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 "한달에 100만원에 버는데 난민소송에 200만원"

머니투데이 송민경 (변호사) 기자 2018.06.20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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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 [난민과 국민 사이…시험대 오른 대한민국]⑤난민소송에 돈·언어 문제…소송 비용 없어 가족 구금되기도

편집자주 2013년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 제정·시행. 정부는 인권 선진국으로 발돋음 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 후 5년 제주도에 들어온 난민을 인도주의적으로 포용해야 한다는 주장과 이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우려하는 시각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난민을 둘러싼 갈등과 해결은 결국 인권국가로서의 대한민국의 현재를 측정하는 바로미터가 될 전망이다.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서 난민 신청을 한 예멘인들을 대상으로 취업 설명회가 열리고 있다./사진=뉴스1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서 난민 신청을 한 예멘인들을 대상으로 취업 설명회가 열리고 있다./사진=뉴스1




#아내와 자녀 둘을 키우는 가장인 A씨는 난민 신청자다. 한 달에 버는 돈은 백만원 남짓. 이 돈으로는 4인 가족이 먹고 살기도 힘들다. 이 와중에 A씨는 난민소송까지 진행해야 했다. 소송은 가족이 한명씩 각각 다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신청비용만 200만원이 든다.





여기저기 돈을 빌리러 다녔지만 결국 돈을 구하지 못한 A씨는 우선 혼자만 소송을 진행했다. 그러다 보니 나머지 가족들은 미등록 체류자로 분류돼 끝내 아내가 구금되고 말았다. 남은 아이 2명도 돌볼 사람이 없어 함께 구금됐다.

20일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난민 신청자는 총 9942명에 달했다. 심사결정이 종료된 경우는 총 6041건이었고, 이 가운데 난민으로 인정받은 건 121건으로 2%에 불과했다. 여기엔 소송을 거쳐 난민 인정을 받은 경우까지 모두 포함된다.



난민 신청은 1차로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내고, 만약 거절당하면 2차로 법무부에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 만약 여기서도 기각되면 행정소송으로 가게 된다. 만약 법원이 난민으로 인정하라는 판결을 내린다면 법무부가 난민 인정 결정을 내려준다.

문제는 소송 과정에서 난민 신청자들이 비용과 언어 등의 문제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이 가장 먼저 지적하는 문제는 가족 단위 소송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난민소송은 개인 자격으로만 신청이 가능하다. A씨처럼 가족이 4명이면 이 4명이 모두 각각 소송을 해야 한다. 통상 행정소송 1건당 변호사가 받는 수임료는 사건의 내용에 따라 300만원에서 1000만원까지 다양하고, 아무리 간단한 경우라도 200만원 정도는 든다.


이필우 변호사는 “개인이 먼저 난민 신청을 한 뒤 불인정 결정이 나오면 다시 취소소송 또는 난민지위인정소송을 제기해야 한다”면서 “난민을 신청하는 사람이 소송비용을 부담할만한 돈이 있을 것라고 생각하기는 힘든 만큼 전담 공익법인 차원에서 지원하는 것 등이 실제적인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MT리포트] "한달에 100만원에 버는데 난민소송에 200만원"
소송 과정에서 통·번역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난민 소송은 면접조서 등에서 드러나는 난민 신청자의 진술이 가장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진술이 왜곡되거나 하지 않은 말이 들어가기도 한다. 난민 신청자는 본국의 언어만 사용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아 서류에 잘못 기재된 내용이 있어도 대개 본인은 알 수 없다.

진술의 신빙성은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재판 과정에서 난민 신청자의 말이 자주 바뀌면 재판에서 불리하게 작용한다. 문제는 통역 과정에서 이런 오해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김영주 난민인권센터 변호사는 "난민 소송에서는 일반 소송과 다르게 통역 과정 또는 언어 감각의 차이, 심리적인 혼란 등을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며 "재판 과정에서 난민 신청자에게 발언 기회를 충분히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난민 소송 과정에서 본국에 난민 신청 사실이 알려져 곤란해지는 경우도 있다. B씨는 정권의 부패와 독재 등을 알리는 활동을 하는 반정부 활동가로, 난민 신청 불인정 결정을 받은 뒤 소송을 제기했다. 여기서 B씨가 증거로 제출한 체포영장의 진위 여부가 쟁점이 됐다. 이에 대해 사실조회를 거치는 과정에서 B씨가 난민 신청을 했다는 사실과 그 신청 사유 등이 본국 정부에 알려졌다. B씨는 여권 연장 과정에서 본국 대사관으로부터 난민 신청을 한 것에 대해 비난하는 말을 듣고서야 이 사실을 알게 됐다.

이런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난민법 제17조는 난민 신청자의 인적사항 등의 공개를 금지하면서 신청 관련 정보도 출신국에 제공돼선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B씨의 사례처럼 실제로 준수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국법조인협회 공익인권센터의 박대영 변호사는 “우리나라의 난민 인정율은 낮은 수준인데, 이렇게 낮은 난민 인정율을 걱정하는 성숙한 사회가 돼야 한다”면서 “앞으로 재판 과정에서 난민들의 권리가 충분히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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