할 만큼 중요한 투자유치를 위해 VC의 90% 이상이 몰려있는 수도권으로 이전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이들과의 접근성을 높여야만 생존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벤처업계 관계자는 "벤처기업 상당수가 새로운 영역이나 기술개발에 매진하는 점을 고려하면 사업 이해도 차원에서 VC와의 잦은 의사소통이 필요하다"며 "투자에 목마른 벤처기업 입장에서 VC의 활동영역으로 들어가고 싶은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같은 '벤처 쏠림현상'이 지역 균형 발전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는 점이다. 신규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벤처기업들이 수도권에 몰리면서 지역의 인재 유출을 가속화하고 지역 산업 경쟁력도 약화시킬 것이란 목소리다.

박태근 한국벤처기업협회 실장은 "신사업을 추진하는 지역 벤처기업들을 위해 선제적으로 규제를 완화해줄 필요가 있다"며 "특정 지역에서 드론의 고도제한을 풀어주는 식의 '규제 프리존' 등이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벤처 클라스터' 등 벤처기업을 위한 물리적 공간을 조성하고 지역 소재 공공기관, 대기업 등과 협업을 지원하는 것도 대안"이라고 덧붙였다.

이원광 기자

요즈마그룹 성공비결은 '지방기업 발굴’
[위기의 지역벤처] ③이원재 법인장 "나스닥 상장 23개 모두 지방기업"…韓 지역확대 배경

이원재 요즈마그룹 한국법인장/사진=지영호 기자이원재 요즈마그룹 한국법인장/사진=지영호 기자
"요즈마그룹이 투자해 나스닥에 상장한 23개 기업은 다 이스라엘의 지방출신 기술기반 벤처기업입니다." 최근 머니투데이와 만난 이원재 요즈마그룹 아시아총괄 겸 한국법인장(사진·이하 대표)은 '한국의 기업생태계 지역불균형이 심각하다'는 기자의 말에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갈 에를리히(Yigal Erlich) 요즈마그룹 회장의 발언 중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이 대표에 따르면 에를리히 회장은 한 행사장에 참석해 "요즈마가 왜 서울이 아닌 지방캠퍼스를 만드는지 의아하지 않느냐"고 자문한 뒤 "엄밀히 따져보면 좋은 기술력이 있음에도 저평가된 회사는 다 지방에 있다"고 말했다고 했다.

벤처육성 성공국가로 평가받는 이스라엘의 글로벌 벤처투자·육성을 주도한 벤처캐피탈(VC) 요즈마그룹은 기술 인큐베이터인 요즈마캠퍼스를 한국에 6개까지 늘렸다. 특히 지난해와 올해 신설한 캠퍼스 두 곳은 모두 지방이다.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와 경북테크노파크에 문을 열고 스타트업을 육성 중이다. 부산과 광주에도 관심이 많다.

요즈마펀드가 투자해 성공한 기업 중에는 이스라엘 지방출신 의사가 만든 의료영상기기 개발사 바이오센스가 있다. 요즈마펀드 포트폴리오에 따르면 요즈마는 이 기업에 100만달러를 투자했다. 그리고 이 기업은 3년 뒤 글로벌기업인 존슨앤존슨에 4억3000만달러에 팔렸다.

요즈마의 한국 벤처투자시장 진출은 이스라엘 기업의 투자생태계 변화와 저평가된 한국기업의 가치가 배경이다. 에를리히 회장이 2015년 방한 당시 언급한 '이스라엘판 김기사' 웨이즈(Waze)는 요즈마가 한국시장에 왜 도전하는가를 축약적으로 나타내는 사례다. 에를리히 회장은 인구 5000만 국가에서 정확한 내비게이션 정보를 제공하는 김기사가 2015년 카카오에 626억원에 매각된 것으로 보고 크게 놀랐다는 후문이다. 웨이즈는 2013년 구글에 1조2000억원에 매각됐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이스라엘에 해외 VC, 모태펀드, 글로벌 R&D(연구개발)센터가 집중되면서 투자자 입장에서 재미없는 시장이 돼버렸다"며 "투자자 간 경쟁이 심해지면서 좋은 기술을 보유한 회사의 가치는 곧바로 하늘로 치솟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R&D 세계 1위이자 가장 혁신적인 국가이면서 높은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저평가돼 있어서 많은 투자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영호 기자, 고석용 기자

기술력 1위인데 사업화는 낙제점…성장없는 혁신기업
[위기의 지역벤처] ④혁신지수 5년 1위, 유니콘기업 '잠잠'…지역대학 '사농공상' 여전

[MT리포트] 벤처캐피탈 90%가 수도권에... 신음하는 지역벤처
"성장, 투자, 고용, R&D(연구·개발)에서 우리나라는 항상 상위권이었습니다. 블룸버그의 국가혁신지수에서 우리가 몇 년 연속 1등했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윤종원 청와대 경제수석이 지난달 청와대 페이스북 라이브방송 '11시50분 청와대입니다'에서 이같이 말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상임이사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를 지낸 그가 세계 경제 속에서 한국경제의 수준을 평가한 부분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미국의 경제금융 전문 통신인 블룸버그가 매년 발표하는 국가별 혁신지수에서 한국은 5년 연속 1위다. 올해는 89.28점을 얻었다. 85점을 넘지 못한 2위 스웨덴과는 월등한 격차다.

싱가포르, 독일, 스위스, 일본, 덴마크, 프랑스, 이스라엘, 미국 등 80점을 넘긴 나라도 한국의 발 아래에 있다. 혁신지수는 국가별 △R&D(연구개발) 지출 집중도 △제조업 부가가치 △생산성 △첨단기술 집중도 △교육 효율성 △연구집중도 고등교육기관 진학자 수 △특허 활동 등 7개 분야를 분석해 점수를 부여한다. 국가별 미래산업 경쟁력을 가늠하는 지표로 활용된다.

한국은 개별 항목에서도 최상위권에 있다. 올해의 경우 특허활동에서 1위, R&D 비중과 제조업 부가가치에서 2위를 차지했다. 지난해엔 이 세 항목 모두 1위를 차지했다. 5개 분야에서 1~2위를 차지한 2016년 블룸버그는 "아이디어의 세계에서 한국이 왕"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생산성 항목에선 항상 기대에 못미쳤다. 올해 21위로 상승했지만 지난해 32위, 2016년 39위였다. 월등한 기술력과 혁신성장 기반을 갖추고도 사업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지표는 현실로도 나타난다. 그동안 한국은 중소벤처기업 발굴·육성을 위해 57조원이 넘는 정책자금을 쓰고도 10억달러 이상의 가치를 지닌 비상장기업을 뜻하는 유니콘기업을 거의 키워내지 못했다.

최근 글로벌 조사기관에서 발표한 100대 유니콘기업 중 우리 기업의 이름을 찾기 어렵다. 한 벤처업계 관계자는 "몇년간 제대로 된 유니콘기업이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혁신벤처기업이 성장하지 않으면 지금보다 일자리 문제가 더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각에서는 대학이 높은 기술력을 보유하고도 기업을 통한 성장에 소홀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대전 카이스트(KAIST), 포항 포스텍(포항공과대학), 울산 유니스트(울산과학기술원) 등 우수 기술을 보유한 지역대학이 상당하지만 기술지주회사 대표 상당수가 교수 출신이다보니 학문적 성과에 치중한다는 의견이다. 학문을 우선시하고 기업운영을 천시하는 이른바 '사농공상(士農工商)' 문화다.

한 벤처캐피탈(VC) 대표는 "뛰어난 기술을 갖고 있는 기술지주회사 책임자가 대부분 학계에 있다보니 기업 운영경험 부족으로 실패하거나 실패를 우려해 사업화에 적극적이지 않다"며 "교수는 CTO(최고기술책임자)로 남고 운영은 전문경영인이나 액셀러레이터에게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박용호 전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장은 "고급기술 기반 창업을 위해 대학과 기업연구소의 창업을 이끌어내야 한다"며 "창업실패 트라우마를 제거하기 위한 기업가정신 교육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충고했다.

지영호 기자

홍종학 "테크노파크, 지역中企 도약하도록 역량 발휘하길“

[위기의 지역벤처] ⑤"지역기업-중기부·지자체 사이 연계역할 해줘야“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사진=뉴스1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사진=뉴스1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8일 전국 18개 테크노파크원장들에게 "테크노파크(TP)는 지역기업 혁신성장의 진정한 동반자(True Parter·TP)"라며 "지역기업과 중기부·지자체 사이 연계역할을 충실히 해 성장단계 중소기업이 도약할 수 있도록 역량을 발휘해달라"고 당부했다.

홍 장관은 이날 충북 테크노파크에서 이재훈 테크노파크진흥회장 등 전국 테크노파크원장들과 간담회를 열고 "지역 중소기업의 혁신성장을 위해서는 중앙정부-지자체 등 관계기관의 연계·협력이 중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간담회는 테크노파크가 지역중소기업 육성의 핵심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 기관의 역할과 발전방향, 어려움 등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1995년 전국에 조성된 테크노파크는 정부와 대학, 연구소, 공공기관, 산업체 등과 협력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지역 특성에 맞는 산업을 발전시키는 거점기관이다. 인천 '항공·자동차', 경북 '기계·에너지' 전남 '신소재·조선' 등 18개 센터별 상황에 맞는 특화분야를 개발시켜왔다. 최근에는 입주 기업보육은 물론 지역 전반의 성장전략 수립 역할도 진행하고 있다.

참석자들은 지역경제가 어려운 상황인 만큼 테크노파크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데 인식을 함께했다.

간담회에서 홍 장관은 "좋은 인력·장비를 보유한 테크노파크가 기업육성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만큼 창조경제혁신센터 등 지역 중소기업 육성기관과도 연계·협력을 강화해달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테크노파크가 스마트공장사업의 지역 확산기관으로 지정됨에 따라 지역 중소기업의 스마트공장 확산에 최선을 다해달라"며 "지역 특성에 맞는 융복합 기술을 기획하는 등 4차 산업혁명의 지역 전초기지 역할도 해야한다"고 덧붙였다.

고석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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