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들 "일만 늘어난다"…'경찰 수사종결권'에 분통

머니투데이 한정수 , 백인성 , 송민경 기자 2018.06.21 10:54
글자크기

[the L] "경찰이 대충 수사하고 검찰에 떠넘길 수 있어"…"이제 수사 못한다는 말" 반발도

박상기 법무부 장관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21일 오전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문 서명식'에서 서명하고 있다. /사진=홍봉진 기자박상기 법무부 장관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21일 오전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문 서명식'에서 서명하고 있다. /사진=홍봉진 기자


21일 발표된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대해 일선 검사들은 불만을 터트렸다. 경찰에 1차적 수사종결권을 주되 불송치 결정을 했을 때 당사자가 이의신청을 하면 사건을 바로 검찰에 송치해야 한다는 합의문 조항 탓이다. 검사들의 업무 부담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다.

한 지방검찰청의 검사는 "경찰에 1차적 수사종결권을 준다는데 그것이 실무적으로 어떻게 운영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찰이 사건을 검찰에 넘기지 않겠다는 통지(불기소)를 한 때 사건 당사자가 이의신청을 할 수 있고, 이의신청을 받은 경찰은 지체없이 검찰에 사건을 송치해야 한다는 합의문 조항을 지적하며 "이렇게 되면 검찰의 업무부담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경찰이 열심히 수사를 하겠지만, 복잡하거나 부담이 되는 사건 등의 경우에는 대충 수사한 뒤 1차적으로 불기소 결정을 내리고 당사자의 이의신청을 통해 사건을 검찰에 떠넘기는 식으로 흘러가지 않을지 걱정이 된다"고 밝혔다.

경찰이 1차적 수사권을 갖도록 한 것을 놓고도 불만의 목소리도 컸다. 재경지검의 한 검사는 "검사의 1차 수사권과 수사를 지휘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는 것은 검사가 아예 수사를 할 수 없다는 이야기"라며 반발했다. 그는 "그간 국민들 입장에서는 선택권이 있었다. 경찰에서 자신의 사건을 수사하지 못하면 검찰에서 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었다"며 "그런데 이제는 경찰이 한번 본 것만 검찰이 하라는 것 아니냐. 검찰이 직접 할 수 있는 수사는 한정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수사건이 아닌 일반 사기 등 민생 관련 사건은 검찰에서 수사해 달라고 요구할 여지가 없어진 것"이라며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일이다. 과연 국민들이 반길 제도인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검사는 "앞으로는 연쇄살인과 같은 큰 사건이 발생해 합동수사단이 꾸려져도 검사가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이라며 "1차적 수사권도, 수사지휘권도 없기 때문에 관련 수사에서 배제될 것이 자명해 보인다"고 우려했다. 이어 "고소·고발 사건을 검사가 1차로 수사를 할 수 없게 되는 탓에 발생하는 부작용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경지검 한 부장검사는 "범죄 발생 시점으로부터 가까울 때가 수사의 골든타임"이라며 "만약 최초 수사 과정에서 사실관계가 왜곡되고 증거 수집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경우 시간이 지난 2차 수사과정에서 이를 바로잡기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반면 현행 제도와 달라지는 것이 특별히 없는 것 같다며 안도하는 의견도 있었다. 형사부 소속 한 검사는 "1차적 수사를 지휘할 수 있는 권한이 사라진 대신 송치 후 보완수사를 요구할 수 있기 때문에 크게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분위기가 이렇게 흘러가는 이상 수사권 조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며 "우려했던 것과 달리 검찰의 모든 권한을 내주는 식으로는 합의가 되지 않아 다행"이라고 했다.

이번 수사권 조정안에 검찰의 의견이 충실히 반영된 것인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재경지검의 한 검사는 "수사권 조정 논의가 진행될 때 검찰의 목소리가 충실히 반영되지 못했다는 '검찰패싱' 논란이 계속 있어 왔다"며 "이번 조정안을 만들 때 검찰 내부의 목소리를 충분히 듣고 반영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남아있는 한 검찰 내부의 불만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이날 오전 10시 정부서울청사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문' 관련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이어 이 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박상기 법무부 장관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의 합의문 서명식이 있었다.

합의문에는 경찰에 1차 수사권과 수사종결권을 부여하는 내용이 담겼다. 검찰은 사건 송치 전 수사지휘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됐지만 경찰이 불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송치하지 않은 결정이 부당하다고 판단할 경우 재수사를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또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송치한 경우에도 보완수사를 요구할 수 있게 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