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적자기업도 금리 0%로 수백억대 CB 발행

머니투데이 김도윤 기자 2018.06.01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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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닥 흔드는 벤처펀드]④코스닥벤처펀드 자금 넘쳐, 부실기업도 CB 마구발행

편집자주 모주 우선배정 특혜를 노린 수조원대 자금이 코스닥벤처펀드에 몰려들었지만 운용사들은 운용에 갈피를 못잡고 있다. 공모주식이나 메자닌(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채권)에 의무적으로 투자해야 혜택을 준다는 강제규정이 말썽이다. 투자할 곳은 마땅치 않은데 의무적으로 투자해야하니 부작용이 일어난다. 게다가 코스닥 벤처펀드를 활성화하기 위해 쥐어준 당근이 다른 운용사나 투자자에겐 역차별로 작용한다. 인위적인 시장개입이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면 이제라도 해법을 찾아야한다.

코스닥벤처펀드가 일부 자산을 무리하게 매수하고 있어 부실기업의 생명연장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코스닥기업 엘앤케이바이오 (8,750원 ▲220 +2.58%)는 지난 25일 60억원 규모의 CB(전환사채) 발행을 결정했다 이 CB의 표면 및 만기 이자율은 모두 0%다. 또 리픽싱(전환가액재조정) 요건은 80%로, 통상적인 수준이라 할 수 있는 70%보다 높았다. 리픽싱 80%는 CB 발행 이후 주가가 떨어지더라도 발행회사가 전환가액의 80%는 보장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리픽싱 비율이 높을수록 발행회사가 유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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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앤케이바이오는 2017년 5월에도 100억원 규모의 CB를 발행했는데, 그때는 만기이자율 2%, 리픽싱 70% 등 조건이 달랐다. 엘앤케이바이오는 지난해 영업손실 24억원을 기록하며 적자전환했다. 결국 실적도 나빠진 회사가 1년 만에 이자도 한 푼 주지 않고 주식 전환가격도 훨씬 유리한 조건으로 CB를 발행한 것이다.



이 같은 변화는 코스닥벤처펀드 때문이다. 회사가 발행한 CB를 코스닥벤처펀드가 받아간 것이다.

올해 1분기 영업손실 20억원으로 적자전환 한 아진산업 (3,895원 ▲55 +1.43%)도 지난 28일 운영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175억원 규모의 CB를 발행했다. 이 CB의 표면 및 만기 이자율은 0%, 리픽싱 요건은 75%다. 비디아이 (640원 ▼70 -9.86%)도 지난 18일 90억원 규모의 CB를 발행하면서 표면 및 만기 이자율을 모두 0%로 적용했다. 비디아이 역시 올해 1분기 적자전환했다. 양사의 CB 발행대상자에도 코스닥벤처펀드가 이름을 올렸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도 신용등급이 높거나 기술력이 뛰어나고 성장 가능성이 큰 유망 기업은 이자율 0%의 메자닌(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채권) 발행이 가능했다"면서도 "다만 최근에는 여러 면에서 문제가 있는 부실 기업도 코스닥벤처펀드에 힘입어 줄줄이 제로금리의 메자닌을 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코스닥벤처펀드 등장으로 메자닌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이 불일치하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물량을 확보하려는 펀드 간 경쟁이 치열하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중간에 증권사가 주관사로 끼지 않고 운용사와 발행사가 직접 만나 메자닌 발행을 결정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이러다 보니 당장 문을 닫아야 할 부실기업이 코스닥벤처펀드를 악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또 부실기업 투자가 늘어날수록 펀드 수익률에도 빨간불이 켜질 가능성이 높다.


한 코스닥 상장사 CFO(최고재무책임자)는 "코스닥벤처펀드에 천문학적인 자금이 몰리다 보니 자금이 급하지 않은 기업들까지 CB를 발행하는 사례가 있다"며 "제로금리 등 발행조건이 좋아서 우선 자금을 확보하고 보자는 심리가 강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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