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첫 사립교육기관 소수서원을 가다

머니투데이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2018.07.14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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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서원으로 가는 길의 소나무들./사진제공=이호준 여행작가소수서원으로 가는 길의 소나무들./사진제공=이호준 여행작가


정자나 누각도 그렇지만 옛 서원으로 가는 길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길이다. 그래서 늘 마음이 설렌다. 더구나 이 땅에 세워진 첫 사립교육기관인 경북 영주의 소수서원이라면 그 의미가 가볍지 않다. 시간의 무게를 상징하듯, 입구에서 만나는 아름드리 소나무들조차 예사롭지 않다. 마치 용들이 비상을 꿈꾸는 듯, 기상이 하늘을 찌른다.

서원으로 들어가기 전에 서원 곁을 흐르는 죽계천으로 방향을 잡는다. 아름다운 풍경을 먼저 보기 위해서다. 그러다 길옆에 조금 어색하게 서 있는 당간지주 한 쌍과 만났다. 유교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서원에 사찰에서나 흔한 당간지주라니? 설명을 보고서야 고개를 끄덕인다. 소수서원 자리는 본래 숙수사(宿水寺)라는 절이 있던 곳이라고 한다. 유교가 융성하면서 결국 절이 밀려났을 것이다.



소수서원 옆 죽계천 풍경.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이 취한대다./사진제공=이호준 여행작가소수서원 옆 죽계천 풍경.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이 취한대다./사진제공=이호준 여행작가
징검돌을 하나씩 건너 취한대로 향한다. 다리 중간쯤에 서서 냇물에 비친 풍경을 눈에 담는다. 누가 소수서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물으면 서슴없이 이곳을 꼽을 것이다. 낙락장송과 취한대와 흘러가는 물이 어우러져 말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을 연출한다. 퇴계 이황이 세웠다는 취한대는 공부에 지친 선비들이 잠시 쉬며 휴식하던 곳이라고 한다.



취한대를 둘러본 뒤 다시 내를 건너와 500년도 넘게 살았다는 은행나무 아래 선다. 내 건너편 바위에 새겨놓은 글자들이 또렷이 눈에 들어온다. 붉은 글씨로 敬(경)자를, 흰 글씨로 白雲洞(백운동)이라 새겨놓았다. 경자는 공경과 근신의 자세로 학문에 집중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백운동서원은 소수서원의 본래 이름이다. 세월에 얹혀 사람은 떠났어도 품었던 뜻은 바위에 새겨져 생생하게 전해진다.

이 '敬자 바위'에는 슬픈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금성대군의 단종 복위 거사가 밀고로 실패하면서 순흥도호부민들까지 참화를 당하게 된다. 희생당한 백성들의 시신이 이곳 죽계천에 수장된 뒤 밤마다 억울한 넋들의 통곡이 그치지 않았다. 이에 풍기군수 주세붕이 경자 위에 붉은 칠을 하고 정성을 다해 제사를 지냈더니 울음소리가 그쳤다고 한다.

서두에 쓴 대로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다. 중종 37년(1542년)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1495∼1554)이, 고려 말의 유학자이자 최초의 성리학자인 안향이 태어나 공부하던 이곳 백운동에 사당을 설립하고 사당 동쪽에 백운동서원을 설립한 데서 비롯됐다. 그 후 퇴계 이황이 풍기군수로 부임하여 명종 5년(1550)에 조정에 건의, '紹修書院(소수서원)'이라는 현판을 하사받아 최초의 사액서원이 되었다. 사액서원은 왕으로부터 책·토지·노비를 하사받고 면역의 특권을 갖는다. 소수서원에는 국보 제111호인 회헌 초상과 보물 5점 등의 유물이 소장돼 있다.


소수서원 내의 직방재(直方齋). 지금의 기숙사에 해당하는 건물이다./사진제공=이호준 여행작가소수서원 내의 직방재(直方齋). 지금의 기숙사에 해당하는 건물이다./사진제공=이호준 여행작가
이제 서원을 본격적으로 둘러볼 차례. 경렴정을 지나 지도문으로 들어선다. 맨 앞에 강학당이 있다. 이 공간은 유생들이 강의를 듣던 곳이다. 그 뒤로는 선비들의 기거공간인 일신재와 직방재가 있고 오른쪽으로 가면 학구재‧지락재와 만난다. 유생들이 호연지기를 기르던 곳이다.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과거에 일어났을 장면들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얼마나 많은 젊은이가 청운의 꿈을 품고 이곳을 찾았을까.

제사를 지내는 공간인 제향영역을 거쳐, 영정각으로 들어가 선인들의 초상과 만난다. 이곳에는 우리나라 성리학의 시조로 불리는 안향과 서원을 세운 주세붕 등의 초상이 있다. 시공을 초월해 옛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누구는 충의를 이야기하고 누구는 예를 이야기하고 누구는 인간의 도리를 이야기한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사람 사는 이치야 어찌 변할까. 오래전 유생들이 걸었을 길 위에 조심스레 발자국을 얹어본다.

소수서원 인근에는 둘러볼 곳이 많다. 소수서원과 바로 연결되는 선비촌도 그중 하나다. 이곳은 유교문화를 직접 학습할 수 있도록 조성한 전통 민속마을이다. 선비촌을 이루는 12채의 고택은 영주시 관할 여러 마을에 흩어져 있던 기와집과 초가집을 복원해놓은 것이다. 산책로를 따라 조선 시대의 전통가옥들을 둘러보며 각종 체험도 하고 다양한 음식을 즐길 수 있다.

또 가까이에 금성대군신단이 있다. 단종 복위를 추진하다 순흥으로 유배된 금성대군은, 순흥부사 이보흠 등과 거사를 도모하다 발각되어 참형을 당하고 말았다. 이곳에는 금성대군 신단·순의비(殉義碑) 외에도 거사 모의에 참여했다가 함께 처형당한 이보흠과 지역 선비들을 추모하기 위한 제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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