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 '없는 주식도 판다' 무차입공매도의 어두운 그림자

머니투데이 전병윤 기자, 김훈남 기자, 배규민 기자, 조한송 기자 2018.06.11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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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비웃는 무차입 공매도] (종합)

편집자주 "무차입공매도는 불법이고 우리나라에선 불가능하다." 지난 4월 삼성증권 '유령주 배당사고' 이후 무차입공매도 논란에 대한 금융당국의 일관된 입장이다. 하지만 대다수 개인 투자자는 이 말을 믿지 않는다. 삼성증권 사례에서 112조원에 달하는 가짜 주식이 발행되고 시장에서 거래됐기 때문이다. 특히 존재하지 않는 주식을 증권사가 계좌에 '입고'하는 게 가능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최근 골드만삭스의 공매도 결제 불이행 사고 역시 주식을 빌리기 전 공매도 주문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국이 더 이상 부인만 하지 말고 무차입 공매도에 대한 분명한 입장정리와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주식 빌려줄게" 한마디에 없는 주식도 판다
[규제 비웃는 무차입공매도]①법으로 금지한 무차입공매도, 기관은 수시로 활용…사고 발생전까지는 드러나지 않아

/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


"삼성전자 1만주 빌려줄 수 있죠? 그러면 먼저 1만주 매도하겠습니다."



증권사를 비롯한 기관투자자는 이처럼 주식을 빌려올 수 있다는 '근거'만 있으면 실제 자기 계좌로 주식이 들어오기 전이라도 매도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갖고 있지도 않은 주식을 판 '무차입공매도'가 가능한 셈이다.

하지만 시스템상 이를 걸러내긴 어렵다. 상대방이 주식을 빌려주기로 구두 약속한 순간, 해당 주식을 계좌에 임의로 넣어주는 '가(假)입고'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계좌에 주식을 보유한 상태에서 매도했기 때문에 겉으론 적법한 차입공매도를 단행한 것처럼 보여 외부에서 적발할 수 없다.



최근 이 같은 허점이 드러난 대형 금융사고가 연이어 터졌다. 삼성증권 배당금 오류 지급 사고와 골드만삭스 서울지점의 공매도 주문 결제 미이행 사태가 그것이다.

삼성증권은 지난 4월 존재하지도 않은 112조원에 달하는 유령주식을 우리사주조합에 배당했고 직원 일부가 장중 주식을 대량 매도, 무차입 공매도 논란이 불거졌다.

지난달 30일에는 골드만삭스 서울지점이 300여개 종목에 대한 매매주문을 처리하면서 일부 주식에 대해 대차(주식을 빌리는)를 확정하지 않고 공매도 주문을 낸 것으로 드러났다. 논란만 무성한 무차입공매도가 현실로 입증된 첫 사례다.


기관투자자가 주식을 빌리기도 전에 매도부터 가능했던 건 전화든 메신저든 쌍방의 대화가 기록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약속 불이행시 책임소재가 명확해 구두 약속만으로도 이행력을 담보할 수 있어 가입고를 하더라도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한 증권사 매매부서 관계자는 "상대방이 주식을 빌려주기로 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아 사고가 나면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이 때문에 대부분 약속을 지켜 당일 모든 결제가 정상적으로 이뤄지는데 골드만삭스 서울지점처럼 결제 미이행으로 이어진 건 매우 드문 사례"라고 말했다.

이런 형태의 거래는 기관투자자 사이에선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 특정 주식을 단타 매매하기 위해 신속하게 공매도 하려는 수요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주식을 빌려 자신의 계좌에 들어오기까지의 시간을 기다릴 수 없어 먼저 공매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주식 현물과 선물의 미세한 가격차이를 활용해 수익을 내는 현·선물 차익거래시 코스피200지수 구성 종목을 한꺼번에 매도하는 과정에서도 공매도를 한다는 게 증권업계 설명이다.

한 기관 관계자는 "200개 종목 중 보유하고 있지 않은 주식을 매도하기 위해 다른 기관투자자에게 일일이 주식을 빌리려면 적어도 2시간 넘게 걸릴 것"이라며 "현·선물 차익거래는 신속하게 매매해야 성공하는데 가입고를 하지 않고 원칙대로 차입공매도를 하려면 차익거래시장은 고사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현·선물 차익거래 등 일부 불가피한 경우에 한해 제한적으로 '가입고'를 통한 공매도 주문을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기관투자자는 주식을 팔 때 매도 성격을 알리기 위해 몇 가지 체크해야 할 사안이 있는데 여기서도 무차입공매도 형태가 존재한다. 매도 주문시 △일반매도 △차입공매도 △기타공매도 등 3가지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일반매도로 표시하고 주문을 내면 시스템상 계좌에 해당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지 확인 절차를 밟고, 차입공매도로 표기하면 빌린 주식을 갖고 있는지 살핀다. 문제는 기타공매도인데 이 경우 매도 주문시 주식의 보유 유무를 따지지 않고 매도 주문이 즉시 나간다.

상당수 증권사는 기타공매도 주문을 막아 놓았지만 일부는 지금도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좀 더 공격적인 매매를 하는 증권사가 기타공매도로 먼저 매도 주문을 낸 뒤 주식을 빌리는 공매도를 실시하고 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연기금·자산운용사·외국인 등 기관투자자의 주식 계좌 내역을 주문 처리하는 증권사조차 파악할 수 없다는 점도 무차입공매도 공포감을 조성한다.

기관은 수탁회사(주로 은행)를 통해 주식 거래를 한다. 모든 주문 정보와 계좌 내역은 수탁사를 통해 관리되고 증권사는 단순 거래만 체결시켜주는 구조다. 대다수 기관은 자체 시스템상 수탁회사가 관리하는 계좌에 보유하고 있지 않은 주식을 매도할 수 없도록 금지했으나 외부에서 검증할 수 없는 구조여서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한 적발이 어렵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주식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당일 매도 후 매수하면 외부로 드러나지 않아 이런 매매를 종종 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공매도란 주가 하락을 예상한 투자자가 미리 주식을 판 뒤 나중에 주식을 사서 갚는 투자 방법이다. 예상대로 주가가 떨어지면 이익을 거둔다. 대다수 국가는 주식을 빌리지 않고 매도하는 무차입 공매도를 금지하고 있다.

전병윤 기자

골드만삭스 무차입 공매도 어떻게 이뤄졌나
[규제 비웃는 무차입공매도]②무차입공매도, 결제미이행 없인 적발 어려워

[MT리포트] '없는 주식도 판다' 무차입공매도의 어두운 그림자
골드만삭스 서울지점이 지난달 30일 낸 공매도 주문에 대해 결제 미이행 사태를 냈다. 결제일까지 20개 종목에 대한 결제를 이행하지 못한 것. 골드만삭스는 300여 종목에 대한 매매주문을 처리하면서 일부 주식에 대한 대차(대여)를 확정하지 않고 공매도 주문을 낸 것으로 드러났다. '무차입 공매도'를 했단 얘기다.

삼성증권 유령주 사태 이후 당국이 공매도 제도 개선안을 내놓은 지 일주일이 채 안 돼 또다시 무차입 공매도 의심사례가 발생했다. "현행 시스템상 무차입 공매도는 불가능하다"는 당국 주장이 무색해졌다.

골드만삭스는 사태 당일 대량주문을 짧은 시간 안에 처리하면서 일부 주식에 대한 공매도 절차를 어긴 것으로 알려졌다. 업무 편의를 우선한 관행이 증권사 자체 보고와 사후 적발에 초점을 맞춘 당국의 감시 기능을 비웃고 있다는 지적이다.

10일 증권업계와 금융당국에 따르면 골드만삭스가 지난달 30일 영국 런던 소재 계열사 골드만삭스 인터내셔널로부터 위탁받아 처리한 주문은 300여 종목, 수 백억원 어치다.

이 가운데 코스피 3종목, 코스닥 17종목에 대한 대차를 하지 않아 결제 미이행 사태를 냈다. 고객사 1명으로부터 받은 대량 주문을 일시에 처리하면서 주식 대차를 미리 확정·입고해야 하는 공매도 절차를 어겼다.

당국은 골드만삭스가 낸 300여 종목에 대한 분석을 통해 공매도 경위와 전체 규모, 무차입 공매도 여부 등을 파악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골드만삭스가 다수 종목에 대한 매매계약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일부 종목에서 결제가 이행되지 않았다"며 "전체 주문 경위를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골드만삭스의 무차입 공매도 정황이 드러나면서 시장 감시기능의 구멍이 재차 확인됐다. 현장에서 업무 편의를 위해 공매도 규정을 어겨도 결제일까지 주식 대차 및 결제만 이행하면 무차입 공매도가 가능하다는 점이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현행 무차입 공매도 감시규정은 거래일 당일 오후 1시까지 대차주식 입고 여부를 확인,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에 신고하도록 돼 있다.

공매도를 위해선 기관이나 개인으로부터 공매도할 주식을 빌려야 한다. 주문을 중개하는 증권사는 빌린 주식 입고 여부를 매일 오후 1시까지 보고하고 시장감시위원회는 미보고 증권사에 대해 제재에 착수한다. 하지만 장중에 이 같은 업무를 처리하기 어려워 증권사는 통상 공매도 전날 주식 대차 업무를 처리하는 게 일반적이다.

문제는 증시 변동성이 커질 때나 한꺼번에 대량 주문이 들어올 때처럼 '일반적이지 않은' 경우다. 딜러끼리 구두 혹은 메신저 대화만으로 주식 대차가 이뤄진 것으로 간주하고 계좌에 전산상으로 주식을 '가입고' 한다.

바꿔말하면 시장감시위원회 보고시간까지만 주식 대차업무를 마무리하면 공매도 주문을 먼저 낼 수 있다는 얘기다. 결제 미이행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 한 당국은 주식 대차 이행 여부를 확인하지 않기 때문에 무차입 공매도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게 증권업계 지적이다.

김훈남 기자

무차입공매도 차단…당국 안하나 vs 못하나
[규제 비웃는 무차입공매도]③내년 실시간 모니터링 시스템 도입…"사전 차단 현실적 불가능"

[MT리포트] '없는 주식도 판다' 무차입공매도의 어두운 그림자
삼성증권 배당사고에 이어 골드만삭스 공매도 미결제 사고까지 터지면서 무차입공매도를 시스템적으로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사전 차단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내년 상반기에 실시간 모니터링 시스템을 도입해 사후 점검과 처벌을 강화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시스템 도입 전까지 무차입 공매도가 공공연하게 이뤄질 것이라는 우려다.

금융감독원은 골드만삭스 인터내셔널이 주식 대차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매도 주문을 넣은 것과 관련, 단순한 착오인지 의도적인 '무차입 공매도' 인지를 조사하고 있다.

이번 건은 결제가 제때 이뤄지지 않아 외부로 드러나는 바람에 당국이 조사에 나섰지만, 무차입공매도는 적발조차 쉽지 않은 실정이다. 그동안 무수히 많은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무차입공매도의 꼬리가 최근에서야 잡힌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와 관련, 금융당국은 삼성증권 배당사고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 방안의 하나로 '주식잔고·매매 수량 모니터링 시스템'과 연계해 공매도 규제 위반을 신속히 적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내년 상반기까지 구축키로 했다.

지금은 투자자 주식을 신탁·보관기관에서 관리하면 증권사에서 공매도 관련 주식 차입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 시스템이 만들어지면 주식 보유잔고를 초과하는 매도주문 등 이상 거래에 대해 실시간 모니터링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모니터링이 이뤄진 후에도 무차입 공매도에 대한 완벽한 사전 차단은 어렵다는 게 당국의 입장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공매도 거래 전에 별도 시스템을 통해 차입 여부를 하나하나 먼저 확인하면 주문 속도가 너무 늦어져 이해관계자들에게 손해를 끼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전 차단이라는 것 자체가 이치에 맞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차입을 하지 않고 공매도를 하면 무차입 공매도가 되는데, 차입을 했다는 증거가 거짓인지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무차입 공매도를 '탈세'에 빗대어 "탈세는 분명 위법이지만 탈세를 사전에 막을 방법이 없는 것과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무차입 공매도를 사전에 막으려면 공매도 자체를 폐지하는 것 외에는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당국은 단기과열 종목의 주가급등락에 따른 시장혼란 방지와 시장 활력 제고 차원에서 공매도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무차입 공매도에 대한 논란이 거세지면서 당국은 내년 상반기로 예정된 '잔고·매매 모니터링 시스템' 도입 시기를 최대한 앞당긴다는 방침이다. 다만 시스템 도입 전까지는 장 종료 후에 주식 잔고 관리가 이뤄져 매매주문 시점에 수량 확인이 어렵다. 이 때문에 단타를 노린 무차입 공매도에 대한 적발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배규민 기자

무차입공매도, 사후 적발이 글로벌 스탠다드

[규제 비웃는 무차입공매도]④미국·유럽·일본 등도 금지…美, 시장 유동성 조성시 예외적 허용

[MT리포트] '없는 주식도 판다' 무차입공매도의 어두운 그림자
해외 주요국 역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차입 공매도는 허용하되 무차입 공매도는 전면 금지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원칙적으로 무차입 공매도를 금지하지만 증권사가 시장 조성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허용한다. 규제 방식은 사전적으로 차단하는 것보다 사후적으로 점검해 적발시 과징금을 부과하는 형태가 글로벌 스탠다드(국제 기준)로 인식된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주식시장이 흔들릴 때 무차입 공매도가 주가 하락 폭을 과도하게 증폭시킨다는 점 때문에 대부분 국가가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며 "무차입 공매도 규제 또는 시스템 측면에서 우리나라와 주요국간 차이점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무차입 공매도는 주요국보다 일찌감치 금지됐다. 2000년 우풍상호신용금고에서 미결제 사고가 발생하자 결제 불이행 문제를 우려해 전면 금지한 것이다. 우풍상호신용금고는 성도ENG 주식 35만 여주를 공매도했으나 이후 주가가 급등하면서 주식 매입에 실패, 대량 미결제 사태를 맞았다. 이번에 골드만삭스가 일시적인 미결제 사태라면 우풍 상호신용금고는 최종 결제에 실패해 부도로 이어졌다는 게 차이점이다.

미국, 유럽, 일본, 홍콩, 대만 등 주요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무차입 공매도를 금지했다. 무차입 공매도가 증시 하락의 주범으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주요국의 규제 시스템도 유사하다. 사전적으로 시스템을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각국 금융감독당국이 정기적인 검사에 나서 무차입 공매도가 이뤄졌는지를 확인하고 있다.

다만 예외적으로 무차입공매도를 허용하는 범위는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 가장 폭넓게 허용하는 게 미국이다. 미국은 공식적으로 등록된 금융투자업자의 공매도와 시장 유동성 조성을 위한 공매도, 해당 증권을 분명히 소유한 고객을 대신해 금융투자업자가 시행하는 공매도에 한해 무차입 공매도를 허용하고 있다.

조한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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