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통화 거래사이트를 조사하겠습니다"

머니투데이 강상규 소장 2018.04.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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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재무학]<215>뉴욕주 법무장관 질의서…안전한 거래사이트 고르는 기준

편집자주 주식시장 참여자들의 비이성적 행태를 알면 초과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들 합니다.

"가상통화 거래사이트를 조사하겠습니다"


“당신이 이용하는 가상통화 거래사이트는 얼마나 안전합니까?”

지난 17일 미국 뉴욕주 에릭 슈나이더먼(Eric Schneiderman) 법무부 장관은 가상통화 시장의 건전성(integrity) 조사에 착수한다며 13곳의 주요 거래사이트에 관련 질의서를 발송했습니다.

뉴욕주 법무부 장관이 보낸 질의서는 거래사이트의 △소유 및 지배구조 △운영 및 수수료 △거래 규정 및 절차 △운영 중단 및 거래 정지 △내부통제 △정보보호 및 자금세탁방지 △고객자산 보호 안전장치 등 총 7개 항목에 대해 구체적인 사항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해당 거래사이트는 미국인을 대상으로 가상통화 매매 중개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형 거래사이트들입니다. 미국 최대 거래사이트인 코인베이스(Coinbase)는 물론, 홍콩의 비트피넥스(Bitfinex), 일본의 비트플라이어(bitFlyer), 중국의 바이넌스(Binance), 후오비(Huobi), 유럽의 비트스탬프(Bitstamp) 등이 포함됐습니다.

그런데 뉴욕주 법무부 장관의 조사 대상에서 한국의 빗썸이나 업비트는 빠져 있습니다. 국내 가상통화 거래규모가 전 세계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미국에서 거래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죠.



슈나이더먼 뉴욕주 법무부 장관은 투자자들이 가상통화 거래사이트의 공정성, 건성성, 안전성을 평가할 수 있는 기본적인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하다며 거래사이트 조사 근거를 밝혔습니다. 한마디로 어느 거래사이트가 안전한지 위험한지 모른 채 이용하고 있다는 거죠.

그리고 이번 조사로 거래사이트가 좀 더 책임감 있고 투명해지는 효과를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사람들은 가상통화 투자가 위험하다고 말합니다. 가격 변동성이 너무 심해 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지적합니다. 예를 들어 비트코인 가격은 지난해 12월 1만9000달러까지 치솟았지만 현재는 8000달러대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4개월여 만에 약 60% 손실을 본 것입니다.


여기에 가상통화 거래사이트 자체의 신뢰성 문제도 한 몫을 더합니다. 현재 전 세계에 190여개에 달하는 거래사이트가 운영 중인데 거의 대부분이 아무런 법적 제도나 정부의 규제 없이 운영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게다가 거래사이트가 해킹을 당하거나 코인 도난·분실사고가 났을 때 거래사이트가 고객에게 피해보상을 해 줄 법적 의무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2014년 2월 당시 세계 최대 거래사이트인 마운트곡스(Mt. Gox)에서 해킹 사고가 냈는데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피해자 보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태입니다.

수 백여 개가 난립한 거래사이트들 사이에도 분명 차별성이 존재합니다. 어느 거래사이트는 특별히 더 위험한 곳이 있지요. 그런데 문제는 투자자들이 관련 정보를 충분히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그 이유는 거래사이트가 중요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를 강제할 법규도 없고요. 물론 거래사이트를 감시·감독할 정부기관도 존재하질 않습니다.

이런 규제와 감독의 사각지대에서 가상통화 시장은 폭풍 성장했습니다. 거래사이트는 우후죽순 생겨나 현재 전 세계적으로 190여 곳이 운영 중이고 수천만~수억명의 사람들이 가상통화를 거래하고 있습니다.

적절한 규제와 감독이 없다보니 거래사이트의 불공정하고 불투명한 행위나 코인 분실도난, 해킹 사고로부터 투자자를 보호해줄 장치가 미흡한 상태입니다. 투자자들은 거래사이트가 매매 봇(bot)을 사용해 자전거래를 일삼고 거래량을 부풀리고 시세를 조작한다고 의심하지만 그 사실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통화경제학저널(Journal of Monetary Economics) 1월호에 실린 ‘비트코인 생태계에서의 가격조작’(Price Manipulation in the Bitcoin Ecosystem) 논문은 자전거래로 인한 비트코인 시세조작이 있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2013년 9월말~11월말 2달간 비트코인 가격이 150달러에서 1000달러 이상으로 급등했을 때 누군가 ‘마르커스’(Markus)와 ‘윌리’(Willy) 계정으로 시세를 조작 했다고 논문은 지적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뉴욕주 법무부가 투자자 보호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글로벌 대형 거래사이트 13곳에 대해 7개 항목에 걸쳐 건전성을 비교조사하고 그 결과를 공개함으로써 투자자들이 보다 안전하고 건전한 거래사이트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겁니다. 한마디로 위험한 거래사이트를 골라내겠다는 것이지요.

뉴욕주 법무부의 조사 결과가 발표되면 13곳 거래사이트의 건전성 정도를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빗썸이나 업비트 등 국내 거래사이트는 조사대상에서 빠져 있어 국내 투자자들은 이들의 건정성 상태를 비교·파악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의 법무부가 가상통화 시장을 보는 시각은 극명하게 다릅니다. 지난 1월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가상통화 거래사이트 폐쇄를 목표로 한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발표해 시장에 커다란 충격을 던져 줬습니다.

같은 달 15일 머니투데이가 단독 입수한 법무부의 '가상통화 거래 금지 검토 필요성' 제하 문건에는 "선량한 국민이 사행성 가상통화 사기 및 투기에 빠지지 않게 하고, 기존 투자자들이 그곳에서 빠져나오도록 하기 위해 가상통화 위험성을 경고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 적혀있습니다.

이어 "이러한 자료를 수회 배포해 선량한 국민들이 사행적 투기판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시간을 부여해 연착륙하도록 한 후 거래 금지 입법을 마련하는 방안이 타당하다"고 적시돼 있고요. 거듭된 경고를 통해 가상통화 시장의 과열을 식히고 투자자들의 이탈을 촉진한 뒤 가상통화 거래사이트 폐쇄 등의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리고 금융당국은 가상통화 시장은 자신들의 관할이 아니라며 일찌감치 발을 빼버렸습니다.

미국 뉴욕주의 법무부와 재무부가 가상통화 시장의 건전성을 향상하고 투자자를 보호하려는 시각을 견지한 반면, 한국 정부는 '폐쇄'와 '수수방관'의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에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의 이석우 대표는 13일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주최로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정보통신망 정보보호 컨퍼런스(NetSec-KR)'에 기조연설자로 나와 "정부가 나서서 거래사이트 운영·보안 기준을 수립해야 한다"고 호소했습니다.

그는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가상통화 생태계의 장점을 강조하면서 정부가 좀 더 해당 시스템에 관심을 갖고 이용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해 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정부가 거래사이트 운영과 보안에 대한 규정이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않자 오히려 거래사이트 운영자가 스스로 나서서 자신들을 규제해 달라고 애원하는 형국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정부가 거래사이트 운영과 보안에 대한 규정이나 가이드라인을 당장 마련하기 어렵다면, 최소한 건전성에 대한 조사는 해야 합니다. 가상통화 시장의 불건전성이 방치되고 투자자들은 보호받지 못하며 불법적인 자전거래와 시세조작 여부를 알지 못하는 지금의 상태는 너무나 위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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