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허슬', 중국 기업의 사기 행각을 폭로하다

머니투데이 김재현 이코노미스트 2018.04.17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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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보고 크게놀기]분식회계 중국 기업들…정보 비대칭 문제 해결책 찾아야

편집자주 멀리 보고 통 크게 노는 법을 생각해 봅니다.

'차이나 허슬', 중국 기업의 사기 행각을 폭로하다


지난 3월 말 미국에서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차이나 허슬’(China Hustle)이 인기를 끌고 있다. 미국에 상장된 중국 기업들의 사기 행각을 다룬 영화다.



중국 기업은 한국 증시에 23개사가 상장됐지만, 세계 최대 규모인 미국 증시에는 400여개사가 상장했다. 이중 80% 이상은 기업공개(IPO) 대신 역합병(Reverse Merger)이라는 우회상장을 택했다.

역합병은 중국 기업이 상장 미국기업을 인수하면, 피인수기업인 미국 기업이 합병 후 존속법인이 되는 방식이다. IPO보다 상장절차가 간단해서 필터링 기능이 약하고 결국 중국 기업의 사기를 방조하는 결과를 낳았다.



‘차이나 허슬’은 GEO Investing의 설립자인 댄 데이비드(Dan David)의 내러티브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이야기에 좋은 사람은 없다. 나를 포함해서”(There are no good guys in this story, including me).

중국 주식에 대한 열렬한 예찬론자에서 숏 셀러(=공매도자)로 변신한 댄 데이비드의 변신 과정은 드라마틱하다. 데이비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큰 손실을 본 후 새로운 투자 기회를 찾던 중 중국에 눈을 돌렸다.

중국 증시는 직접 투자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데이비드는 미국에 상장된 중국 기업에 집중 투자했다. 나날이 발전하는 중국 경제의 성장 과실을 누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당시 미국에는 데이비드처럼 중국 기업에 투자하고 싶은 투자자가 많았고 중국 기업들도 현금이 필요했기 때문에 중국 기업들의 미국 증시 상장이 줄을 이었다. 수익률도 괜찮았다. 2009년에만 데이비드는 약 230%에 달하는 수익률을 올렸다.

그런데 데이비드의 중국 기업에 대한 시각을 바꾼 사건이 터졌다. 바로 카슨 블록(Carson Block)이 터트린 사건이다. 주식중개인인 카슨 블록의 아버지는 오리엔트 페이퍼라는 중국 기업에 투자하고 싶어했다. 역합병을 중개한 미국 투자은행은 오리엔트 페이퍼가 중국 전역에 고급용지를 공급하는 제지업체이며 매출이 1억 달러에 달한다고 미국 투자자들을 유혹했다.

카슨 블록의 아버지는 직접 확인하고 싶어했고 결국 카슨 블록이 중국에 위치한 오리엔트 페이퍼를 찾아갔다. 처음부터 뭔가 이상했다. 시골에 위치한 공장은 아스팔트 도로도 제대로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공장 내부는 더 충격적이었다. 기계 절반은 고장났고 군데군데 물 웅덩이가 있는 등 관리 상태가 엉망이었다.

대차대조표 상에는 500만 달러의 원자재가 있었는데, 실제로는 공장 앞에 썩은 골판지만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미국으로 돌아온 카슨 블록은 아버지와 마주 보면서 무언가 할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 주식을 매수하는 일 말고 말이다.

2010년 6월 카슨 블록이 설립한 머디 워터스 캐피탈(Muddy Waters Capital)은 오리엔트 페이퍼에 대한 30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강력 매도’ 의견을 냈다. 다음날 오리엔트 페이퍼 주가는 개장부터 하락하더니 결국 25% 하락한 채로 장을 마감했고 단 기간에 50% 넘게 폭락했다. 카슨 블록이 옳았던 것이다.

카슨 블록이 회사이름을 혼탁한 물을 뜻하는 ‘머디 워터스’(muddy waters)로 지은 이유도 재밌다. 중국 사자성어 중 혼수모어(混水摸魚)에서 따온 표현이다. 혼수모어는 혼탁한 물에서 고기를 잡기가 더 쉽다는 의미다. 맑은 물에는 고기가 없기 때문이다.

카슨 블록은 시장의 불투명함을 꿰뚫어 볼 수 있을 때 초과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분식회계를 한 중국 기업을 공매도하면서 중국 기업들의 저승사자로 부상했다. 중국인보다 더 중국적인 통찰력으로 중국 기업을 상대한 사례다.

한국은 어떨까. 한국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 23개 중 9개사가 상장폐지됐고 2개사는 상장폐지 심사를 기다리는 등 거의 절반이 상폐됐거나 상폐 문턱까지 왔다.

중국 경제의 성장 스토리로 포장한 중국 기업들의 특징 중 하나는 너무 좋은 재무제표였다. 낮은 부채비율과 높은 수익성 때문에 재무제표만 보면 주가가 너무 싼 종목이 여럿 있었다. 그런데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 예상치 못한 손실이 발생하면서 재무제표가 시총 수준에 맞게 악화됐다.

이처럼 재무제표를 신뢰할 수 없으니 투자할 방도가 없다. 실제로 ‘차이나 허슬’에는 중국은행들이 고객 기업의 계좌잔고를 조작해서 보여 준다는 인터뷰 내용이 나온다.

한국에 상장된 중국 기업 모두가 부실 기업은 아니다. 상장폐지된 9개사중 4개사는 차이나 디스카운트로 인해 주가가 너무 낮다며 자진 상폐를 신청했다. 자사 가치가 주가보다 높다고 생각하는 중국 기업은 모두 자진상폐한 셈이다.

문제는 중국 상장기업과 우리 투자자 간 기업에 대한 정보가 비대칭적인 상태에서 이제 우량 기업은 거의 자취를 감추고 비우량기업만 남은 레몬시장이 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달콤한 복숭아는 다 사라지고 시어서 베기도 힘든 레몬만 남은 셈이다. 어떻게 풀어야 할까. 우리 금융당국에 주어진 어려운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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