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데뷔 50주년 기념 공연을 펼친 '가왕' 조용필은 추억에 기대지 않고 오늘의 무대를 통해 살아있는 전설의 힘을 보여줬다. 그는 첨단 장비와 녹슬지 않은 절창으로 '신인 가왕'으로 다시 태어났다. /사진제공=조용필 50주년 추진위원회
12일 서울 잠실 올림픽 주 경기장에서 열린 데뷔 50주년 공연 ‘땡스 투 유’(Thanks to you)에서 조용필은 추억을 소환하거나 과거 영광에 기대기는커녕, ‘나의 현재를 보라’고 강력하게 주문했다.
어떤 무대에서도 말미에 등장하는 ‘여행을 떠나요’를 첫 곡으로 내세우는 파격을 선보인 조용필은 앙코르 마지막 곡 역시 ‘바운스’를 택해 흥겹고 역동적인 ‘신인’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조용필은 선곡에 어려움을 겪은 일화를 “모든 곡을 다 부르려면 3일 걸린다”는 농담으로 대신했다. 그의 선곡은 배치에서 남달랐다. 장조 풍의 곡들은 무대 시작과 끝 부분에 배치하고 단조 풍의 노래들은 중간 사이에 배치해 재미→감동→재미 순으로 엮었다. 50주년을 애절함이 아닌 기쁨으로 승화하려는 의도로 비쳤다.
'가왕' 조용필은 12일 데뷔 50주년 기념공연에서 '돌아와요 부산항에' 등 '뽕끼' 가득한 선율을 어쿠스틱 기타로 편곡해 들려줬다. 이날 무대는 '파격의 연속'이었다. /사진제공=조용필 50주년 추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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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룡 공연 총감독은 “키네시스라고 불리는 장비를 이용해 극의 집중도를 높이는 전략”이라며 “관객은 잘 모르지만, 신마다 (스크린이) 커브와 평면으로 바뀌기도 하고 때론 조명이 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형형색색 조명은 눈이 부실만큼 아름다웠다. 빛 속의 비는 그 자체로 조명의 한 부분이었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에서 조용필을 중심으로 번지는 반사 조명 내 빗줄기들이 이토록 감동적인 배경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여실히 증명했다. 이렇게 화려하고 예쁜 첨단 스크린과 조명으로 엮은 기술 무대를 본 건 조용필과 빅뱅 무대가 전부일 정도였다.
온종일 가늘지만 쉬지 않고 내린 빗줄기 때문에 '가왕'도 약간의 곤욕을 치러야 했다. 초반 5곡을 부를 때까지 조용필은 중저음에서 흔들렸다. 지난 2003년 35주년 콘서트에서도 비 때문에 망가진 모니터로 간신히 노래를 불러야 했던 기억이 재현되는 듯했으나, ‘어제 오늘 그리고’부터 중심을 잡기 시작했다.
조용필의 파격은 공연 중간 쉴 새 없이 터져나왔다. ‘돌아와요 부산항에’, ‘잊혀진 사랑’ 같은 ‘뽕끼’ 가득한 노래를 신 나는 밴드 음향에 맞추지 않고 어쿠스틱 기타와 피아노 한 대로 소화하는 ‘신선함’을 선보였다. 자신의 50년 음악 활동을 지켜준 팬들을 위해 ‘한오백년’ 등 전통 가요를 부르는 데에도 인색하지 않았다.
가늘지만 하루종일 내린 비로 공연 관람이 불편했지만, 4만 5000명 관객은 '가왕'의 절창을 함께 따라부르며 데뷔 50주년 공연에 집중했다. /사진제공=조용필 50주년 추진위원회
‘그대 슬픈 눈에 어리는~’(‘슬픈 베아트리체’ 중)하며 슬픈 듯 그렇지 않은 건조한 애상의 표현력을, 명료한 발음 뒤에 내뱉는 아찔한 호흡을 어찌 이성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어제’를 뒤로 한 ‘오늘’의 조용필은 50년 만에 다시 태어난 ‘청춘의 아이콘’ 같았다. ‘오빠’라는 칭호가 여전히 유효한, 첨단 기술 무대로 현재의 시간을 즐기는, 그러면서 50년간 매일 진화하는 뮤지션으로 그는 다시 50년을 준비하고 있는 듯했다.
마지막 곡 ‘바운스’를 듣고 ‘신인 가왕’과 헤어지는 순간, 뒤늦게 알아챘다. 비를 맞은 손이 퉁퉁 불어 있었다는 걸. 가요계 살아있는 전설이 지난 반세기처럼 앞으로도 고통과 슬픔의 시간을 위로해주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