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청약은 집값 오를 때 이야기, 지금은 위험 대비해야"

머니투데이 신희은 기자 2018.07.23 03:59
글자크기

[머투초대석]이재광 주택도시보증공사 사장

이재광 주택도시보증공사 사장 이재광 주택도시보증공사 사장


"주택시장이 변곡점을 지나고 있다고 봅니다. 시장이 좋을 땐 분양가 규제에 반발이 많지만 시장이 꺾일 때 나타나는 리스크(위험)도 대비해야죠."

이재광 주택도시보증공사(이하 HUG) 사장(56·사진)은 분양가를 과도하게 규제해 시장 왜곡을 초래한다는 건설사들의 반발에 이같이 답변했다. 분양보증 과정에서 분양가가 지나치게 높지 않도록 조정해 시장 과열을 방지해야 할 책임을 강조한 발언이다.



주변 시세보다 수 억원 저렴하게 분양해 소위 ‘로또 청약’이라 불렸던 곳들도 집값이 계속해서 오를 것이란 전제를 가정한 것일 뿐이라며, 버블이 사라졌을 때를 대비한 선제적 위험 관리가 중요하다고 했다.

후분양제 확대에 따른 중소 건설사 지원과 도시재생 뉴딜사업 뒷받침 등을 위해 다양한 상품을 선보이고, 공기업 최초로 노동이사제를 도입해 노조와 상생 경영을 하겠다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현안이 산적해 바쁜 나날을 보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바람 잘날 없다는 표현이 맞을 것같습니다. 경기가 세계적으로 매우 불안하고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해 우리도 시차를 두고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주택시장에도 영향이 클 텐데 시장은 이미 변곡점을 지난 것으로 판단됩니다. HUG가 취급하는 상품 중 ‘전세금반환보증’ 신청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늘고 있어요. 매매와 전세가격의 ‘갭’(gap)이 벌어지면서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진다는 방증이죠. 서울 등 수도권과 지방의 온도 차가 큰 것도 눈여겨봐야 합니다. 지금은 저금리 기조가 장기간 지속돼 시중에 유동성이 많이 풀린 후 겪는 후유증 단계로 생각돼요. 선제적 위험관리가 중요해지는 시점이죠.

-위험을 선제적으로 관리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방안은 무엇인가요.


▶일단 인원도 많이 필요하고 본부별로 나눠진 기능을 합쳐야 해요. HUG는 160조원에 이르는 주택도시기금을 전담운용하고 분양보증잔액은 383조원에 달해 금융기관 성격이 강해졌습니다. 특히 기금은 주요 조성재원이 채권, 청약예금, 청약저축 등 부채성 재원입니다. 도시재생자금도 여기서 가져와 쓰는데 만기가 돌아오면 갚아야 해요. 도시재생 같은 장기 프로젝트에 운용하다 보면 미스매칭이 발생할 수도 있죠. 만기 구조를 다양화하고 상품을 개발하는 등 조직 및 리스크 관리가 필수예요. 통합적으로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할 계획입니다.

이재광 주택도시보증공사 사장 이재광 주택도시보증공사 사장
-증권·금융권 출신으로 남다른 각오가 있을 것 같은데.

▶부동산 분양보증은 결국 보험과 비슷한 성격을 갖고 있어요. 기금도 익숙한 분야입니다. 은행, 자산운용, 리츠(부동산투자신탁), 프로젝트파이낸싱관련 업무까지 수행하니 종합금융업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쌓은 금융지식과 경험으로 HUG가 새로운 상품을 많이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증사업분야에선 전세보증상품을 더 활성화하고 서민맞춤형 보증상품 개발과 제도 개선에 힘쓰겠습니다. 기금분야는 수요자대출제도를 개선하고 도시재생분야는 다양한 사업 유형과 추진주체에 유연한 자금지원이 가능토록 맞춤형 기금 상품을 개발·운용할 계획이에요. 생애단계별·소득계층별 주거지원도 준비하고 있어요. 구도심을 재생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둥지내몰림’(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HUG가 기여할 것입니다.

-8·2 부동산대책 이후 정부가 HUG를 통해 분양가를 통제하면서 청약과열과 시장 왜곡을 부추겼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HUG가 시행하는 분양보증 고분양가 심사가 이른바 ‘로또 청약’ 문제를 낳는다는 비판을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HUG의 고분양가 심사가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는 것으로 비춰지는 것은 불합리합니다. HUG는 토지비, 공사원가, 사업이윤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축아파트의 적정 분양가격을 심사합니다. 시시각각으로 변동하고 때로는 거품도 끼어 있는 기존 재고주택 거래가격에 비해 신축주택 분양가격이 낮다는 이유로 투기를 조장한다고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아요. HUG의 고분양가심사제도는 중장기적으로 주택안정에 기여하고 보증위험을 완화해 서민주거 안정에 기여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서울에서야 과도한 규제비판이 나오지만 전국으로 보면 미분양이 해소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지역이 많아요. 서울만 놓고 봐선 안됩니다. 분양시기나 지역마다 시세와 여건이 다 다르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분양가 자율화는 불가능한가요.

▶분양가 책정을 시장 자율에 맡기면 분양가가 급등한 곳이 지역 ‘랜드마크’인 양 위세를 떨면서 주변 시세를 끌어올릴 가능성이 높아요. 이렇게 되면 전체 주택경기와 무관하게 시장과열이 나타날 수 있고 버블에 따른 위험을 누군가는 떠안아야 합니다. 3년 뒤 입주시점 가격을 우리는 너무 쉽게 예단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우리나라는 독특하게 전세제도가 있어 그나마 주택시장 하강기에 가격이 어느 정도 버티는 측면이 있지만 홍콩의 사례를 보면 1997년 부동산시장 가격이 반토막난 곳이 수두룩했어요.

-정부의 후분양제 확대가 중소건설사에 타격이 된다는 우려가 높은데요.

▶후분양제는 신용도가 높고 자금력이 있는 대형건설사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중소건설사는 지원이 필요해요. 기금융자 및 보증한도 확대, 금리 및 보증료율 인하 등 현행 제도를 개선해 대규모 주택사업 자금조달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 중이에요. 장기적으로는 HUG의 역할을 보증 중심에서 주택분야 장기 금융지원기관으로 확대 개편할 계획입니다.

-과도한 청약규제도 바뀌어야 하지 않느냐는 시각이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검토해봐야 할 문제예요. 아직도 집이 없고 집을 사기 힘든 사람이 많아요. 청약제도를 완전히 바꾸기엔 이르죠. 분양가를 적절히 조율하고 후분양제도 정착되면 이런 문제들이 어느 정도는 해소될 것으로 봅니다.

-노동경제학을 전공한 점이 눈에 띄는데.

▶한국전력 지부장으로 노조활동을 활발히 하신 선친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노동을 통해 경제학을 이해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선택한 전공입니다. 법제화가 이뤄지면 공기업 최초로 노동조합 대표가 이사회에 들어가 발언권과 의결권을 행사하는 ‘노동이사제’를 실현해보고 싶어요. 경영자와 노동자가 소통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구축해 서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입니다. HUG의 모든 현안을 가능한 한 투명하게 직원들과 공유하고 모든 이해관계자와 적극 소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이재광 주택도시보증공사 사장이재광 주택도시보증공사 사장
-HUG에서 꼭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취임하면서 ‘공공, 공정, 경쟁력’ 3가지를 화두로 던졌어요.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고 공정하게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주택보증, 도시재생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중소건설사를 지원하는 데도 공을 들일 것입니다. 직원들에게도 ‘원칙’을 잘 지키라고 항상 강조합니다.

-주택경기는 어떻게 보시나요.

▶지난 10년간 저금리 기조하에서 부동자금이 많이 늘었는데 그 자금의 상당수가 부동산으로 몰렸어요. 지난 1년반 사이 강남권 주택가격이 급등했고 최근 들어 5~10%가량 조정을 받는 모습입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우리나라에 새로운 돈이 들어올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에요. 부동자금이 많다고 해서 이 돈이 항상 그대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금융시장이 타격받으면 금액이 급속도로 줄어들어요. 부동산시장은 이미 변곡점을 지나 과도하게 오른 곳은 많이 떨어질 우려도 커요. 앞으로 일정기간 자산가격이 조정기를 거칠 것으로 봅니다. 청약시장에 사람들이 지금 몰리는 것도 기존 주택가격이 그만큼 매력적이지 않다는 증거죠. 위험관리가 그만큼 중요한 시점입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