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보다 더 벼랑 끝 전술'…부동산업자 같은 트럼프외교 美신뢰도↓

머니투데이 유희석 기자, 이해진 기자 2018.05.25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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➀ 부동산 계약파기 내용증명 같은 공개서한
➁ "우리 핵 더 강해" “마음 바뀌면 전화하라” 외교결례 표현
➂ 北성의 풍계리 폐쇄 확인 뒤 취소
➃ 文대통령 1박4일 회담 직후 일방 발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 (현지시간)워싱턴 백악관에서 경제성장, 규제완화, 소비자보호 관련 법안에 서명한 뒤 연설을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서한을 보내 6월12일 개최하기로 예정됐던 북미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했다.  © AFP=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 (현지시간)워싱턴 백악관에서 경제성장, 규제완화, 소비자보호 관련 법안에 서명한 뒤 연설을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서한을 보내 6월12일 개최하기로 예정됐던 북미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했다. © AFP=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다음 달 예정됐던 북미 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했다.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하면서 나름 성의를 보인지 불과 몇 시간 만에 회담 약속을 완전히 뒤집은 것이다. 취소 통보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개인에 보내는 공개서한 방식으로 이뤄졌으며, 외교적 결례 수준의 강한 표현이 들어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보다 더한 벼랑 끝 전술을 사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김 위원장에 보낸 공개서한에서 북미 정상회담 취소 이유로 "북한이 보여준 엄청난 분노와 공개적 적개심 때문"이라고 밝혔다. 앞서 북한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각각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겨냥해 '망발, 아둔, 사이비 우국지사, 얼뜨기' 등 막말을 쏟아내자 참지 않고 정면 대응에 나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이번 서한에서 "우리의 핵은 더 강력해서 절대 사용할 필요가 없기를 기도한다. 북한의 어리석은 행동에 대응할 준비가 됐다"는 등의 강한 표현을 사용했다. 또 "언젠가 당신을 만나길 고대한다"면서 추후 회담이 열릴 여지를 남겨두면서도 "마음을 바꾸면 주저 말고 전화나 편지를 보내라"고 전했다. 정상적인 외교 협상이라면 절대 사용될 수 없는 표현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담 취소 발표 시기도 미묘하다. 북한은 24일 오전 11시 미국·중국·러시아·영국·한국 출신의 다국적 취재단을 초청한 자리에서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했다. 김 위원장이 지난달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서 "5월 중 핵실험장을 폐쇄하고, 국제 사회에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킨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불과 10여 시간 만에 북미 정상회담 취소를 발표하면서,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의 의미도 퇴색됐다.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99.9% 확신한다던 문재인 대통령도 뒤통수를 맞은 격이 됐다. 문 대통령은 지난 22일 미국에서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북미 정상회담의 차질 없는 진행을 다짐했다. 하지만 1박 4일간의 미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지 하루 만에 트럼프 대통령이 입장을 급선회하면서 중재자 역할을 맡아온 문 대통령의 처지가 난처해졌다. 워싱턴포스트(WP)의 외교·안보 칼럼니스트 조시 로긴은 이날 "북미 정상회담 취소 사실을 문 대통령에게 미리 알리지 않은 것은 한미 간에 거리를 두게 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외신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결정에 대해 사업가적인 접근 방식이라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북한과의 협상에서 트럼프의 도박이 현실의 벽에 가로막혔다(hit reality check)'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직접 만나 지난 65년간 아무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내려는 도박을 시도했다"면서 "대담하고 가치가 있는 접근이었지만, 북미 정상회담 취소로 두 사람이 서로 얼마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지를 드러냈다"고 전했다.

NYT는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지도자가 소중한 자산을 놓고 흥정을 벌이는 부동산 개발업자인 것처럼 접근했다"면서 "세계에서 가장 잔인한 독재자인 김 위원장을 칭찬한 것도 이 같은 접근 방식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WP는 "미국이 북한과 리비아를 빗댄 것이 북한을 화나게 하였다"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펜스 부통령의 '리비아 발언'이 김 위원장을 회담장으로 이끌기 위한 '엄포성' 발언이었다 하더라도, 표현의 강도가 세고 자극적이라는 점에서 최악의 사례(worst example)를 선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충수를 뒀다는 직접적인 비판도 나왔다. 로긴 칼럼리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담 취소로 성공적인 외교를 이뤄낼 기회가 줄어들었다"며 "(한국 등) 동맹국에 부담을 주는 것은 물론 미국의 신뢰도가 하락하거나 역내 긴장이 고조되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란 핵협정 탈퇴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 취소까지, 출범 2년째인 트럼프 정권의 외교 정책에는 여전히 양보도, 예측가능성도, 분명한 계획도 없다"고 비판했다.

상원 외교위원회 소속의 로버트 메넨데스 의원(민주·뉴저지)도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회담에 성급하게 동의해놓고는 먼저 나가버리면서 미국을 (외교적으로) 더 약화시키고 고립시키게 됐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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