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고 지지고…폭력이 된 '페미니즘 백래시'

머니투데이 남궁민 기자 2018.06.2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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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서 페미니즘 현수막·벽보 훼손…혐오발언→폭력으로 번지는 양상

연세대학교 캠퍼스에서 발견된 총여학생회를 지지하는 내용의 현수막. 날카로운 물건에 의해 찢어져있다. /사진=온라인커뮤니티연세대학교 캠퍼스에서 발견된 총여학생회를 지지하는 내용의 현수막. 날카로운 물건에 의해 찢어져있다. /사진=온라인커뮤니티


페미니즘에 대한 혐오가 '폭력'으로 번지고 있다. 단순한 혐오 발언을 넘어 물리력 행사로 이어지는 분위기다. 최근 잇따르는 페미니즘 관련 벽보·게시물 훼손이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은 여성에 대한 폭넓은 증오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우려를 드러냈다.

지난 17일 한 대학생 익명커뮤니티에는 한 남학생이 총여학생회 관련 현수막을 커터칼로 찢었다는 목격담이 올라왔다. 해당 현수막은 그날 연세대학교 교정에서 발견됐다. 현수막은 예리한 칼로 아랫부분이 길게 찢어진 상태였다.



연세대에서는 현수막 뿐 아니라 대자보를 파손하는 사건도 잇따랐다. 최근 총여학생회의 사실상 해체를 골자로 한 '총여학생회 재개편 요구의 안'을 두고 학생투표를 한 이슈가 불거진 뒤다.

물리력을 동원한 이 같은 모습에 혐오범죄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학생들은 위협감을 토로했다. 대학생 박모씨(25)는 "칼로 베인 현수막을 보면서 소름 돋고 무서웠다"며 "지금은 현수막이지만, 만약 저런 말을 하면 내가 당할 수도 있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눈 부위가 불에 타 훼손된 신지예 당시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 벽보(위). 여러장의 서울시장 현수막 가운데 신 후보의 벽보가 사라져있다. /사진=뉴스1, 온라인커뮤니티눈 부위가 불에 타 훼손된 신지예 당시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 벽보(위). 여러장의 서울시장 현수막 가운데 신 후보의 벽보가 사라져있다. /사진=뉴스1, 온라인커뮤니티
지난 지방선거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터졌다. '페미니스트'를 강조했던 신지예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의 선거 벽보는 총 27개나 훼손됐다. 신 후보 사진의 눈을 불로 지지거나 도려내고 비닐을 찢는 수법이다. 특히 강남의 한 지역에서만 21곳이 훼손돼 조직적인 움직임의 결과일 가능성도 제기됐다. 녹색당은 성명을 통해 "(후보자)사진에 대해 욕설에 가까운 폭언까지 나오던 차에, 물리적 위협이 도를 넘었다"고 지적했다.

페미니즘 관련 내용을 담은 현수막이 훼손되어있다. /사진=온라인커뮤니티페미니즘 관련 내용을 담은 현수막이 훼손되어있다. /사진=온라인커뮤니티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Backlash·사회 변화에 반발해 발생하는 격렬한 반발이나 심리)가 폭력으로까지 번지고 있는 것. 이에 운동가 뿐 아니라 다수 여성들도 위협감을 느끼고 있다.

대학생 이모씨(24)는 "이런 분위기라면 총여학생회를 옹호하거나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것만으로도 위험한 일을 당할 수 있다고 느낀다"고 하소연했다. 직장인 A씨(32)는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페미니즘을 지지한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었지만, 요즘은 더 조심스럽다"며 "질시를 넘어 직접적인 위협을 받을 수 있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개인에 대한 공격을 넘어 여성 전반에 대한 증오를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한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특정 개인에 대한 반감보다 여성에 대한 폭넓은 증오를 드러낸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며 "일종의 혐오표현"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혐오범죄에 대한 처벌이 강한 서구에서는 형사처벌까지 이뤄지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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