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미성년 여군 性추행? '억울한 가해자' 현실화

머니투데이 이동우 기자 2018.07.10 0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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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유죄→2·3심 무죄 '반전'…321일 억울한 옥살이·극단적 선택, 가족까지 피해

군인 / 사진=이미지투데이군인 / 사진=이미지투데이


군대에서 미성년자인 여자 부사관을 성추행했다는 이유로 321일간 구속됐던 남자 부사관이 끝내 무죄로 밝혀졌다. 해당 사건은 '미투 운동'(Me Too·나도 고발한다)이 본격화되기 전에 군대 내 성범죄의 경종을 울린 사건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무죄로 확정되면서 행여 있을지 모르는 '억울한 가해자'가 현실화 됐다. 누명을 쓴 당사자는 가족 중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까지 나오는 등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달 12일 대법원은 군 검사의 상고를 기각해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위반(예비적 죄명 군인등강제추행) 혐의를 받는 상사 이모씨(37)에게 무죄를 선고한 고등군사법원의 판결을 확정했다.



이씨는 중사 재직 시절인 2012년 9월부터 12월까지 하사 A씨(당시 18세)를 수차례 걸쳐 강제 추행한 혐의로 2017년 1월 기소됐다. 회식 자리에서 팔뚝과 허벅지 등 신체 주요부위를 수차례 걸쳐 만지거나 억지로 허리를 끌어안았다는 것이 기소 요지다.

이씨는 혐의 사실을 부인했고 회식의 동석자들 역시 이씨의 추행 사실이 없다고 진술했음에도 군사법원은 2017년 6월 19일 열린 1심에서 이씨의 유죄를 선고했다. 이씨의 혐의를 입증할 직접증거가 A씨의 진술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재판부는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진실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했던 이씨는 1심 선고 이후 자포자기에 빠졌다. 이씨는 재판 다음 날인 20일 헌병대 영창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며 전투화 끈으로 스스로 목을 매 3일간 의식불명에 빠지기도 했다. 저체온 치료 등으로 가까스로 목숨은 건졌지만 심각한 신체·정신적 후유증이 남았다.

불행은 주변 가족들에게도 이어졌다. 같은 부대에서 근무하던 손아래 동서(아내 여동생의 남편) B씨는 이씨 사건의 영향으로 우울증을 앓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B씨는 폐쇄적인 군 사회의 특성상 자신의 손위 동서인 이씨의 소문이 확산하자 크게 괴로워한 것으로 부대 자체 조사 결과 확인됐다.

해당 사건을 다룬 기사에도 이씨를 비난하는 악성 댓글이 많이 달렸다. 이를 본 이씨와 가족들은 정신적 충격을 받는 등 피해를 입었다.


반전은 2심부터 일어났다. 2017년 12월 6일 진행된 항소심에서 이씨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씨가 줄곧 무죄를 주장하는 가운데 A씨의 진술이 시간이 지날수록 달라지고 3자 진술 등 객관적 사실과 들어맞지 않아 신빙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2심 재판부는 "피해자(A씨)의 진술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진술이 구체화하고 새로운 진술이 추가되는 데다가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진술이 변경되기도 하는 등 선뜻 믿기 어렵다"며 "자신의 주장과 부합하지 않는 사정들에 대하여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구체적이고 명확한 진술을 회피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올해 6월 대법원의 최종 판단으로 이씨는 혐의를 완전히 벗었지만 이미 삶은 큰 상처를 입었다. 구속된 기간은 이씨의 둘째 아이가 태어난 지 한 달 만인 2016년 12월22일부터 항소심에서 무죄를 받은 지난해 12월6일까지 무려 321일(병원 치료에 따른 구속집행 정지기간 제외)에 달했다. 이씨와 아내는 여전히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이 사건에서 이씨의 2심과 3심 변호를 맡았던 홍민결 법무법인 신효 변호사는 "이씨는 1년여에 걸친 재판으로 아무런 죄가 없다는 점이 밝혀졌지만 그 과정에서 겪은 정신적·물질적 피해는 무엇으로도 되돌릴 수 없다"며 "무수한 성폭력 고소·고발 속에 억울한 피해 사례가 생길 수도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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