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원전수출, 계약방식 변경하면 이득일까

머니투데이 최성근 이코노미스트 2018.08.1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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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 랜딩]영국 원전수출은 경제적 손익 따져야…탈원전정책과 상관 없는 결정

편집자주 복잡한 경제 이슈에 대해 단순한 해법을 모색해 봅니다.

영국 원전수출, 계약방식 변경하면 이득일까


최근 한국전력공사가 영국 무어사이드 원자력발전소 프로젝트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상실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일부 언론에서는 일제히 ‘탈원전 재앙’, ‘탈원전의 저주’라면서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해 맹비난을 퍼부었다.



급기야 일부 야당까지 나서 영국 원전 우선협상대상자 자격 상실이 모두 정부의 탈원전 정책의 부작용이라며 비판했고, 조속히 탈원전 정책을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 관계부터 전혀 다른 일방적인 주장이다. 본래 무어사이드 원전 건설 프로젝트를 맡고 있는 ‘뉴젠’(NuGen) 컨소시엄은 일본 도시바와 프랑스 에너지기업 엔지(Engie)의 합작회사로 출발했으나, 미국 웨스팅하우스사의 부도로 도시바가 경영난에 빠지자 엔지는 지분 40%를 도시바에 넘기고 서둘러 사업에서 철수했다.



엔지의 철수로 뉴젠 지분을 모두 떠안게 된 도시바와 무어사이드 원전 사업을 책임진 영국 정부는 결국 한전에 러브콜을 보내기 시작했고, 결국 지난해 12월 도시바가 한전을 우선사업대상자로 선정하면서 영국 언론들은 "무어사이드 원전을 한국이 구했다"고까지 보도했다.

그런데 영국 원전 사업은 UAE 원전 수출 때와는 달리 원전 건설비용을 한전이 자체 조달하고 원전 건설 후 30~40년 동안 전기 판매를 통해 수익을 남겨야 하는 CFD방식(발전차액정산제도)이 적용됐다.

영국에서는 발전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재생에너지 등의 비중이 30%에 달해 전기 도매 가격은 원전에 비해 매우 저렴하다. 따라서 원전사업자가 전기 판매로 이익을 내기 위해서는 영국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해야 하는데 CFD 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규제가 까다롭기로 손꼽히는 영국 원전 건설은 사업비용이 얼마나 늘어날지 장담할 수 없다. 현재 사업 추진 중인 영국의 '힝클리 포인트 C' 원전도 건설비용이 당초 21조7000억원에서 28조4000억원으로 불어나 사업자인 프랑스의 EDF도 매우 고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영국 정부는 CFD 방식에 따라 초과비용을 포함한 건설비용은 모두 사업자 부담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CFD 방식을 고수하는 영국 정부는 힝클리포인트 C 원전 사업(프랑스 EDF)과 와일파·올드버리 원전 사업(일본 히타치)에서 CFD 사업 방식을 놓고 사업자들과 수년 째 마찰을 겪고 있다.

특히 와일파·올드버리 원전의 경우 히타치의 철수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으며, 영국 정부가 부랴부랴 총 사업비 3조엔(약 29조3000억원) 중 2조엔(약 19조 5000억원)을 대출 형태로 지원할 계획을 밝혔음에도 사업 전망은 여전히 불확실한 상황이다.

게다가 CFD 방식을 두고 영국 내부에서는 오히려 정부가 보장해주는 가격이 너무 높다며 막대한 보조금 지급과 그에 따르는 정부의 재정 악화를 우려하는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즉 시공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적자가 예상되는 힝클리포인트나 와일파·올드버리 원전과 같은 수준의 가격 협상조차도 어려워진 상황이다.

이러한 사정을 이미 잘 알고 있던 한전도 무어사이드 원전 사업에서 수익성 보장을 지속적으로 요구했고, 영국 정부는 사업비 부담을 담보나 대출 형태로 일부 분담하고 전력판매 수익도 배분하는 ‘규제자산기반’(RAB) 모델을 새롭게 제안했다.

비록 기대수익률이 높다 해도 건설비용 조달 및 회수의 부담과 계약가격 협상마저 쉽지 않은 상황에서 CFD 방식을 고수하기보다는, 기대수익률은 낮아도 리스크가 현저히 줄어든 RAB 방식으로 변경하는 것이 한전 입장에서는 오히려 유리하다고 볼 수 있다.

도시바 측이 한전의 우선협상자(CFD 방식) 지위를 해지한 것도 원전 계약 조건을 두고 한전과 영국 정부의 협상이 지연되고 비용 부담이 가중되자 조속히 뉴젠 지분을 매각하려는 도시바 측의 사정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도시바는 여전히 한전을 최우선으로 두고 협상을 지속한다는 입장이며, RAB 방식 적용시 수익성 및 리스크를 검토하기 위한 ‘공동타당성연구’를 한전과 함께 진행하고 있다. 영국 정부도 한전을 우선협상대상자 지위에 준하여 무어사이드 원전사업을 위한 협의를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럼에도 일부 언론에서는 마치 우리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추진했기 때문에 영국 정부가 한전의 우선협상자 지위를 박탈시킨 것이라는 뜬금없는 보도를 쏟아냈다. 게다가 영국 원전 사업의 리스크나 계약방식의 변경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고 오직 원전 수출이 무산되면 국내 원전산업이 모두 고사할 것이라는 과장된 주장까지 내놓았다.

심지어 영국 가디언지가 보도한 '한국의 정권교체와 신임 한전 사장 임명 등으로 불확실성이 조성됐다'는 기사 원문의 의도를 왜곡해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비난하는 근거로 내세웠다. 하지만 기사 원문 어디에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지적하는 대목은 찾아볼 수가 없다. 오히려 가디언지가 언급한 '불확실성'이란 말은 한전이 무어사이드 원전사업을 철회할 것에 대한 영국 측의 우려로 해석하는 것이 맞다.

무엇보다 우리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가시화된 지 한참 지난 12월에 한전은 무어사이드 원전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즉 탈원전 정책은 애초에 협상의 고려사항이 전혀 아니었던 셈이다.

물론 원전 수출은 매우 중요하고 국내 관련 산업 발전을 위해서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세계적인 대기업 도시바 역시 유수했던 미국의 원전 기업인 웨스팅하우스를 인수했다가 결국 부도를 면치 못하고 심각한 경영난에 빠졌다.

아무리 수십조원의 원전 수출사업이라고 해도 경제적 손익을 꼼꼼히 따져가면서 참여해야지 막무가내로 사업을 추진하다가는 도시바처럼 막대한 손실을 면치 못하게 되고 결국 국민들의 혈세를 낭비하는 어리석은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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