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광주형 일자리' 성공하려면?…정치권도 '고심'

머니투데이 이건희 기자 2018.06.17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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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길 먼 지역형 일자리] ②현행법상 '단체협약 구속력'에 우려…결국 해결책은 '사회적 대화'

편집자주 '지역형 일자리' 창출 실험이 광주광역시에서 시작됐다. 지역 생활비 수준에 기반한 임금체계가 핵심이다. 극심한 고용난을 해결하기 위한 발상의 전환이다. 하지만 지역별 근로계약의 효력인정 등 법적 뒷받침이 없는 탓에 지방자치단체 주도의 '합작법인'이라는 어정쩡한 첫발을 내딛었다. 지역기반형 일자리 사업의 성공을 위한 숙제를 점검했다.

김인구 LH 빛그린사업단장(왼쪽)이 4일 오전 전남 함평군 월야면 외치리 빛그린국가산업단지 1-1공구 현장에서 현대차 관계자들에게 자동차 공장 부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현대차 그룹은 지난달 31일 광주시가 조성을 추진하고 있는 빛그린산단 내 자동차 생산 합작법인에 투자의향서를 제출했고, 이날 현장실사단 9명을 빛그린산단에 파견했다. /사진=뉴스1김인구 LH 빛그린사업단장(왼쪽)이 4일 오전 전남 함평군 월야면 외치리 빛그린국가산업단지 1-1공구 현장에서 현대차 관계자들에게 자동차 공장 부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현대차 그룹은 지난달 31일 광주시가 조성을 추진하고 있는 빛그린산단 내 자동차 생산 합작법인에 투자의향서를 제출했고, 이날 현장실사단 9명을 빛그린산단에 파견했다. /사진=뉴스1


광주광역시가 노·사·민·정의 '사회적 대타협'을 기반으로 추진 중인 자동차공장 합작법인에 현대자동차가 투자를 검토하면서 이를 뒷받침하는 방안을 정치권이 고심하고 있다. 이 사업에 핵심이 되는 '광주형 일자리'는 문재인 대통령이 의원 시절인 2015년부터 관심을 기울인 모델이다.
4일 지역과 정치권 등에 따르면 광주시가 주체로 되는 자동차 완성차 공장 설립사업에 현대차가 '사업 참여 의향서'를 제출해 검토 중이다. 광주형 일자리는 노사민정의 합의를 기반으로 기존 업계 연봉보다 감소한 수준의 임금을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대신 일자리를 늘리자는 지역혁신 모델이다. 핵심의제로는 △적정임금 △적정노동시간 △노사책임경영 △원·하청관계개선을 품고 있다.

이 모델은 윤장현 현 광주시장이 2014년 지방선거 때 처음 제안한 노사정 상생의 개념이었다. 문 대통령도 대통령 당선 뒤 이를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4년 동안 추진된 사업이 눈에 띄는 결실을 맺진 못했다. 현대차가 이달 투자 참여 의향을 밝히면서 사업 추진에 속도가 붙게 됐다.



사업이 계획대로 추진된다면 이 공장에서 일할 정규직 노동자의 연봉은 현대차 평균 임금의 절반 수준인 4000만원이 된다. 주 40시간 근무도 이뤄진다. '광주 빛그린산단'에 지어질 공장은 약 1만2000명 이상의 고용을 창출할 전망이다.

'반값 연봉'이 현대차 노조의 반발을 샀다. 노조는 지난 1일 성명을 내고 "광주형 일자리는 단체협약 제40조·제41조에 따라 정규직 임금 수준을 하향 평준화하고 조합원들의 고용 불안을 초래할 것"이라며 현대차의 참여를 반대했다.



노동법의 현실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조합법) 제35조와 제36조에 따르면 일반적, 지역적 단체협약 효력확장 제도를 규정한다. 한 사업장의 과반수 근로자가 하나의 단체협약을 적용받으면 같은 사업장의 다른 근로자들에게 적용할 수 있도록 했다.

즉, 근로자들이 반값 임금을 감수하고 새 공장에 입사해도 새로 구성될 노조가 단체협약 내용을 달리 정하면 이를 따라야 하는 것이다. 상위법 우선 원칙에 따르면 근로관계는 △헌법 △관계법률 △단체협약 △취업규칙 △근로계약 순으로 적용된다.

일각에선 광주형 일자리 관련 근로자들이 맺는 개별 근로계약은 단체협약보다 우선 적용하는 특별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대의 목소리도 있다. 특별법을 만들어 개별 근로계약을 단체협약보다 상위에 둘 경우 향후 구성될 노조의 협상력을 무력화할 수 있다는 일부 법조 관계자의 시각도 존재한다.


이와 별개로 지역적 구속력을 산업·지역·업종에 따른 단체협약 구속력 확장으로 바꾸는 법안은 이미 국회에 발의됐다.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2016년 이른바 '산별교섭'을 보장하는 내용이 담긴 노동조합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산업·지역·업종에서 단체협약의 구속력을 부여했다. 다만 노동위원회가 그 내용을 '사회적 공익성'을 고려해 의결토록 했다.

정치권은 광주형 일자리의 성공 해법을 '사회적 대화'에서 찾았다. 사업을 이끄는 광주시도 노사 문제와 관련한 새로운 법을 추진하기보다 현행법 아래에서 대화를 통해 문제를 푼다는 입장이다. 광주시 관계자는 "노사민정 합의를 이룬 것처럼 앞으로도 사회적 대화를 계속 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28일 국회를 통과한 '경제사회노동노사정위원회법 개정안'도 '광주형 일자리'의 전국적인 확산을 도모하는 내용을 품고 있다.

지난해 10월19일 오전 광주시청 3층 중회의실에서 열린 지역노사민정 광주형 일자리 성공기원 정책협의회에서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당시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광주시 제공)  지난해 10월19일 오전 광주시청 3층 중회의실에서 열린 지역노사민정 광주형 일자리 성공기원 정책협의회에서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당시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광주시 제공)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대표발의해 지난달 28일 국회를 통과한 이 개정안은 경제사회노동노사정위를 경제사회노동위로 개편하고, 실질적인 사회적 대화기구를 구성하기 위해 마련됐다. 개정안 제20조1항에 따르면 경제사회노동위는 지역 내 경제·사회 주체와 지방자치단체 사이의 사회적 대화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다.

홍 원내대표도 광주형 일자리의 전망이 밝다고 보고 있다. 그는 지난달 17일 당 정책조정회의에서 "광주형 일자리 모델은 노사 상생과 지역맞춤형 일자리 모델로 새 정부가 주력하는 일자리 정책의 모범적 사례"라며 "지역경제를 활성화할 중요한 사업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부·여당은 광주형 일자리 혁신을 상생모델을 전국에 확산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윤장현 광주시장이 떠날 자리를 채울 주요 시장 후보자들도 현재 추진되는 사업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비판도 존재한다. 현대차 노조가 반대한 것 자체를 두고 사회적 대화가 유명무실해졌다는 지적이 나왔다. 또 현대차의 투자가 확정되기 전까지 긴장의 끈을 늦춰선 안 된다는 시선도 있다.

국내 산업 이슈에 정통한 한 국회의원은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의 통화에서 "광주형 일자리 사업의 성공 핵심은 사회적 대타협에 있다"며 "이번 사업 투자 검토를 두고도 현대차 노조가 반대 목소리를 냈는데 대화가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사실 기업이 이 사업의 주체가 돼 노조와 합의를 해서 '반값 연봉'을 실현했어야 한다"며 "현대차의 투자의향서도 아직 검토 수준이기에 확정될 때까지 상황을 주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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