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南기자단 거부'로 대미 메시지…비핵화 '판'은 유지

머니투데이 박소연 기자 2018.05.22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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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북미회담 앞두고 협상력 높이기…한미정상회담 메시지, 향후 남북관계 중요 변수

윌 리플리 CNN 기자가 풍계리 핵시설 폐쇄 행사 취재를 위해 22일 북한 원산으로 가는 고려항공을 탑승하기위해 베이징공항을 통해 출국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사진=뉴스1윌 리플리 CNN 기자가 풍계리 핵시설 폐쇄 행사 취재를 위해 22일 북한 원산으로 가는 고려항공을 탑승하기위해 베이징공항을 통해 출국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사진=뉴스1


22일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현장을 취재하려던 우리 기자단의 방북이 북한의 명단 접수 거부로 끝내 무산됐다. 북한은 대남 강경공세를 이어갔으나, 핵실험장 폐기는 예정대로 진행하면서 비핵화 대화의 '판'을 완전히 깨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을 제외한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등 4개국 외신기자단은 이날 오전 9시48분(현지시간)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서 고려항공기를 통해 원산으로 출발했다. 우리 정부는 전날에 이어 이날 오전 9시(한국시간) 판문점 연락채널이 개시된 후 우리 취재진 명단을 북측에 통보하려 했으나 북측이 거부해 우리 취재진의 이날 원산행은 무산됐다.

앞서 북측은 지난 12일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의식을 23~25일 진행하겠다고 공식 발표하면서 한국·중국·미국·러시아·영국 기자단을 초청했다. 이어 15일 우리측에 남측 1개 통신사와 1개 방송사 기자를 4명씩 초청한다고 통지했다. 그러나 북측은 지난 16일 남북고위급회담을 무기연기킨 이후 18일부터 이날까지 우리측의 풍계리 취재진 명단 접수를 받지 않았다.



우리 기자단은 베이징 인근에서 대기하는 방안도 고려했으나, 북한의 전용 항공기가 이날 원산으로 떠난 상황에서 우리측 기자단이 향후 베이징을 통해 방북할 수 있는 가능성은 낮다는 정부의 판단에 따라 일단 귀환키로 했다. 정부 당국자는 "정부가 열심히 노력했으나 안타깝다"며 "(베이징에) 우리 취재진이 더 있을 이유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 국제기자단이 22일 오전 중국 베이징 서우두 공항 고려항공 카운터에서 발권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사진=뉴스1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 국제기자단이 22일 오전 중국 베이징 서우두 공항 고려항공 카운터에서 발권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사진=뉴스1
정부는 이날 조명균 통일부 장관 명의의 입장문을 내고 우리측 기자단의 방북이 이뤄지지 못한 데 대해 "안타깝고 유감"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남북 간 모든 합의들을 반드시 이행하는 것이 '판문점선언'의 취지인 점을 지적하면서도 "북측이 공약한 비핵화의 초기조치인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가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는 점은 주목하며, 북한의 이번 조치가 북미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북측이 18일 우리측 기자단의 명단 접수를 거부하면서 한때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가 지연되거나 취소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으나 이날 외신기자들의 방북은 예정대로 진행되자 정부는 내심 안도하는 분위기다. 북한이 남북관계 냉각 기류와 별개로 국제사회와 약속한 비핵화 조치는 지키겠다는 의미로 읽히기 떄문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 교수는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행사를 취소했다면 문제가 되지만 우리만 빠지고 외신 기자단이 갔다면 대세에 큰 영향은 없다"며 "북미정상회담도 차질이 없으리라 본다. 김정은이 비핵화를 안 할 거면 핵실험장을 폭파할 필요가 없다"고 평가했다.

북측이 우리 기자단의 풍계리 핵실험장 취재 배제라는 강경 카드까지 꺼낸 것은 다음달로 예정된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대미협상력을 높이려는 의도가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미 간 조율된 비핵화 방법과 의제에 돌발변수가 생기지 않도록 남북관계를 활용해 미국의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 국제기자단이 22일 오전 중국 베이징 서우두 공항 고려항공 카운터에서 발권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사진=뉴스1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 국제기자단이 22일 오전 중국 베이징 서우두 공항 고려항공 카운터에서 발권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사진=뉴스1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북미정상회담 전까지 미국을 긴장시키게 하는 소재로 북한이 남북관계를 활용하고 있다"며 "폼페이오와 김정은이 '만족한 합의'를 이뤘다고 한 것을 봤을 때 큰 틀의 합의는 이룬 것으로 보이는데 여기서 북한에 불리한 변수가 생기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북한 매체에서 연일 판문점선언의 역사적 의의를 강조하는 것을 볼 때 남북관계의 판을 깨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맥스선더 훈련이나 탈북 종업원 문제 등은 새로운 게 아니라 이미 북한이 알고 있었던 일"이라며 "급격한 북한의 비핵화 포기 등 노선변경으로 인한 내부 반발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북한이 약한 고리인 남측을 활용해 강경입장을 표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남북관계 냉각 국면의 해소 여부는 23일 새벽(한국시간) 예정된 한미정상회담에 달려있다는 분석이다. 한미 정상이 북한을 달랠 만한 메시지를 내면서 성의를 보인다면 북측도 이를 명분삼아 남북관계 냉각 기류를 서서히 접을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선 북한이 23일 오후까지 우리측 기자단의 풍계리 핵실험장 방북 취재를 허용할 가능성이 열려있으며, 육로 등을 통해 단시간 내에 풍계리에 접근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북미정상회담도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모두 정치적 사활을 걸고 있단 점에서 예정대로 열릴 것으로 보인다.

다만 지난 16일부터 이어진 북한의 대남 강경 공세로 문재인 정부로서는 한반도 평화정착을 이끌어가는 정책 추진력에 다소 제동이 걸렸다. 올들어 상승세를 보이다 4·27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극대화된 대북 신뢰도도 다시금 떨어지고 있어 향후 정부의 정책 추진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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