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교육감 압승' 文정부 약될까 독될까

머니투데이 세종=문영재 기자 2018.06.15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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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곤 교육장관, 교육감선거 개표마감 직후 차관·실국장과 숙의

'진보교육감 압승' 文정부 약될까 독될까


6·13 교육감선거에서 진보 성향 후보가 대거 당선된 가운데 교육감과 정부 간 역학관계에도 적잖은 변화가 예상된다. 이번 선거에서 진보 후보는 전국 17곳의 시·도 교육감 가운데 14명이 당선됐다. 이는 역대 가장 많은 당선자를 배출했던 지난 2014년(13명) 때보다도 많다.

교육부는 향후 국정과제 추진 과정에 미칠 영향을 파악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교육정책 파트너인 시·도교육감은 유치원과 초·중·고교 정책권한 이양 등에 따라 위상이 한층 더 커진다. 김상곤 교육부 장관이 교육감선거 개표 마감 직후인 지난 14일 오후 박춘란 교육 차관, 실국장들과 만찬을 겸해 면담하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진보교육감들의 공약이나 교육정책에 대한 숙의가 이뤄졌을 것이란 관측이다. 전문가들은 정책을 추진할 때 교육감의 이해와 협조가 중요한만큼 정권과 궤를 같이하는 진보교육감의 대거 당선은 득이 될 수 있지만 선출직 교육감이 자신의 정치적 보폭을 넓히기 위해 차별성을 부각시킬 경우 오히려 갈등과 혼선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 '진보정권-진보교육감'…"文정부 교육정책 탄력" = 15일 교육계에 따르면 이번 선거 결과 '진보정권-진보교육감' 구조가 만들어지면서 현 정부의 교육정책이 한층 탄력을 받을 것이란 시각이 많다. 당장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교육감선거 결과에 대해 "경쟁논리를 배제하고 평등·인권 가치를 중요시하는 진보 교육정책이 탄력을 받게 됐다"고 평가했다.

특히 현 정부 주요 교육정책 가운데 하나인 자율형사립고(자사고)·외고 등의 일반고 전환이나 혁신학교 확대 정책은 가속페달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재선에 성공한 조희연 서울교육감 당선인은 14일 기자회견에서 자사고·외고의 일반고 전환, 혁신학교 확대를 자신의 핵심정책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자사고와 외고 문제는 양보할 수 없는 주제이며 내년부터 엄정한 평가를 통해 본래 취지대로 운영되지 않는 학교는 일반학교로 전환하겠다"고 강조했다. 다른 진보교육감들도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외고·자사고를 일반고로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혁신학교 정책도 확대될 전망이다. 혁신학교는 획일적인 교육커리큘럼에서 벗어나 창의적이고 주도적인 학습능력을 배양하기 위해 시도되는 새로운 형태의 학교다. 이재정 경기교육감은 "혁신학교를 확대해 2022년까지 모든 학교에 혁신학교 운영 원리를 적용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학생인권 정책 △휴일학원휴무제 △무자격 교장공모제 확대 △남북 해빙무드에 따른 남북 학생교류 등도 무리없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 '대입 정책·전교조 합법화' 충돌 가능성 = 진보교육감이 대거 입성했지만 특정 사안을 두고 현 정부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교조 합법화 문제나 대입정책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진보교육감들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절대평가제에 무게를 두고 있다. 수능을 아예 없애거나 난도를 크게 낮추고 학생부 중심으로 대입 전형을 운영하자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정부는 주요 대학에 수능 중심인 정시전형 확대를 요청하는 등 정시비율을 늘리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어 진
보교육감들이 대입정책에 목소리를 높일 경우 마찰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진보교육감들은 무상급식 확대와 교복·체육복비 지원 등 각종 '무상교육 시리즈'를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재원 조달과 분담 등을 놓고 중앙 정부와 대립이 예상된다.


전교조 법외노조 철회 문제와 노조 전임자 인정 등도 갈등의 뇌관이다. 이번 교육감선거 당선자 17명 가운데 10명이 전교조 위원장 또는 지부장을 지냈다. '보수텃밭'으로 불리는 울산에선 전교조 울산지부장을 역임한 노옥희 후보가 당선됐다. 교육계 관계자는 "진보교육감 당선인 가운데 일부는 정부 방침에 구애받지 않고 벌써부터 전교조 전임자 인정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앞으로 이를 둘러싼 갈등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취소 소송은 2심까지 전교조가 패소했고 현재 대법원에 올라가 있다.

김재철 한국교총 대변인은 "현 정부 교육정책에 대한 지지율이 높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중앙 정부가 교육공약 추진을 조정하거나 수정할 경우 교육감과의 갈등이나 혼선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장관보다 실권이 더 많은 교육감들이 정부와 대립각을 세울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학부모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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