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에 꽂힌 '유령 배당' 2000억, 팔아치운 증권사 직원들

머니투데이 반준환 기자, 김훈남 기자 2018.04.06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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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발행 주식 매도했다면 문제 심각. 공매도로 해석될 수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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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증권 (40,100원 ▼600 -1.47%) 직원 A씨는 6일 오전 회사에 출근했다가 심장마비에 걸릴 뻔 했다. 생각 없이 주식계좌를 열어 봤더니 수십억원어치가 넘는 삼성증권 주식이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술이 덜 깼나, 눈을 비비고 다시 계좌평가액을 확인해 봤다. '0'이 9개 붙어있었다. 틀림없었다.

직장생활을 100년 해도 모으기 어려운 돈이다. 전날까지 A씨의 계좌에는 캠페인 때문에 가입한 펀드 몇백만원이 전부였다.



손이 덜덜 떨렸다. 이후에는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무작정 HTS(홈트레이딩시스템)에 접속해 주식을 시장가로 주식을 팔아대기 시작했다. 아침에 받아야 할 결재도, 옆자리 동료가 건넨 말도 들리지도 않았다.

주식을 다 팔고 나니 정신이 돌아왔다. "내가 뭔 짓을 한 거지."

A씨의 계좌에 들어온 것은 이날 삼성증권이 우리사주 조합 소속 직원들에게 지급할 배당금을 주식으로 잘 못 넣어준 것이었다. 삼성증권은 주주들에게 1주당 1000원의 배당금을 지급했는데, 우리사주 조합에는 실수로 주식을 준 것이다. 1주당 1000원이 아니라 1000주의 주식을 줬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통장에 꽂힌 '유령 배당' 2000억, 팔아치운 증권사 직원들
◇삼성증권, 우리사주 조합 배당금을 주식으로 잘못 지급


지난해 12월말 기준 삼성증권 우리사주는 283만1620주. 삼성증권은 지난 주총에서 1주당 1000원씩 현금배당을 승인했다. 금액만큼 주식이 지급됐다면 28억3162만원 대신 28억3162만주가 나갔다는 얘기다. 전날 종가로 계산하면 무려 112조 6980억원에 달한다. 삼성증권은 당시 매도된 물량은 잘못 입력됐던 주식수의 0.18%로 매도수량은 501만3000주라고 밝혔다. 전일 종가(3만9800원)로 팔았을 경우 삼성증권 직원이 매도한 물량은 2000억원에 육박한다.

삼성증권은 사태가 발생한 후 사내 공지를 통해 주식매도를 금지하고 잘못 지급된 주식을 모두 환수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미 사태는 벌어진 후였다. A씨처럼 일단 주식을 팔아 현금화한 직원들이 수두룩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사내공지 이후 주식을 판 직원들은 받은 금액 100%를 돌려줘야 하지만 공지 전에 판 이들은 80%만 돌려주면 된다"는 루머까지 돌았다. 이날 삼성증권 사태를 접한 다른 증권사 직원들도 일제히 주식계좌를 들여다보는 촌극이 펼쳐졌다. 증권사 모럴 해저드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는 대표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삼성증권에서도 모든 직원들이 주식을 팔아치운 건 아니다. 문제를 인지한 후 즉각 회사에 보고한 후 주식계좌를 닫고 업무에 복귀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실수를 기회 삼아 부당이익을 챙기려 했던 직원들이 상당했다.

이날 이들이 급하게 주식을 팔아치운 탓에 3만9600원(-0.5%)에 시작한 삼성증권 주가는 한 시간 만에 3만5150원(-11.68%)까지 급락했다. 전날 202억원에 불과했던 거래대금은 이날 오전에만 6000억원을 넘겼다.

삼성증권 측은 이에 대해 "어디에서 실수가 있었는지 구체적인 원인을 파악 중인데 일단 전산상 사고인 것은 맞다"며 "상황 파악 후 곧바로 조치를 취했으나 일부 직원들이 급하게 대량 매물을 쏟아냈고 이 때문에 주가가 하락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증권 모럴해저드 이 정도였나…전직 임원의 한탄

증권사에서 지난해 퇴직한 전직임원 B씨는 삼성증권 사태를 듣고 한숨을 내쉬었다. "고객과의 신뢰를 생명으로 알아야 하는 금융회사 직원이 보인 행태라고는 믿기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그는 "3년 전 착오거래로 수억원의 자금을 송금받은 고객이 선뜻 이를 회사에 돌려줬던 일이 생각난다"며 "손님들에게는 원칙과 관용을 요구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눈앞에 이익에 저렇게 흔들릴 수가 있느냐"고 되물었다.

이번 사태의 책임은 원인을 제공한 삼성증권에 있다. 그러나 금융회사 종사자의 본분을 망각한 직원들의 책임은 더 크다. 전산사고, 주문실수 등 증권사에서 발생한 사고는 과거에도 있었다.

KB투자증권(현 KB증권)과 KTB투자증권, 한맥투자증권은 2013년 파생상품 시장의 주문실수로 거액의 손실이 발생한 적 있고 지난해에는 도이치증권이 삼성전자 우선주 주문실수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후 증권업계에서는 전산오류나 알고리즘 매매헛점, 주문실수 등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착오매매 구제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예전에는 부당이익을 가져가는 이들도 있었으나 현재는 이를 돌려주는 '신사협약'이 맺어진 상태다.

◇미발행 주식 매도했다면 문제 심각, 공매도 의혹도

문제는 이번 삼성증권 사태가 착오매매 구제제도에 해당하기 애매해 보인다는 점이다. 회사는 직원들에게 주식을 잘못 지급했고, 직원들은 이를 알면서도 주식을 시장에 팔아 이익을 취했다.

더 큰 문제는 삼성증권이 잘못 지급한 주식의 성격이다. 삼성증권의 주식 발행한도는 총 1억2000만주이고, 현재 기준 발행주식은 총 893만주다.

알려진 대로 배당금 '1원'이 주식배당 '1주'로 잘못 지급됐다면 28억3160만주가 직원들에게 지급됐을 것이다. 이렇게 됐다면 발행주식을 초과한 셈이다.

규모가 작아도 문제다. 직원들에게 지급한 주식의 실체가 불분명하다. 일반 고객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넘겼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렇다면 삼성증권이 직원들에게 지급한 주식 수만큼은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었어야 한다.

그러나 삼성증권은 보유하고 있는 자사주가 없다. 발행되지 않은 '유령주식'을 시장에 내다 판, 일종의 '공매도'가 되는 셈이다. 기관경고를 넘어 영업정지까지 갈 수 있는 사안이다.

기존 거래를 무효화해도 이날 삼성증권을 시장에서 사들인 투자자들에게는 어떻게 보상을 지급할지 문제가 남는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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