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타니치 가축시장./사진제공=이호준 여행작가
시장바닥은 사정없이 질척거렸다. 얼었던 땅이 풀린 데다 소와 양의 배설물이 두툼하게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피할 수 없을 땐 편하게 받아들이는 수밖에. 가축 분뇨를 양탄자라도 되는 양 마구 밟고 다녔다. 오랜 세월 쌓이고 쌓인 배설물 역시 그 자체로 역사고 문화다. 누구는 이 시장이 1000년은 됐을 거라고 했다. 시장은 매일 열리는데 하루에 1000명 정도가 모인다. 100㎞ 떨어진 곳에서 양을 팔거나 사러오는 사람도 있었다. 양을 팔러온 사람도 사러온 사람도 급할 게 하나도 없다는 느긋한 표정이었다. 그렇다고 우리네 장날처럼 걸쭉한 술판이 벌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차이 한 잔 사서 마시며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게 전부였다.
양과 염소를 팔러 나온 농부들이 내 카메라 앞으로 몰려들었다./사진제공=이호준 여행작가
가격을 흥정하는 장면도 재미있었다. 양을 살 사람이 나타나면 팔 사람과 손을 마주잡는다. 보통은 중개인인 제3자가 서로의 손을 쥐어준다. 잡은 손을 아래위로 흔들면서 가격을 맞춰나간다. 깎고 버티고 다시 깎는 과정은 꽤 길게 진행되었다. 그러다가 도저히 가격이 안 맞으면 손을 놓고 돌아서기도 했다. 서로의 눈을 보고 체온을 나누며 진행하는 거래다보니 속이고 속을 일도 없었다.
나를 꽤 힘들게 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진 좀 찍을 만하면 어깨를 툭 치면서 차이를 마시러 가자고 졸랐다. 자기가 한 잔 내겠다는 것이었다. 그 눈빛이 얼마나 순수하고 절실한지 박절하게 거절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그때마다 따라갈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사람들 속에 있는 게 아니라 하늘에서 쏟아진 별들이나 진창 속에서 피어난 꽃들 속에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별이나 꽃들이 원하는 대로 함께 사진을 찍고 함께 웃었다.
그 녀석들이 나타난 건 소동이 좀 가라앉을 무렵이었다. 인파를 헤치며 천천히 등장한 두 녀석. 거뭇한 수염으로 성인을 가장했지만 스무 살도 안됐다는 걸 간파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 바닥에서 ‘노는 아이들’이 틀림없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카메라를 만져보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포즈를 취했다. 그마저 넉넉한 웃음으로 받아들이자 녀석들이 호의를 보이기 시작했다.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고 한 녀석은 춤을 추자고 졸라댔다.
마지막으로 나타난 동네의 '노는 아이들'./사진제공=이호준 여행작가
"What do you think about Kurdistan?"
나는 잠시 멍한 상태가 돼버리고 말았다. 지금까지 쓰던 말이 아닌 영어. 그리고 쿠르디스탄? 쿠르드족이 모여 사는 산악지역을 그렇게 부르지만, 녀석이 물은 건 '쿠르드인들의 나라'가 틀림없었다. 자신들 외에는 누구도 나라로 불러주지 않는 나라. 그 나라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 아이. 장난기 같은 건 없었다.
"I love Kurdistan."
나는 분명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촉! 귀젤"(매우 좋다, 훌륭하다, 예쁘다 등으로 감탄사 비슷하게 쓰이는 말) 같은 말로 장난스럽게 할 대답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건 내 진심이었다. 내 핏속에는 억압 받는 이들을 편들 수밖에 없는 DNA가 숙명적으로 존재하니까. 녀석의 얼굴이 물에 던져 넣은 물감처럼 풀어졌다. 그리고 거침없이 포옹을 해왔다. 마주 안은 몸이 용광로처럼 뜨거웠다. 아이의 등을 두드려주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이들의 소망이 꼭 이뤄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