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의 길위의 편지]지중해의 도시 안탈리아를 가다

머니투데이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2018.05.12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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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펜도스 원형극장/사진제공=이호준 여행작가아스펜도스 원형극장/사진제공=이호준 여행작가


지난주에는 여행자로서 무척 가슴 아픈 뉴스가 있었다. 터키 지중해 연안의 휴양지 안탈리아 인근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한국인 4명이 숨졌다는 소식이었다. 60~70대 한국인 부부 8명이 여행을 하던 중이었다고 한다. 요즘은 렌터카를 이용해서 자유여행을 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렌터카 여행은 장단점이 극명하게 엇갈린다.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낯선 곳을 운전해야 한다는 점은 불안요소일 수밖에 없다.



이 사고를 계기로 안탈리아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서 기억을 더듬어 본다. 안탈리아는 터키의 남부 지중해 연안의 도시로 상주인구가 100만 명이 조금 넘는다. 하지만 여름철에는 인구가 크게 늘어난다. 유럽 등지에서 휴가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몰려들기 때문이다. 코발트색의 바다, 연중 300일 이상 맑은 날씨, 부드러운 백사장 등이 관광객과 여행자들을 불러 모은다. 겨울에도 기온이 크게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찾는다. 국내 축구단의 동계훈련지로도 알려져 있다.

안탈리아는 BC 2세기 페르가몬(Pergamon) 왕국 시대에 건설된 도시다. 페르가몬 왕국의 왕이었던 아탈로스 2세의 "땅위에 천국을 건설하라"는 명령에 따라 건설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BC133년 로마에 항복한데 이어 비잔틴·몽골·베네치아·제노바 등에게 지배당했으며, 15세기에 투르크 제국으로 편입되었다.



특히 안탈리아 인근에는 로마시대 유적이 많다. 그중에서도 내 기억에 특별하게 남은 곳은 아스펜도스다. 안탈리아에서 동쪽으로 47㎞ 떨어진 이곳 역시 고대 유적들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조그만 마을일뿐이지만 한 때 항구도시 시데와 상권을 놓고 우열을 겨뤘을 정도로 번영을 이뤘다. 유적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원형극장이었다. 화려했던 도시는 사라졌지만 이 거대한 극장은 거의 완벽하게 보존돼 있어서 세계 각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이 극장은 '명상록'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161~180년 재위)를 위해 만든 것으로, 최대 2만 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 객석과 무대, 배우 대기실 등이 완전한 상태로 보존돼 있다. 객석의 상단부는 그리스 전통 건축기법에 따라 언덕을 이용해 지어졌다. 객석은 상단 21열, 하단 20열로 이뤄졌으며 맨 위층에는 회랑이 있다. 귀빈석은 아래쪽 객석 양 끝에 따로 마련돼 있는데, 그 이유는 무대 건물에서 직접 들어갈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원형극장의 맨 꼭대기에 있는 회랑/사진제공=이호준 여행작가원형극장의 맨 꼭대기에 있는 회랑/사진제공=이호준 여행작가
이 원형극장은 밖에서 봐도 엄청나게 크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웅장하다. 무대의 벽은 이오니아 양식과 코린트 양식이 혼합된 기둥으로 장식돼 있다. 객석 쪽에는 58개의 구멍이 있는데 이곳에 기둥을 박고 천막을 쳐서 그늘을 만들었다고 한다. 요즘으로 치면 개폐식 지붕을 설치해서 햇볕이나 비를 피했던 셈이다. 2000년 가까이 된 그 옛날에 그런 설비를 했다고 생각하면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객석에서 마주보이는 무대는 높이 25m, 길이 110m의 벽으로 이뤄져 있다.


무대에는 다섯 개의 문이 있는데 중앙 문으로는 연극 감독관이 드나들었다고 한다. 그 아래로 난 작은 문들로는 검투사와 싸우는 맹수가 드나들었다. 생각해 보면 죽음을 향해 걸어 들어가는 문이었다. 그 피의 향연을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과, 운명적으로 피를 흘려야 하는 생명 사이에는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여행을 하다보면 복잡한 생각이 교차하기 마련이다.

무대에는 음향효과를 위해 나무 지붕이 드리워져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 극장 역시 긴 세월을 버텨오면서 우여곡절과 시련이 있었다. 비잔티움 제국 시대에는 교회로 개조된 적이 있었고 셀주크투르크 때에는 실크로드를 오가던 카라반(대상)의 숙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13세기에는 술탄(알라딘 케이쿠바드 1세)의 별장으로 쓰였다.

지금도 여름 시즌엔 오페라 재즈페스티벌이 열리는데, 설계가 얼마나 잘 돼 있는지 마이크를 설치하지 않아도 객석 어디서든지 잘 들린다고 한다. 객석으로 올라가는 길은 무척 가팔랐다. 꼭대기까지 기다시피 올라갔다. 맨 위에서는 무대 쪽 사람들의 모습이 인형처럼 조그맣게 보였다. 거대한 규모에 감탄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무대 한 가운데에 서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 이럴 수가. 그 먼 곳에서 부르는 노랫소리가 똑똑하게 귀에 들어왔다. 한 마디로 설계의 승리였다.

꽤 오래 전에 다녀왔지만, 안탈리아와 아스펜도스는 여전히 마음속에 남아있는 곳이다. 이번에 참사를 당한 분들도 이곳을 다녀오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세상 모든 여행자들의 안전을 기원한다.

[이호준의 길위의 편지]지중해의 도시 안탈리아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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