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손 댄 '드루킹 태블릿'…'최순실 태블릿' 데자뷰

머니투데이 김종훈 기자 2018.04.24 17:15
글자크기

[the L] 태블릿PC 전원 켜고 파일 열람·조작했다면 증거능력 상실할 수도

24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느릅나무 출판사 출입구가 잠겨 있다./ 사진=뉴스124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느릅나무 출판사 출입구가 잠겨 있다./ 사진=뉴스1


매크로(반복작업) 프로그램을 사용해 네이버 댓글 추천 수를 조작한 혐의를 받는 이른바 '드루킹 일당'의 사건에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같은 태블릿PC의 증거능력 논란이 불거질지 관심이 쏠린다. 언론사 기자가 드루킹으로 불린 김모씨의 사무실에서 태블릿PC를 가져가면서다.

24일 경찰과 해당 언론사의 해명에 따르면 한 방송사의 A기자는 지난 18일 경기도 파주 느릅나무 출판사 사무실에 들어가 현장에 있던 태블릿PC와 휴대전화, USB(이동식 저장장치)를 가져갔다. 이곳은 드루킹 김모씨가 이끌던 '경제적공진화모임'(경공모)이 주로 활동하던 장소다.



이 기기들의 주인이 누구인지, 안에 어떤 내용의 파일이 담겨져 있는지에 따라 드루킹 김씨와 느릅나무 출판사의 자금 흐름, '윗선'의 댓글작업 지시 여부 등에 대한 수사방향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재판에서도 주요 증거로 작용할 수 있다.

해당 언론사는 A기자가 물건들을 다시 사무실에 가져다 놨다고 해명했지만, 이미 증거능력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증거로서의 무결성이 훼손됐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태블릿PC나 USB 같은 전자기기에 저장된 파일을 증거로 사용하려면 크게 3가지 단계를 거쳐야 한다. 먼저 수사기관은 특수장비를 사용해 전자기기 내 저장된 파일을 그대로 복사, 추출한다. 추출된 파일은 인쇄본 형태로 법원에 제출된다. 이후 인쇄본과 파일 원본이 일치한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해시값' 확인을 거친다.

해시값은 파일마다 부여되는 고유한 값으로, 누군가 파일 내용을 조작하면 해시값도 변경된다. 이 때문에 해시값은 동일한 파일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일종의 '지문'으로 활용된다.

만약 기자가 태블릿PC나 USB 내부 파일을 열람·조작했다면 해당 파일의 해시값이 변경됐을 수 있다. 특히 태블릿PC의 경우 전원을 켜는 것만으로도 일부 파일의 해시값이 변경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이유로 검찰은 최씨의 태블릿PC를 법정에서 검증할 때 전원을 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었다.


해시값이 변경된 파일은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게 대법원의 판례다. 따라서 기자가 열람한 파일은 증거능력을 상실하게 될 공산이 크다. 태블릿PC 기기 자체의 증거능력을 의심받을 수도 있다. 태블릿PC가 작동하면서 자동적으로 여러 파일이 생성, 변경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 무결성이 훼손됐으므로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이 가능하다.

해당 기자가 태블릿PC를 입수한 경위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최씨 사건에서 JTBC 기자는 더블루K 사무실에서 주인 허락없이 태블릿PC를 꺼내갔다. 재판에서 최씨 측은 태블릿PC는 절도품에 해당한다며 적법한 증거로 인정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더블루K 사무실은 완전히 버려진 상태였으며 기자가 더블루K 관계자는 아니지만 건물관리인의 출입 허락을 받았다는 점을 들어 태블릿PC의 증거능력을 인정했다.

이번 드루킹 사건에서도 유사한 논쟁이 벌어질 수 있다. 그러나 최씨 사건의 경우와는 다른 점이 많아 결론을 예단하긴 어렵다. 무엇보다 건물관리인의 출입 허락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담당 재판부가 문제의 태블릿PC를 증거로 인정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공익과 침해될 수 있는 사익을 비교한 뒤 판단할 것"라고 말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