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에선 과학자보다 개그맨이 더 중요?…예능과 만난 ‘깨어난 과학’

머니투데이 류준영 기자 2018.07.23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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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사이언스팩트 리얼리티’ 장르 개척 나선 이영준 PD

이영준 PD/사진=CJ ENM이영준 PD/사진=CJ ENM


평균 1.4%, 지난 15일 ‘과학 예능’이란 낯선 장르의 tvN 프로그램 ‘갈릴레오:깨어난 우주’ 1회 시청률이다. 먹방(먹는 방송), 여행, 가족 일상 엿보기 위주로 계속된 자기복제로 예능이 ‘단조로움 늪’에서 허우적될 때, 이영준PD는 ‘사이언스팩트(Science Fact, 과학적 사실) 리얼리티’라는 독창적 장르의 새 지평을 열겠다며 ‘화성 탐사’를 소재로 끌어안았다.

이PD는 “과학과 예능의 콜라보레이션이 좀더 의미있는 예능을 탄생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특히 과학 분야 중 우주에 주목한 이유를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영화 ‘그래비티(2013)·인터스텔라(2014)·마션(2015)’이 연이어 히트하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주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 많다고 느꼈다”고 설명했다.



‘갈릴레오:깨어난 우주’는 미국 유타주 외딴 사막에 위치한 화성탐사연구기지(MDRS, Mars Desert Research Station)에서 김병만·하지원·닉쿤·김세정, 문경수 과학탐험가 등이 7일간 생활하며 갖가지 미션을 수행하는 모습을 담았다. MDRS는 우주비행사, 천문학자 등 약 4000명이 모인 화성협회에서 2011년 설립했다. 화성에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각종 문제나 극복 방안에 대해 연구·실험하기 위해 화성과 같은 조건으로 꾸며놓은 곳이다.

tvN '갈릴레오: 깨어난 우주' 방송 장면/사진=CJ ENMtvN '갈릴레오: 깨어난 우주' 방송 장면/사진=CJ ENM
제작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MDRS 196기’ 입소를 요청했지만, 화성협회가 예능 프로라는 이유로 단칼에 거절했다. 설득 과정만 3개월이 걸렸다.



“엔터테인먼트TV쇼라고 하니까 한번에 거절당했죠. 화성기지에서 웃고 즐기는 정도의 프로그램으로 여겼던 것 같아요. 그래서 김병만 씨가 ‘정글의 법칙’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런 사람들의 ‘화성 생존기’를 통해 한국 시청자들이 우주과학에 눈 뜨게 해주고 싶다고 설득했습니다.”

이영준 PD/사진=CJ ENM이영준 PD/사진=CJ ENM
196기 크루로 활동한 연예인들의 모든 기록은 실제로 화성 이주를 위한 데이터베이스(DB)로 쓰일 예정이다. “MDRS 관계자들이 이런 얘기를 했어요. 화성 이주는 과학자들만 가는 것도 아니고, 그들의 전유물도 아니다. 지구 인류 모두가 가는 것이고 그래서 당신들의 기록은 우리에게 매우 소중하다고.”

일부 시청자들은 과학자도 아닌 아이돌과 코미디언이 왜 가상의 화성기지에 가냐라며 비아냥댔다. 하지만 MDRS에서 만난 이탈리아 과학자 일라리아 커멘더는 화성에선 가수 닉쿤과 개그맨 김병만 같은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그들을 반겼다.


“화성 이주 시 고립된 좁은 공간에 오래 있다보면 심리적으로 우울해질 수 있는 데 이때 웃음과 음악이 필요해요. 동료들의 기분이 다운되지 않도록 하는 역할이죠. 그곳 관계자들도 가수와 개그맨인이야 말로 화성 이주에서 정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꼽았습니다.”

대학 시절 물리학을 전공한 이PD는 지적 버라이어티를 표방한 ‘호기심 천국(1998년)’의 조연출로 방송에 입문했다. "지금 대중들에게 화성 이주는 그리 생소한 것이 아니죠. 20년전보다 훨씬 더 빈번하게 과학정보에 노출되고 있어요. 단순한 정보 전달 형태의 기존 방송문법으론 소통하기 힘들다는 얘기죠. 다만, 들어 봤다와 알고 있다를 똑같이 안다로 쓰기엔 그 사이 간극이 크죠. 내게 친숙한 연예인들의 우주 도전기로 얻게 되는 값진 간접 경험으로 이 간극을 메우는 것, 그게 제가 추구하는 방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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