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청산도에 가면 초분이 있다

머니투데이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2018.07.21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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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봄의 청산도 풍경. 이 사진에 나온 초분은 전시용이다./사진제공=이호준 여행작가이른 봄의 청산도 풍경. 이 사진에 나온 초분은 전시용이다./사진제공=이호준 여행작가


그해 청산도에 간 것은 이른 봄이었다. 밤을 달려 완도에 도착했을 땐 모두가 잠든 새벽이었다. 한참 기다려서 첫 배를 탈 무렵이 가까워서야 새 날이 문을 열었다. 완도에서 청산도까지는 뱃길로 50여분. 바다를 구경할 생각조차 접어두고 배 위에 실려 가는 차 안에서 부족한 잠을 벌충했다.

청산도에 내리자마자 맨 먼저 만난 건 바람이었다.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었지만 비가 올 기미는 아니었다. 작은 국토라지만 남쪽은 남쪽이었다. 서울에서는 구경도 못하던 진달래며 개나리가 온통 봉우리를 열고 있었다. 골짜기의 밭마다 마늘과 보리가 새봄을 노래했다. 유채꽃들이 그 사이에 노란색을 점점 찍어놓고 있었다. 섬 안으로 들어서자 먼저 시선을 끈 건 무덤들이었다. 많기도 하지. 죽은 자와 산 자들이 영토를 반씩 나눠 쓰고 있는 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청산도, 그 먼 길을 간 건 초분(草墳)을 찾아서였다. 초분은 지금까지 남아있는 유일한 이중장(二重葬)제도다. 사람이 죽고 나면 바로 땅에 묻는 것이 아니라 뼈만 남을 때까지 보관했다가 나중에 묻는 장례절차를 말한다. 초분의 절차는, 바닥에 짚 등을 두껍게 깔고 그 위에 관을 놓고 다시 짚으로 덮는다. 그렇게 해서 3년이 지나면 뼈만 남게 되는데 이 뼈를 추려 땅 속에 매장한다.

초분을 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부모상을 당했는데 맏상제(장자)가 고기잡이에 나가 상을 치를 수 없다든가, 아내 상을 당했을 때 남편이 멀리 나가 있는 경우 등 바다에 기대 사는 사람들의 특수한 여건이 그런 풍습을 낳았다는 설이 가장 설득력 있다. 좀 더 과학적으로 접근한 설명도 있다. 청산도는 돌이 무척 많다. 땅 거죽만 벗기면 온통 돌이다. 때문에 시신을 바로 매장하면 부패하면서 나온 오염수가 돌 틈으로 스며들어 지하수를 오염시킨다. 그래서 가매장을 했다가 뼈만 묻는다는 것이다.



첫 번째 초분은 구장리라는 곳에서 만났다. 큰 길에서 멀지 않아 어렵잖게 찾을 수 있었다. 낮은 산 아래의 보리밭 가장자리에 자리 잡고 있었다. 초분에 대해 물어볼 사람이 없나 싶어서 두리번거렸지만 아무도 발견할 수 없었다. 돌아서려는 순간, 저만치서 경운기 한 대가 빠르게 달려왔다. 근처 밭에라도 나오는 듯, 노인 한 분이 앉아있었다. 다짜고짜 세우고 인사부터 했다.

"안녕하세요? 어르신. 이게 초분 맞지요?"
"그렇소만, 어쩐 일로…?"

짐짓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사실은 물어보려는 게 뭔지 다 안다는 눈빛이었다. 노인으로부터 초분에 대해 자세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분은 내가 알고 있던 '초분을 쓰는 이유'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줬다.


"젊은 사람이 죽으면 그대로는 못 묻어. 선산에 묘를 써야하는데 생장(生葬)으로는 못 들어간다는 거지. 그래서 초분을 했다가 뼈만 묻는 거야. 그리고 음력 정월(1월)에는 땅을 파면 안 돼. 여기 풍습이 그래. 그때 땅을 파면 부락 자체에 액운이 오거든. 그래서 정월에 죽은 사람들은 초분을 하는 게야."

노인은 마치 미리 준비라도 했다는 듯 초분에 관한 이야기를 자세하게 들려주었다.

"시신이 초분에서 2~3년 썩으면 뼈만 고스란히 남게 되거든. 그때 잘 간추려서 제대로 묻는 거야. 요즘? 거의 안 해. 생각해봐. 장사를 이중으로 치루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비용도 만만찮고…."

말을 마친 노인이 경운기의 시동을 힘차게 걸더니 금세 멀어져갔다. 마치 내게 초분에 대해 설명해 주려고 왔다 가는 것 같았다.

도청리에서 마지막으로 만난 초분./사진제공=이호준 여행작가도청리에서 마지막으로 만난 초분./사진제공=이호준 여행작가
다른 초분을 찾으러 신흥리와 청계리 인근을 헤매고 다녔지만 쉽사리 눈에 띄지 않았다. 물어보면 이쪽 저쪽으로 가보라고 가르쳐주는데 초분이란 게 집채만큼 큰 게 아니라서인지 찾기가 어려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참에 산으로 이어진 좁은 길에서 트럭 한 대가 내려왔다. 무조건 세운 뒤 초분이 있는 곳을 가르쳐달라고 졸랐다. 처음엔 고개를 갸웃거리던 기사가 결심이라도 한 듯 자신의 트럭을 따라오라며 앞질러 달렸다. 한참 따라가다 보니 어느 골짜기 앞에서 차가 멈췄다. 도청리라는 표지석으로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기사가 차에서 내리더니 위치를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고 떠났다. 참 친절한 사람들이었다.

산길을 한참 걸어 올라가자 만든 지 오래지 않은 초분이 나타났다. 구장리 초분보다 훨씬 '살아있는' 느낌이 들었다. 배의 노처럼 꽃아 둔 솔가지도 일부는 푸른 기운이 성성했다. 초분 앞 돌 위에는 과일까지 놓여있었다. 아래에서는 초분이 잘 안 보였지만 막상 초분 앞에 서니 눈앞이 확 트여있었다. 좁은 섬이란 환경을 감안하면 보기 드문 명당이었다.

초분 주변을 찬찬히 돌아보았다. 누군가 표현했듯이 꼭 배(船)처럼 생겼다. 굳이 배라고 한다면 이승과 저승 사이의 강을 건너 주는 배일 것이다. 사자가 노를 저어 저승으로 건너가는 모습을 상상하다 다시 초분머리와 눈을 맞췄다. 어차피 오래지 않아 사라질 풍경이었다. 눈앞에 있는 것도 내일을 장담하기 어려운 세상이니, 어쩌면 마지막 초분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분 옆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봄바람이 부드럽게 전신을 감쌌다. 사자(死者)의 땅에서 사람 사는 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낡은 넥타이처럼 구불구불 풀어져 있었다.

[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청산도에 가면 초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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