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의 길위의 편지]쿠르드족 가축시장에서 만난 사람들

머니투데이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2018.07.07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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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타니치 가축시장./사진제공=이호준 여행작가보스타니치 가축시장./사진제공=이호준 여행작가


여행지에서 시장 찾아가기를 좋아하는 내 습관은 외국에 나가도 달라지지 않는다. 시장에 가야 비로소 그곳의 삶이 보이기 때문이다. 터키의 동쪽 끝 반에 갔을 때도 당연하다는 듯 시장부터 갔다. 그날 찾아간 곳은 일반 시장이 아니라 가축시장이었다. 반 지역은 목축이 주업이다. 그런 지역적 특징을 가장 잘 반영한 곳을 찾으려면 가축시장으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시장이 자리 잡은 장소는 허허벌판이었다. 그래도 활기가 넘쳤다. 곳곳에서 온 차와 속속 모여드는 사람들. 그리고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쏟아지는 소와 양.



시장 입구 노지에서는 양을 불법으로 도축하고 있었다. 공공도축장이 있지만 '길거리 도축'이 훨씬 싸기 때문에 늘 성업을 이룬다는 것이었다. 칼만 하나 들고 온 도축업자는 능숙한 솜씨로 양의 목을 따고 가죽을 분리하고 내장을 들어낸 뒤 고깃덩어리를 고객에게 건넸다. 그 모든 과정이 맨 땅에서 진행됐다. 시장에는 노인, 장년, 청년, 아이까지 있지만 여자는 없었다. 이슬람 율법을 고수하는 쿠르드인들은 물건을 파는 것은 물론 장을 보는 일까지 모두 남자의 몫이라고 한다.

시장바닥은 사정없이 질척거렸다. 얼었던 땅이 풀린 데다 소와 양의 배설물이 두툼하게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피할 수 없을 땐 편하게 받아들이는 수밖에. 가축 분뇨를 양탄자라도 되는 양 마구 밟고 다녔다. 오랜 세월 쌓이고 쌓인 배설물 역시 그 자체로 역사고 문화다. 누구는 이 시장이 1000년은 됐을 거라고 했다. 시장은 매일 열리는데 하루에 1000명 정도가 모인다. 100㎞ 떨어진 곳에서 양을 팔거나 사러오는 사람도 있었다. 양을 팔러온 사람도 사러온 사람도 급할 게 하나도 없다는 느긋한 표정이었다. 그렇다고 우리네 장날처럼 걸쭉한 술판이 벌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차이 한 잔 사서 마시며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게 전부였다.



양과 염소를 팔러 나온 농부들이 내 카메라 앞으로 몰려들었다./사진제공=이호준 여행작가양과 염소를 팔러 나온 농부들이 내 카메라 앞으로 몰려들었다./사진제공=이호준 여행작가
느닷없이 나타난 동양인은 그들에게 좋은 구경거리였다. 소를 끌고 온 할아버지는 고삐를 쥔 채, 양을 몰고 온 아저씨는 지팡이를 든 채 내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대화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하지라는 친구가 양 한 마리의 입을 벌려 이빨을 보여주더니 값이 떨어지는 양이라고 설명해줬다. 이빨이 거의 없는 늙은 양이기 때문이란다. 새끼는 9만원, 어미는 24만~25만 원, 이빨이 없는 늙은 양은 20만 원 정도에 거래된다.

가격을 흥정하는 장면도 재미있었다. 양을 살 사람이 나타나면 팔 사람과 손을 마주잡는다. 보통은 중개인인 제3자가 서로의 손을 쥐어준다. 잡은 손을 아래위로 흔들면서 가격을 맞춰나간다. 깎고 버티고 다시 깎는 과정은 꽤 길게 진행되었다. 그러다가 도저히 가격이 안 맞으면 손을 놓고 돌아서기도 했다. 서로의 눈을 보고 체온을 나누며 진행하는 거래다보니 속이고 속을 일도 없었다.


나를 꽤 힘들게 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진 좀 찍을 만하면 어깨를 툭 치면서 차이를 마시러 가자고 졸랐다. 자기가 한 잔 내겠다는 것이었다. 그 눈빛이 얼마나 순수하고 절실한지 박절하게 거절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그때마다 따라갈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사람들 속에 있는 게 아니라 하늘에서 쏟아진 별들이나 진창 속에서 피어난 꽃들 속에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별이나 꽃들이 원하는 대로 함께 사진을 찍고 함께 웃었다.

그 녀석들이 나타난 건 소동이 좀 가라앉을 무렵이었다. 인파를 헤치며 천천히 등장한 두 녀석. 거뭇한 수염으로 성인을 가장했지만 스무 살도 안됐다는 걸 간파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 바닥에서 ‘노는 아이들’이 틀림없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카메라를 만져보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포즈를 취했다. 그마저 넉넉한 웃음으로 받아들이자 녀석들이 호의를 보이기 시작했다.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고 한 녀석은 춤을 추자고 졸라댔다.

마지막으로 나타난 동네의 '노는 아이들'./사진제공=이호준 여행작가마지막으로 나타난 동네의 '노는 아이들'./사진제공=이호준 여행작가
한데, 지금까지 웃고 떠든 건 서막에 불과했다는 듯 뜻밖의 반전이 일어났다. 두 녀석 중 하나가 느닷없이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What do you think about Kurdistan?"

나는 잠시 멍한 상태가 돼버리고 말았다. 지금까지 쓰던 말이 아닌 영어. 그리고 쿠르디스탄? 쿠르드족이 모여 사는 산악지역을 그렇게 부르지만, 녀석이 물은 건 '쿠르드인들의 나라'가 틀림없었다. 자신들 외에는 누구도 나라로 불러주지 않는 나라. 그 나라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 아이. 장난기 같은 건 없었다.

"I love Kurdistan."

나는 분명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촉! 귀젤"(매우 좋다, 훌륭하다, 예쁘다 등으로 감탄사 비슷하게 쓰이는 말) 같은 말로 장난스럽게 할 대답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건 내 진심이었다. 내 핏속에는 억압 받는 이들을 편들 수밖에 없는 DNA가 숙명적으로 존재하니까. 녀석의 얼굴이 물에 던져 넣은 물감처럼 풀어졌다. 그리고 거침없이 포옹을 해왔다. 마주 안은 몸이 용광로처럼 뜨거웠다. 아이의 등을 두드려주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이들의 소망이 꼭 이뤄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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