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 “소유도 공유도 싫다”…월정액내고 구독하며 산다

머니투데이 구유나 기자 2018.08.01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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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경제가 뜬다]① ‘상품경제→공유경제→구독경제’…구매과정 건너뛰고 구독으로 소비 해결

편집자주 전통적인 상품경제에서 소비자들은 ‘산만큼 기업’에 물건 값을 냈다. 그런데 공유경제(sharing economy)가 부상하면서 이 공식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쓴 만큼 주인’에게 돈을 내는 것이다. 최근에는 이 공식이 아예 뒤집히고 있다. 산만큼, 쓴 만큼 내는 것이 아니라 먼저 내놓고 쓰는 구독경제(subscription economy)가 부상하고 있다.

[MT리포트] “소유도 공유도 싫다”…월정액내고 구독하며 산다


술을 마신다고 생각해보자. 맥주 한 병 사거나 맥주 한잔 마신 뒤 돈을 낸다. 그렇다면 이렇게 마시는 건 어떤지?

매달 9.99달러 회비를 내면 수백 개 맨해튼 술집에서 매일 칵테일 한 잔 마실 수 있는 미국 스타트업 후치(Hooch). 월가의 비관론자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도 투자한 회사다. 지난해 매출이 200만달러(22억원). 술집은 홍보가 되고 딱 한 잔으로 끝나는 게 아니어서 장사가 된다. 고객은 1만원 회비에 언제든 공짜 술이다.

혹은 이건 어떤지. 일본 기린맥주는 매달 7,452엔(7만5000원) 회비를 내면 한 달 두 번 양조장에서 갓 만든 생맥주를 정기 배송해 준다. 특수페트병과 전용맥주서버를 함께 주는데 꼭지만 틀면 집이 호프집이다. 술도 먹은 만큼 내는 게 아니라 월정액 내놓고 마시는 시대다.



술뿐이 아니다. 속옷, 생리대, 영양제, 콘택트렌즈, 과자, 커피, 전자책, 자동차 등 물건뿐 아니라 병원과 영화관 관람, 매장 임대 등 서비스까지 수많은 분야에서 월정액 서비스가 시도되고 있다. 산만큼, 쓴 만큼 내는 것이 아니라 월 구독료 내고 회원 등록한 뒤(subscribe) 물건이나 서비스를 받아쓰는 것이다. 바로 구독경제(subscription economy) 시대다.

미 경제지 포브스는 "구독경제는 수백 년 넘은 소유 개념을 해체하며 새로운 경제생활을 만들고 있다. 물건을 소비하는 방식을 소유(ownership)에서 가입(membership)으로 바꾸고 있다"고 진단했다.



[MT리포트] “소유도 공유도 싫다”…월정액내고 구독하며 산다
크레디트스위스 리포트에 따르면 2016년 구독경제 시장규모는 약 4200억 달러(469조원)이고 2020년에는 5300억 달러(594조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됐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구독 서비스 이용자가 1100만 명에 달한다.

구독모델의 효시를 따지자면 신문이다. 하지만 구독경제라는 경제현상이 자리 잡게 된 계기는 월정액 내면 무제한 스트리밍 영상을 볼 수 있는 넷플릭스의 성공이다. ‘넷플릭스 모델’이 디지털콘텐트를 넘어 전 방위로 자리 잡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 스타트업 ‘무비패스’는 월 9.95달러를 내면 한 달 내내 매일 극장 가서 영화 한 편씩 볼 수 있는 서비스로 주목받고 있다. 1편 값으로 최대 30편을 보는 셈이다. 회사는 이용자가 어떤 종류의 영화를 얼마나 자주 보는지 데이터를 팔아 돈을 번다. 월 회비 149달러(17만원) 내면 수시로 가서 검진받는 병원도 생겼다.


구독경제는 정기배송 모델이 등장하면서 더 다양해지고 있다. 월정액 내면 매달 한 번 면도날 4~5개를 집으로 배송해주는 미국 스타트업 '달러 쉐이브 클럽'이 2011년 창업해 성공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이 회사는 창업 5년 만에 320만 명 이상 회원을 확보하면서 유니레버에 10억 달러에 매각됐다. 그러면서 이 모델 자체가 칫솔, 란제리 등 전 상품분야로 확산됐다.

내구성 높은 고가 제품에 대해서는 정수기 렌탈과 유사한 구독경제 모델이 시도되고 있다. 패션 스타트업들은 월정액 내면 추가비용 없이 디자이너 브랜드의 드레스, 액세서리, 구두 등을 골라 입고 반납하는 서비스를 하고 있고 벤츠나 BMW 등은 월정액 내면 마음에 드는 차를 골라 타다 싫증 나면 수시로 바꾸는 구독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구독경제의 도래는 소비가 매번 번거로운 구매과정을 건너뛰고 즉각적인 이용으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덕분에 기업은 고객을 붙잡아 두면서 안정적 매출을 확보할 수 있다. 소비자와 생산자의 관계가 새롭게 맺어지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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